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동자로 쓴' 이메일 주고받으며… 루게릭병 환우 심연을 보다

[다시보는 언론계 역사·인물·사건, J스토리]
(9) 내러티브 저널리즘 효시... 중앙일보 '루게릭, 눈으로 쓰다'

  • 페이스북
  • 트위치
중앙일보는 2005년 11월9일부터 12일까지 소통, 고통, 기적, 사랑의 네 가지 키워드로 루게릭병 환자 박승일씨의 사연을 담은 보도 <루게릭 ‘눈’으로 쓰다>를 4회 시리즈로 냈다. 2005년 11월9일 중앙일보 1면에 실린 1회 기사.

이규연 중앙일보 기자와 박종근 사진기자가 박승일씨를 처음 만난 것은 2005년 7월4일이었다. 전직 프로농구 코치인 승일씨는 4년째 루게릭병과 싸우고 있었다. 세 평 남짓의 방에 누워 있던 승일씨는 기자들을 보자 빙그레 웃어 보였다. “방가방가.” 눈동자로 마우스를 움직이는 안구마우스를 이용해 쓴 글이 컴퓨터 모니터에 적혀있었다. 두 사람은 20년 전 그날, 그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승일씨는 얼굴의 일부 근육과 안구 근육, 오른손 약지 끝마디를 제외한 신체 근육이 모두 굳어 움직이지 못했다. 눈동자로 마우스를 움직이고 눈을 깜박여 모니터의 글자를 클릭하는 안구마우스가 유일한 소통 수단이었다.

반갑네요
제목소리(루게릭홍보)가첨보다많이작아
저겨우몇카페분들만귀기울일뿐이었는데


이규연은 7월1일 승일씨에게 첫 번째 메일을 받았다. 6월 하순, 승일씨 어머니에게 그의 투병 생활을 기사화하고 싶다고 했는데 응답이 온 것이다. 띄어쓰기도 없고 오탈자도 많았지만, 그는 이 글을 쓰기 위해 몇 시간을 보냈을 터다. 이규연이 메일을 보내면 승일씨가 답변하는 식으로 두 사람의 대화는 이어졌다. 그 무렵 이규연은 박종근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내러티브 저널리즘을 얘기하며 루게릭병 환자 취재를 제안했다. 당시 인물에 집중한 포트레이트 형식의 사진에 관심이 있던 박종근은 기꺼이 응했다. 2001년 4월 한국 탐사보도의 시작을 알린 <현장리포트-‘서울 최대 달동네 신림동 난곡’ 시리즈> 보도 때 참여한 기억도 떠올랐다.

◇머릿속에 맴돈 ‘내러티브 저널리즘’
이규연은 2005년 봄, 사건이나 인물을 정밀하게 추적해 소설식으로 엮어내는 기사 쓰기 기법 ‘내러티브 저널리즘’에 빠져 있었다. 틈틈이 미국 하버드 대학 언론 사이트에 접속해 감동적인 스토리를 골라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후배들과 술자리에선 해외 탐사보도나 전문기자를 안주로 술을 마셨고, 내러티브 저널리즘을 적용한 영문 뉴스를 출력해 읽어보라고 건네주곤 했다. ‘이런 유형의 기사를 한번 써볼 수 없을까’, ‘감동적인 스토리의 기사를 쓰려면 그만한 사례가 필요한데…’라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런 사례를 찾지 못하고 몇 달이 흘렀다.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을 보다가 루게릭병 환자들의 사정을 알게 되었다. 그는 국내의 환자 모임과 접촉해 몇몇 환자를 소개받았다. 승일씨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연세대학교와 기아자동차 농구선수를 거친, 키 202센티미터의 거구, 미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프로농구 코치의 꿈을 이뤘을 때 찾아온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병’. 승일씨는 2002년 6월 루게릭병 선고를 받고 투병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한국ALS(루게릭병)협회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체육계와 언론사를 돌아다니며 루게릭병의 잔혹함을 알리고, 인터넷 팬 카페에 글을 올리며 세상과 끈을 이어갔다. 하지만 2004년 초 손과 입이 모두 굳어버려 침대에 눕게 됐고 호흡 근육도 마비돼 인공호흡기를 부착했다.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7개월이었다. 2004년 12월 누나들이 어렵게 구해온 안구마우스를 사용하면서 승일씨는 세상과 다시 소통했다. 그리고 이규연과 이메일로 연결이 됐다. 두 사람은 7월부터 11월까지 40여 통의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중앙일보는 2005년 11월9일부터 12일까지 소통, 고통, 기적, 사랑의 네 가지 키워드로 루게릭병 환자 박승일씨의 사연을 담은 보도 <루게릭 ‘눈’으로 쓰다>를 4회 시리즈로 냈다. 2005년 11월9일 중앙일보 5면에 실린 1회 기사.

◇여름에 시작한 취재 가을까지
이규연이 팀장을 맡은 탐사기획팀에는 임미진·민동기·박수련 기자가 있었다. 임미진과 민동기는 3년차, 박수련은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새내기 기자였다. 기자들은 승일씨의 집을 드나들며 승일씨 가족을 취재하고 다른 루게릭병 환자들의 고통과 그 가족들 이야기를 들었다. 박종근은 승일씨 집에서 살다시피 하며 사진을 찍었다. 여름에 시작한 취재는 가을까지 이어졌고 마침내 기사 작성에 들어갔다.


