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이번 정기국회 처리를 목표로 추진 중인 정보통신망법(망법) 개정을 두고 언론현업단체들이 언론의 권력감시 기능 저해, 부족한 숙의 과정을 지적하며 재검토를 촉구하고 나섰다. 조항 면면이 규제 대상을 넓혔거나 자의적 영역을 키워 언론의 정당한 활동은 물론 국민 전반 표현의 자유를 위축한다는 비판이 크다.
한국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PD연합회는 27일 ‘허위조작정보 근절? 권력감시 심각한 위축!’ 기자간담회를 열고 민주당이 23일 발의한 망법에 입장을 밝혔다. 이준형 언론노조 정책위원은 이날 발제에서 “기존 불법정보 규정에 더해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규정을 신설하고 있으나 규정의 내용과 표제가 불일치하고 규제 대상이 되는 정보 범위를 과도하게 늘리는 측면” 등을 우려하며 대표적으로 ‘제44조의 7·10·11’ 조항을 언급했다.
법안은 기존 유통이 금지된 불법정보 정의를 ‘명예훼손’에서 ‘법익 침해’로 확장했고, 공연성 없이 반복성만 있어도 불법정보로 인정한다. “불법정보에 해당하는지가 불분명하더라도” 허위정보 또는 허위조작정보(허위정보 중 유통 시 타인을 해하게 될 것이 분명한 정보) 등 규정으로 손해배상 의무를 부과했다. 이런 정의·규제 범위가 과도하거나 자의적이어서 “정보통신망 상의 표현물에 대한 과잉규제 우려”를 낳는다는 게 요지다.
이런 개념을 바탕으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이 명시됐다. 문제적 정보를 유통한 언론이나 유튜버(게재자) 등의 ‘악의’가 인정되면 손해액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릴 수 있고, 손해액 증명이 어려울 땐 법원이 5000만원 내에서 정한다. 악의는 △법원 자료제출 명령에 따르지 않을 때 △소가 제기된 허위조작정보 유통 1년 전 유사한 유통이 2회 이상 있을 때 △본문에 없는 내용을 제목이나 자막에 썼을 때 △사실확인을 위한 충분한 조치를 하지 않았을 때 등 8가지 요건을 둬 판단한다.
이날 언론4단체 간담회에선 ‘악의’ 추정이 소송에서 이미 이뤄지는 여건에서 자의적 기준이 취재현장을 위축시킬 것이란 비판이 나왔다. 박성호 방송기자연합회장은 “취재 자료, 제보자 인터뷰 내용을 제출하란 법원 명령에 응하지 않으면 악의가 있다고 보는 것”이라며 “기자들은 힘없는 사람들, 제보한 이들 도움으로 기사를 쓰고 그들을 보호할 책무가 있다. 공익을 위해 진실을 말하는 이들도 위축될까 걱정된다”고 했다. 이어 “충분한 사실확인이 어디까지인지는 자의적인 영역이다. 보도에 불만 있는 쪽에서 ‘왜 오늘 보도했나, 더 확인했어야지’ 할 조항을 내놨다는 우려가 현장에서 크다”고 덧붙였다.
전략적 봉쇄소송을 막을 특칙으로 유일하게 포함된 ‘중간판결제’ 효용에 의문도 제기되며 대안의 부족함도 거론됐다. 이준형 위원은 “중간판결 소송에 돌입해도 손해액 산정만 제외하고 본안 판결에 준하는 소송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며 “중간판결이나 소권 남용 제한 사례가 극히 드문 현실에서 재판부가 얼마나 봉쇄소송을 걸러낼지 의문”이라고 했다.
언론계의 권력자 징벌적 손배제 청구권한 배제 요구가 미수용된 상황에서 이런 논의가 진행 중이란 점도 문제다. ‘권력자’와 ‘공익보도’를 예외로 둔 21대 국회 ‘언론중재법’ 개정 논의 당시와 비교해서도 ‘언론자유’ 측면에서 후퇴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징벌적 손배와 별개로 최대 10억원 과징금을 부과하는 조항을 두고선 숙의의 부재도 지적된다. 특위 진행에서 언급도 없던 조항이 포함돼서다. 이호찬 위원장은 “일부 언론보도에서 민주당 관계자발로 ‘권력자 제외’를 빼면 언론단체와 쟁점이 해소됐다는 말도 나오는데 거짓”이라며 “당정 내에선 해소됐을지 모르지만 추석 전 ‘속도전’ 중단을 요구한 이후 한 달 사이 숙의는 없었다”고 했다.
민주당이 언론개혁 일환으로 추진해 온 법안은 20일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으로 지칭돼 처음 공개됐고, 이후 최민희 의원 등 민주당 의원 10인 명의로 발의돼 현재 국회 관련 상임위에 회부된 상태다.
박종현 한국기자협회장은 “새 법을 만들 땐 법이 주는 효과가 명확하고 예상돼야 하는데, 일반 시민 눈높이부터 언론·법조계까지 아울러 봐도 모호하고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말이 많이 나온다”며 “이건 속도전이 아니라 숙의가 필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김재영 한국PD연합회장은 “국경없는기자회가 발표한 한국 언론자유지수가 현재 61위다. 윤석열 정권에서 급락했고 지금도 불안정한 상태인데 충분한 숙의 없이 나온 법안 위축효과로 또다시 개선되지 못한 결과가 나올까 우려스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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