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조직원과 몸싸움, 위장잠입… 기자들도 캄보디아서 사투

[비하인드] 범죄단지 실상 알린 기자들 후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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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서 한국인들이 납치·감금된 채 금융사기 등 범죄에 가담하고 있다는 이른바 ‘캄보디아 사태’가 불거지자, 국내 언론사들은 일제히 현지 취재에 나섰다. 시아누크빌, 보코산 등 범죄단지가 밀집한 지역에서 기자들은 범죄조직원들과 숨 막히는 탐색전과 추격전을 벌였다.

16일 기자들이 캄보디아 프놈펜 인근 범죄단지인 태자단지 앞에서 현장점검을 마친 정부 합동대응팀의 브리핑을 취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인인 척’ 범죄단지 잠입
최다함 채널A 기자는 중국인으로 가장해 범죄단지에 잠입했다. 학창 시절 12년 간 중국에서 거주하며 중국어에 능통했던 덕분이었다.


그는 범죄단지 외곽을 촬영하다 식당과 상점이 쇠창살로 구분된 기이한 구조를 발견했다. 좌석과 주방 사이에 쇠창살이 있고, 그 너머에 또 다른 좌석이 있는 모습이었다. 외부인과 조직원이 이용할 수 있는 좌석을 분리해 둔 듯했다. 이곳에서 범죄단지의 실상을 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최 기자는 홀로 식당에 들어가 손님인 척 밥을 먹으며 취재를 시작했다. 20~21일 범죄단지 건물에 있는 상점들을 돌며 중국인 상인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한국 취재진이 대거 캄보디아를 방문한 탓에 범죄단지 내부의 경계심이 높아졌을 때였지만, 최 기자를 중국인이라 생각한 상인들은 질문에 비교적 솔직히 답했다.


‘고향 인연’을 적극 활용하기도 했다. 한 옷 가게 직원이 중국 광저우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자신도 광저우에서 살았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친밀감을 쌓았다. 그는 상인들과 달리, 조직원들은 쇠창살 바깥으로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다른 언론사보다 3일 늦게 현장에 도착한 만큼, 새로운 기삿거리를 찾는 것 또한 과제였다. 접근 방식을 달리해 범죄단지에서 일했던 중국인들에게 접촉했다. 피해자나 교민이 알지 못하는 조직의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자택에서 3시간 넘게 기다린 끝에 전직 조직 근무자를 만나 내부 급여 체계와 통제 방식 등을 들었다. 수익 목표를 채우지 못한 조직원은 다른 범죄단지로 팔려 가고, 집단에 복종하지 않으면 살해당하는 현실 등을 취재해 보도했다. 최 기자는 일주일 동안 8명의 조직원을 만나 취재를 이어간 뒤 22일 귀국했다.

최다함 채널A 기자가 캄보디아 범죄단지 내부에 위치한 식당 직원을 인터뷰하고 있다.

◇범죄단지 찍다가 조직원과 추격전도
박성원 조선일보 사진기자는 캄보디아 취재 첫날인 15일 범죄단지에 ‘끌려갈 뻔’ 했다. 기사 마감을 앞두고 사진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홀로 범죄단지를 돌아볼 때였다. 때마침 흰색 봉고차 한 대가 단지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문이 열리면 내부를 촬영할 수 있을 것 같아 다가갔지만, 초소에서 누군가 그를 발견했다. 곧 차량에서 한 남성이 내려 박 기자를 향해 달려왔다.


박 기자는 직감적으로 “나를 잡으러 온다”고 느꼈다. 남성은 카메라를 낚아채고는 박 기자를 범죄단지 안으로 끌어당겼다. 그때 불현듯 ‘카메라를 뺏기면 마감을 못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사적으로 남성의 팔을 뿌리치고는 사람이 많은 대로변으로 뛰었다. 무단 횡단을 하면서 추격을 피한 끝에 겨우 취재 차량에 탈 수 있었다. 중국어로 소리를 치던 남성은 차량이 출발한 후에야 자리를 떴다.


긴박한 상황이 지나자 오히려 아쉬움이 남았다. “정신이 없어 그때 상황을 찍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후 취재가 우려됐을 법도 하지만 그는 “그 일 이후 오히려 자신감이 붙었다”며 “최악의 상황을 한 번 겪으니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동남아 포비아’로 번지지 않길”
동남아시아 특파원으로 근무 중인 허경주 한국일보 기자는 이번 사태를 두고 “캄보디아 정부의 대응이 상당히 소극적이고 방어적”이라고 평가했다. 올해 초 태국에서 중국인 배우 왕싱 납치 사건이 발생했을 땐 총리가 직접 나서 관광객 보호 대책을 마련했지만, 캄보디아는 ‘국가 이미지 관리’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허 기자는 캄보디아뿐 아니라 동남아 전체를 ‘범죄 도시’로 보는 시각은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국, 베트남 등 교민들 역시 “한국 지인들에게 ‘여행을 가도 되느냐’고 질문받는 일이 많아졌다”며 “동남아시아가 위험한 나라로 비춰지는게 속상하다”는 반응이라고 전했다.


허 기자는 “범죄단지는 일부 지역에 국한돼 있고, 유명 관광지는 이전과 다르지 않다”며 “평범한 거리나 공항에서 납치되는 일은 드물다”고 강조했다. 다만 “악의를 가진 사람이 친절을 가장해 접근할 수 있으니,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면 피하는 게 최선”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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