‘이데올로기(ideology)’란 사회를 설명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이해하도록 도와주며 사고와 행동을 연결해 행동강령을 제공하고자 하는 이념 체계를 말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세계관, 인간관과 같은 이데올로기의 일관된 체계를 통해 사회 문제와 자신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는 잣대(규범)를 제공받는다. 이 말은 프랑스의 계몽주의 철학자였던 트라시 백작이 펴낸 <이데올로기의 요소(Elements d’ideologie)>란 책에서 처음 등장한다. ‘~ology’로 끝나는 대개 낱말들이 사회학, 심리학, 생물학 등 과학적 연구 분야의 특정 학문을 지칭하는 것처럼 이데올로기란 말 역시 처음 사용될 당시엔 ‘이념들의 과학(학문)’이란 중립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에 종지부를 찍은 나폴레옹이 자신의 반대파들을 ‘이데올로그(ideologues)’라며 경멸적인 의미로 부르고, 오늘날엔 이데올로기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마르크스가 현실을 왜곡하는 ‘허위의식’으로 규정하면서 이데올로기란 말은 부정적 의미를 함께 지니게 되었다. 이때의 이데올로기는 ‘진영 논리’에 불과하게 된다. 진영 논리란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집단의 이념, 가치관을 무조건 옳다고 전제하고, 반대 진영의 주장은 객관적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배척하거나 공격하는 사고방식이다. 이럴 때 사람들은 메시지가 지닌 내용의 타당성을 따지기에 앞서 메신저가 어느 진영에 속하는지를 묻는다.
오랫동안 권위주의 체제를 살았던 한국 사회에서 언론과 언론인이 사상과 양심의 자유에 따라 소신껏 진실을 말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소설가 이청준이 1971년에 발표한 소설 <소문의 벽>에서 잘 묘사된 것처럼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전짓불의 공포’ 아래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소설 속 주인공 ‘나’는 신문사 편집국장 출신으로, 사회적으로 촉망받던 작가 ‘박준’이 돌연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째서 기이한 행위들을 하게 되었는지 그의 과거 행적을 추적하다 6·25전쟁 중 한밤중에 들이닥친 경찰인지 공비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환한 전짓불을 들이대며 “당신은 누구의 편이냐?”고 질문했던 어린 시절의 경험이 트라우마의 원인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는 지난해 권위주의 질서로 회귀하려는 시대착오적 계엄을 경험했다. 다행히 우리는 윤석열 정부의 계엄 시도를 저지하고 빠른 속도로 민주주의를 회복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성취하려는 민주주의가 완성된 것은 아니다. 계엄 사태 이전에 문제가 되었던 현실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어떤 점에서는 과거 권위주의 시절보다 더욱 복잡하게 얽힌 난제들에 직면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과 소셜미디어들은 일상뿐 아니라 정치와 여론을 장악했고, SNS 알고리즘은 사용자 개개인의 감정과 반응을 분석해 가장 자극적인 콘텐츠를 우선적으로 노출시킨다. 이런 정보들은 그 자체로는 왜곡된 것이 아니더라도 정보의 다양성과 균형을 무너뜨린다. 그 결과, 더욱 극단적인 진영 논리와 확증 편향의 세계에 빠뜨리게 된다. 이럴 때 우리가 ‘레거시 미디어’라고 부르던, ‘뉴미디어’라고 부르던 언론은 누구의 편이어야 할까?
민주주의의 본질을 흔히 대화와 타협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여기엔 두 가지 중요한 전제가 있다. 첫 번째는 그가 누구이든 어떤 위치에 있든, 자신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가지고 말한 것 때문에 권력에 의해 처벌당하거나 최소한 목숨을 잃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인간 중 누군가는 특별하고 비범한 능력을 가질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은 모두 평등하며 시민은 모두 나와 대등한 위치에서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누릴 수 있으며 누려야 한다는 원칙이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정치학자 존 킨의 말처럼 “겸손한 자들의, 겸손한 자들을 위한 통치”이며, “평등한 자들이 행하는 자치”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은 누구에게 있는가? 누구나 1인 미디어가 될 수 있는 시대, 언론이 민주주의의 파수꾼으로 기능하기 위해선 “당신은 누구의 편이냐?”고 묻기 전에 먼저 우리 스스로가 그 언론이 뿌리내릴 수 있는 건강한 민주적 토양을 지닌 민주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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