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정신질환 사건 보도, 2차피해 방지 우선돼야"

한국기자협회 '2025 사건기자 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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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양천구 입양아 학대 사망 사건, 대전 초등학교 살인 사건 등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는 아동학대 사건과 정신질환 관련 사건을 가장 먼저 다루는 건 사건팀 기자들이다. 6일 한국기자협회와 아동권리보장원,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이 진행한 ‘2025 사건기자 세미나’에선 해당 사건들을 보도하는 기자들에게 ‘2차 피해 방지’를 우선으로 한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당부가 나왔다. 파급력이 크고, 민감한 사안인 만큼 기사 한 줄이 아동의 삶과 회복에 큰 영향을 미치고, 사회 전체 신뢰를 흔드는 결과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6일 제주 오션스위츠 제주호텔에서 열린 한국기자협회, 아동권리보장원 주최 '2025 사건기자 세미나'에서 '아동학대사건 보도를 위한 언론인의 역할' 토론이 진행됐다 /한국기자협회

제주 오션스위츠 제주호텔에서 열린 이날 세미나에선 언론이 학대 피해를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묘사하거나 피해자·신고자 신상을 노출하는 문제가 계속되고, 정신질환에 대해 사회적 편견을 양산하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2022년 발표된 ‘아동학대 언론보도 권고기준’ 제정에 참여한 김지영 이투데이 기자는 이날 세미나에서 이동의 2차 피해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아동학대 관련인, 신고자 개인정보 보호에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기자는 “학대 학위자가 부모인 경우, 과도한 비난을 유발해 학대 행위 중단, 피해아동 원 가정 복귀가 어려워질 수 있다”며 “학대 행위자는 나쁜 사람 아니냐, 처벌이 미약하니 이른바 ‘정의 구현’이 필요한 거 아니냐는 말도 있는데 사실 생존한 아이들에겐 하등 도움이 안 된다. 원 가정 복귀를 방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신고자 신상정보 보도는 신고자에 대한 보복, 신고 위축에 따른 아동학대 은폐 등으로 이어질 수 있어 신고자 정보는 ‘주변인’으로 통칭하는 좋다”고 말했다.

김지영 이투데이 기자가 6일 사건기자세미나에서 '아동학대사건 보도 사례를 통한 권고 기준 적용' 주제에 대한 발표를 하고 있다. /한국기자협회

관련 보도에서 ‘체벌’ ‘훈육’이라는 표현은 자제하고, ‘폭행’ ‘학대’ ‘때렸다’ 등의 가치중립적 표현으로 써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김 기자는 “어른 중심의 단어인데 민법상 징계권이 폐지돼 물리적 폭행은 법적 정당성이 없기 때문”이라며 “만약 보호자의 인터뷰를 인용할 경우 ‘본 내용은 피해 아동의 입장과는 다를 수가 있다’는 내용을 넣어 명확히 구분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미나에선 학대 행위자 개인정보를 노출하거나 문제 장면을 반복해 재생하는 등의 아동학대 사건 보도로 기자나 언론사에게 민·형사 책임이 발생한 판례들도 소개됐다. 허용 법무법인 인 변호사는 최근 헌법재판소가 아동학대 관련자들에 대한 식별 정보의 보도를 금지하는 아동학대 처벌법상 조항을 만장일치로 합헌 판결한 점을 전제하며 “피해 아동 측의 요구나 승낙이 있다고 하더라도 식별 정보 보도 금지 조항을 위반하면 형사 처벌이 가능하다고 법원은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법원은 CCTV 영상을 원본보다 빠르게 하거나 반복해 재생하는 것은 물리력의 강도를 더 크게 보이도록 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쳐 사실을 왜곡하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판단해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했다”며 “원론적인 얘기지만 무죄 추정의 원칙도 존중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6일 제주 오션스위츠 제주호텔에서 열린 한국기자협회,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 주최 '2025 사건기자 세미나'에서 '언론의 정신건강 이해와 정신건강보도 권고기준 적용' 토론이 진행됐다. /한국기자협회

살인 사건에서 가해자의 정신질환이 강조되는 기사가 나오며 사회적 편견, 낙인 효과를 강화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가해자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내용이 대대적으로 기사화됐던 대전 초등학교 살인 사건 보도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발표된 정신건강보도 권고 기준 제정에 참여한 김유나 국민일보 기자는 “사실 현장에서 사건이 발생했을 때 권고 기준을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기사를 작성하기는 현실적으로는 어렵다는 걸 안다”면서도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는 것도 기자가 해야 하는 역할이다. 정신 건강 관련 사건에서 현장에서 정보를 습득하더라고 전문가 인터뷰 등 사후 보도를 통해서라도 균형이 잡힌 보도를 반드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년간 사건팀을 거쳐 캡(사건팀장)을 맡기도 했던 김 기자는 올바른 정신건강 보도의 방해 요소로 △주요 취재원이자 감형을 위한 가해자 변호인 주장 △정신병력을 범행 동기로 발표하는 수사기관 △경쟁적 취재 환경 및 데스크의 요구 등을 제시했다. 김 기자는 “취재원을 통해 별도로 얻게 된 팩트를 권고 기준에 따라 버리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가 하는 고민이 들 수 있다”며 “특히 기자들은 데스크 문제에 대해 얘기하는데, 결국 데스크도 변한다. 자살 관련 보도도 과거보다 많이 달라졌는데 대안을 제시하는 식으로 현장에 있는 기자들이 기사를 수정하는 데스크와 함께 고민을 한다면 조금씩 바꿔 나갈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사건 발생 직후 기자들이 경찰 발표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딜레마도 공유됐다. 가령 어떤 사람이 공공장소에서 흉기를 소지해 체포가 됐는데 조현병 약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경찰에게 들은 경우, 이를 정신 병력이 범행 동기라는 점을 기사로 쓰면 안 되는지에 대한 고민이다.

이에 백종우 경희대 교수는 한 사건에서 정신질환 관련이 있다는 점이 사실로 드러났을 때만 경찰이 공식 발표하는 영국의 사례를 소개하며 “경찰 공식 발표가 나온 뒤에만 정신질환 관련 기사가 나오는 식이다. 일종의 암묵적 합의인데 경찰이 어떤 보도 자료를 낼 때 확인되지 않는 것은 아예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 정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제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인 기선완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 단장도 “정신병적 증상이 있다고 해서 특정 정신 질환을 특정하기는 어렵다. 또 치료가 잘 안 되고 돌봄의 미비로 일어나는 경우도 많은데, 특정 정신 질환이 더 분명해진 다음 신중하게 보도가 되면 좋겠다”며 “너무 빨리 기사를 써버리면 많은 환자들이 치료를 받는 데 오히려 방해되고 당사자와 가족들이 큰 상처를 받고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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