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운동시켜도 될까

[이슈 인사이드 | 스포츠] 최형규 MBN 문화스포츠부 기자

최형규 MBN 문화스포츠부 기자.

얼마 전 태어난 지 두 달 된 아들과 함께 집 건너편 축구장이 있는 공원으로 첫 나들이를 나선 날이었다. 설렘과 호기심이 가득했던 두 눈은 나른한 가을 햇살 덕분에 금방 감겼다. 평화로운 산책이 이어지던 찰나, 축구장에서 욕설이 섞인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내 잔디 위에 있던 초등학생 선수 아이들은 곧바로 움직임을 멈췄고, 필자의 아들은 평화를 깨고 자지러지는 울음을 터뜨렸다. 한동안 이어진 지도자의 불호령에 고개를 떨군 아이들의 모습을 뒤로 하고 아들을 진정시키며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과의 첫 외출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그리고 아들이 태어나면 보내려고 했던 축구 클럽 중 하나는 이렇게 목록에서 지워졌다.


스포츠 기자로 일하면서 심심치 않게 접하는 이야기를 직접 겪은 건 적잖은 충격이었다. 스피드 스케이팅을 배울 때 코치가 휘두른 날집에 울었던 아픈 기억이 스쳤다. 함께 나섰던 아내도 수영 핀으로 맞아가며 훈련했던 고통의 시간이 떠올랐다고 한다. 30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그때 상처와 흉터는 남아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저런 지도자들이 있고, 이로 인해 우리와 같은 상처를 받을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우리 아이, 운동시켜도 될까’ 하는 걱정을 키웠다.


세상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체육계의 어두운 그늘은 여전하다. 국회 교육위원회 백승아 의원실이 공개한 ‘2023년 학생선수 폭력피해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초중고 학생선수 폭력 피해 응답률은 0.6%에서 2.0%로 꾸준히 늘었다. 폭력 피해 사례가 그만큼 많아진 것이다. 가해자의 10.5%는 지도자로, 동료 학생선수 다음으로 두 번째로 비중이 높았다. 2018년 체육계 미투, 2020년 고 최숙현 선수 사건 이후 ‘뿌리 뽑자, 반성하자’고 했던 자성의 목소리를 비웃기라도 한 듯 체육계의 그림자는 여전히 어둡다.


여러 현장을 다니면서 지도법과 선수들에게 접근하는 방식을 바꿔보려는 좋은 지도자들도 많이 봤다. 누군가는 변하는 시대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누군가는 더 어려진 세대에 맞추기 위해서라고 했다. 하지만 공통으로 그 근본에는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이 하나라도 더, 잘 배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고민이 체육계 폭력 발생 사유 1위로 꼽히는 관행과 관습을 조금씩 바꾸고 있었다. 그 현장에는 강도 높은 훈련에 찡그리면서도 이내 성취감에 웃는 학생선수들이 보였다.


구시대적 지도, 훈련 방식에 갇힌 낡은 지도자들을 걸러내는 장치는 필요하다. 파편화된 징계등록시스템을 정비하고 체육계에 발을 못 붙이게 하는 강력한 처벌도 필요하다. 하지만 체육인들도 인식 변화에 함께 발맞춰 가야 한다. 저출산으로 아이들이 적어져 운동하려는 아이들이 더 적어지고 있다는 현실의 밑바탕에는 그만큼 몇 안 되는 원석을 더 잘 가꿔야 한다는 책임도 있다.


‘우리 아이, 운동시켜도 될까’ 고민하는 학부모들과 꿈나무들에게 ‘그래도 된다’는 확답을 줄 수 있는 체육계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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