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언론만 타깃삼지 말라'던 망법, 결국 언론이 타깃된다?

[이슈 분석] 망법 개정, 왜 졸속인가
모호한 개념… 명확성 원칙 위배
민사 손배 기반한 근절안대로면
'중국인 간첩설' 퍼뜨려도 못잡아
언론에 소송 남발하는 사태 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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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허위조작정보 근절을 내세워 속도전에 들어간 정보통신망법(망법) 개정안의 면면을 두고 ‘졸속’ 입법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모호한 용어 정의,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여러 표현으로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률에 요구되는 명확성, 엄밀성이 현저히 결여됐다는 평가가 대표적이다. 특히 입법 목적과 함께 언급된 ‘중국인 간첩설’ 같은 정보는 정작 법안 사각지대에 있고, ‘언론만 타깃으로 삼지 말라’는 대통령 주문으로 추진된 망법 개정이 언론 대상 남소를 야기하거나 언론만 타깃이 되는 현실을 낳을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이 허위조작정보 근절을 내세워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추진, 이번 정기국회 처리를 목표로 속도전을 밀어붙이는 가운데 법안 면면과 효과를 두고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 사진은 8월14일 정청래 대표가 민주당 국민주권 언론개혁특별위원회 출범식 및 1차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허위조작정보 정의, 기존 논의서도 후퇴
23일 최민희 민주당 의원 등 10인이 발의한 망법상 허위조작정보는 “허위정보 중 유통될 경우 타인을 해하게 될 것이 분명한 정보”로 정의된다. 앞서 20~21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은 다수 발의됐고 규제나 정책입안을 위한 기준으로 정의는 매번 이뤄졌다. 일례로 2020년 6월 정필모 의원 등은 허위조작정보를 “상업적 또는 정치적으로 정보를 매개로 타자를 속이려는 기만적 의도성을 가진 행위로 수용자가 허구임을 오인하도록 언론보도의 양식을 띤 정보 또는 사실검증이라는 저널리즘의 기능이 배제된 가운데 검증된 사실로 포장하는 행위”로 규정한 법안을 발의했다.


22대 국회 들어서도 “거짓 또는 왜곡을 통하여 정확한 사실관계를 오인하도록 조작된 정보”(김장겸 대표발의), “경제적·정치적 이익 등을 목적으로 거짓 또는 왜곡을 통하여 정확한 사실관계를 오인하도록 조작된 정보”(김미애·조인철 각각 대표발의) 등 정의가 이어졌다. 이들 법안은 모두 “타자를 속이려는 기만적 의도성”, “저널리즘의 기능” 등 주관적이고 모호한 개념 정의로 연구자들의 지적(디지털사회 제37호, <온라인 허위정보와 미디어플랫폼 규제>)을 받은 바 있다.


이번엔 “타인을 해하게 될 것이 분명한 정보”란 표현에 비판이 나온다. ‘허위정보 중’으로 전제했지만 불분명하고 자의적 해석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기존 정치권, 학계에서 통용된 개념과도 거리가 있어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의 자체가 잘못됐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허위성, 의도성, 목적성, 조작성을 포괄한 개념인 허위조작정보 정의가 난제란 인식은 일반적이지만 기존 논의에서 후퇴했다는 평가까지 나오는 게 현재다.

◇‘명확성의 원칙’ 위배 소지 다분
모호한 개념 정의는 필연적으로 과잉규제 우려를 낳는다. 특히 망 이용자 전반이 규율 대상이 되는 망법 개정은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입법에 있어서 명확성의 원칙은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판단(헌법재판소 2002.6.27. 선고99헌마480)이 고려될 필요가 크다. 무엇이 금지되는 표현인지 불명확하면 국민들이 대체로 규제를 우려해 표현행위를 스스로 억제할 수 있기에 세밀하고 명확한 규정이 헌법적으로 요구된다는 요지다.


이런 점에서 망법 제44조의 7·11 등은 특히 문제적이다. 진한수 법률사무소 익선 변호사는 불법정보 정의에서 “반복적으로 또는 공공연하게”와 “모욕 또는 증오심을 선동하는” 등의 표현, 허위조작정보에서 “타인을 해하게 될 것이 분명한”, 게재자의 악의 추정과 관련한 “사실확인을 위한 충분한 조치”, “고의와 타인을 해할 의도” 등 내용을 지목하며 “명확성 원칙이 문제될 소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검토의견을 밝혔다.

◇‘중국인 간첩설’은 사실상 못 잡는 법
민주당은 12·3 비상계엄 당시 스카이데일리의 ‘중국인 간첩설’ 같은 사례의 근절을 입법 취지로 설명해왔다. 하지만 주요 대책인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피해자가 명확한 개인적 법익 침해를 전제로 설계돼 국가안보, 선거공정성, 사법제도 신뢰 등 피해자가 명시적으로 존재하지 않거나 개인별 손해액 산정이 불가능한 이슈엔 한계가 명확하다. 법안 설계 단계부터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운 구조란 것이다.


김가희 이화여대 법학연구소 박사는 “개정안의 징벌적 손배제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확인하기 어려운 사회적·국가적 법익과 관련한 허위조작정보 문제 해결에는 실효적 수단으로 보기 어렵다”며 “사회적 피해는 존재하지만 ‘재산상 손해’가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이에 민사상 손배를 통해 개선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신설된 몰수·추징 규정(제70조 제4항)은 허위조작정보가 아니라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죄’(제70조 제2항)에 적용되는 것이고 결국 사회적·국가적 법익 침해와 관련한 허위조작정보는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인다”고 덧붙였다.

◇플랫폼 책임은 저 멀리, 언론만 타깃 되나
법안 내용이 언론활동을 위축한다는 비판에서 나아가 망법 개정의 외부효과가 언론에 대한 압박을 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언론 보도로 피해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 특히 권력자의 경우 언론중재법에 따른 언론중재위원회 조정 대신 징벌 손배 청구가 가능한 소송으로 직행할 공산이 크다. 법안이 권력자 징벌 손배 청구 권한을 배제하지 않고,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중간판결제’ 등이 유일한 방어장치인 가운데 언론보도 위축은 불가피하다.


한국판 DSA(디지털서비스법) 도입이란 애초 주요 취지가 사실상 폐기되며 글로벌 플랫폼의 책임 있는 허위조작정보 처리 역할을 규율한 조항이 없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언론만 타깃으로’ 한 규제가 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탈덕수용소’ 등 연예인 허위영상 배포 관련 이슈에서 채널 운영자 정보를 알아낸 과정이 뉴스가 될 만큼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의 미온적 태도가 지적됐는데 그럼 누구를 규제하기 쉽겠냐는 것이다.


언론법에 정통한 한 변호사는 “기존 망법상 유튜브 채널 운영자 정보를 파악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 법의 주된 징벌 배상 청구대상은 운영자가 비교적 명확한 곳이 될 수 있고 언론사들은 대표적”이라며 “결국 언론만 타깃으로 하지 말라는 대통령 주문 때문에 망법을 개정하는데 실질적으론 언론이 주 타깃이 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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