이규연과 기자들은 몇 가지 원칙을 공유했다. 승일씨를 최악의 운명을 극복한 초인이나 최루성 기사의 주인공으로 묘사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존 기사의 틀과는 다른 형식으로 전달하기로 했다. 소설처럼 기승전결의 구조가 있고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승일씨 사연은 2005년 11월9일부터 12일까지 4회 시리즈로 중앙일보에 실렸다. <루게릭 ‘눈’으로 쓰다>를 헤드라인으로 소통, 고통, 기적, 사랑의 네 가지 키워드를 달고 나왔다. 승일씨 삶의 명암을 읽어낸 사진과 세련된 편집, 소설 같은 기사 쓰기가 어우러진 보도였다. 등장인물에 캐릭터를 부여하고 이야기하듯 말하는 문체에 승일씨가 눈으로 쓴 이메일을 원문 그대로 기사에 삽입해 독자가 직접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도록 했다.


보도 최종 단계에서 고민한 것은 헤드라인이었다고 한다. ‘육체의 감옥에서 보내온 편지’, ‘난 지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합니다’, ‘절망에서 희망을 꿈꾸다’ 등이 가제목으로 나왔다. 하지만 어느 하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규연은 만 하루를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 끝에 <루게릭 ‘눈’으로 쓰다>를 완성했다. 기사는 세상과 연결된 끈을 놓지 않으려는 승일씨의 의지와 병의 고통, 삶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이 보도는 2006년 2월 제37회 한국기자상 기획보도부문을 수상했다. 심사위원회는 “내용도 감동적이려니와 독특한 문장과 편집이 실험적이면서도 돋보였다. 이런 형식의 내러티브 저널리즘은 영상을 보듯 실감이 나는 메시지를 전달해 인쇄매체의 한계를 극복한 시도로 평가된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학계에서도 새로운 저널리즘의 형식을 추구한 선도적 기사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박수련은 한국기자상 수상 소감에서 “처음엔 독자 마음에 오래 남는 기사를 쓰겠다는 욕심에 휘둘려 어색한 글이 나왔다. 그러나 ‘사실’에 충실하면서 이내 균형을 찾았다”며 “개인적으로 신문기사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고 글의 힘을 보여준 데 동참한 기쁨도 크다”고 했다.


보도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전국 각지에서 루게릭병 환자를 돕겠다는 성원과 격려가 이어졌다. 당시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중앙일보 보도 열하루 만에 승일씨의 집을 찾아 루게릭병 환자 요양소 건립을 검토하고 희귀 난치병 환자 쉼터 마련, 간병비 30% 인상을 약속했다.

<루게릭 ‘눈’으로 쓰다>로 제37회 한국기자상을 받은 중앙일보 기자들이 2006년 2월22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장동환·민동기·박종근·이규연·박수련·임미진 기자. /박종근 제공

◇내가 잊히더라도 난 늘 거기 그렇게
중앙일보는 2009년 6월 하순 승일씨를 다시 찾았다. 그가 루게릭병 전문 요양소 건립에 보태 달라며 한국ALS협회에 6700만원을 기부했다는 소식을 듣고서였다. 루게릭병 요양병원 건립은 그의 오랜 꿈이었다. 4년 전 취재한 임미진이 승일씨의 집을 방문해 인터뷰 기사(중앙일보 2009년 6월27일자)를 썼다. 그 사이 그는 눈을 깜빡이는 근육마저 잃어버렸다. 안구마우스를 쓰지 못해 글자판으로 소통했다. 간병인이 글자판의 자음과 모음을 차례차례 짚으면 눈꺼풀을 미세하게 움직여 원하는 글자를 택하는 방법이었다.

예전에도그랬고현재도
그리고미래엔더욱더그러할테고
세상엔아프고힘들고안타가운사연들많고많아
오늘의안타까운사연
금방터지는다른새로운사건사고들
3년전각종매스컴에오르며
세상속에나란존재가입에오르내리며
언제까지나영원할것같았지만
그영원은다른사연속에묻혀
나도내이야기도루게릭홍보도잊쳐졌죠
그래요
이번일로나또잠시세상사람입에생각에
잠시머물다시간이지나면다시잊쳐지더라도
난늘거기그렇게있으니


승일씨가 이규연에게 보내온 스물아홉 번째 이메일의 일부다. 이규연은 2009년에 펴낸 <눈으로 희망을 쓰다>(이규연·박승일)에서 “승일씨가 보내온 이메일에 담긴 ‘내가 잊히더라도 난 늘 그렇게 여기에…’라는 글을 읽으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으면서도 다른 환우들을 위해 끊임없이 애써온 승일의 수고와, 기회가 생길 때 몇 차례 관심을 가졌던 나의 수고는 애당초 비교할 수 없는 무게를 가진다”고 썼다.


박승일씨는 지난해 9월25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53세. 그의 오랜 꿈인 루게릭병 전문요양병원 ‘승일희망요양병원’은 올해 3월31일 경기도 용인시 처현구 모현읍 포은대로에 개원했다. 2011년 가수 션과 함께 비영리재단 ‘승일희망재단’을 설립해 각종 모금 활동을 진행한 지 14년 만이었다.


※이 기사는 책 <눈으로 희망을 쓰다>(이규연·박승일)와 2005년 당시 취재에 참여한 박종근 중앙일보 사진기자, 박수련 중앙일보 산업부장, 임미진 롱블랙 대표의 이야기를 토대로 재구성했다.

김성후 선임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