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은, 귀여운 존재나 감동스토리로 소비될 소재가 아닙니다"

[김성후의 The Journalist] (10) 고은경 한국일보 동물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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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경 한국일보 기자는 동물 뉴스를 쓴다. 지난 10여 년간 반려동물, 농장동물, 전시동물, 야생동물 구분 없이 동물 뉴스를 지속적으로 전달해왔다. 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동물의 목소리를 대신 전하고 동물을 위해 일하는 기자를 지향한다. “왜 동물 이야기냐”고 물었더니 그는 “16년 7개월을 살고 떠난 반려견 꿀꿀이를 기르면서 동물에 관심을 갖게 됐다. 반려동물에서 시작해 다른 동물까지 확장이 됐다. 동물을 좋아한다”고 했다.

10월15일 오전 서울 중구 그레이츠숭례에서 만난 고은경 한국일보 동물복지전문기자가 자신이 쓴 기사를 보여주고 있다. 고 기자는 어떤 기자로 남고 싶냐는 질문에 “‘동물 편에 선 기자’ ‘동물 편에 서려고 노력한 기자’로 기억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일보는 2022년 12월 그를 동물복지전문기자로 발령냈다. IT(정보통신)와 영화, 의학에 머물던 전문기자의 영역을 과학, 동물로 확장하며 그에게 동물 콘텐츠를 맡겼다. 그렇게 3년 가까이 동물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자로 일하고 있다. 15일 서울 중구 그레이츠숭례 16층 한국일보에서 만난 고 기자는 “동물은 귀여운 존재나 감동적인 스토리로 소비되는 소재가 아니다”라며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동물을 제대로 바라보고 제대로 취재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주로 어떻게 활동하고 있을까. 그는 “전문기자라고 취재 방식이 다르지 않다”면서 “동물 분야를 다루다 보니 출입처 한계가 없는 게 특징”이라고 했다. 충남 공주 폐마목장 사건 판결문을 구하려고 법원에 연락하고 반려동물 정책이면 농림축산식품부, 야생동물은 기후에너지환경부 등 다양한 부처의 문을 두드린다. 그는 “사람들에게 동물을 얘기하면 개·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떠올리기 쉬운데 소·돼지 등 농장동물, 동물원 전시동물, 실험동물, 그리고 도심에 사는 동물들을 비롯한 야생동물까지 분야가 다양하다”고 말했다.

◇멸종위기종 산양 1년 6개월 집중 보도
‘산친자’. 산양에 미친 사람이라는 뜻이다. 지난해 3월부터 최근까지 1년 6개월에 걸쳐 산양의 떼죽음과 원인, 산양 정책의 문제점에 대해 계속 보도하면서 붙은 별명이다. 그가 산양을 처음 마주한 것은 지난해 2월 말. 폭설로 설악산 산양이 민가나 도로에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산양 보호 운동을 하는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설악산을 찾았다. 6시간 동안 미시령·한계령·진부령 도로 주변을 돌며 발견한 산양은 40여마리. 도로까지 내려온 산양은 눈을 끔뻑거리며 쳐다볼 뿐 힘이 없어 도망가지 못했다. 죽어있는 산양도 볼 수 있었다.


그는 설악산에서 돌아와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과 함께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으로부터 받은 산양 멸실 신고서(2019년~2024년 2월)를 연도별, 지역별로 분석해 <화천·양구에서만 80%가 죽었다…멸종위기종 산양이 보내는 SOS>(2024년 3월7일)라는 제목의 첫 단독 보도를 냈다. 그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차단 울타리와 농가가 친 울타리에 막혀 산양이 이동하지 못하고 고립돼 죽었다”면서 “산양이 죽은 위치를 조사했더니 ASF 차단 울타리 부근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그는 이후 5차례 단독을 포함해 수십 건이 넘는 기사를 통해 산양 떼죽음을 막기 위해 ASF 차단 울타리 개방 등이 필요하다고 꾸준히 보도했다. 최근 환경부는 산양 떼죽음과 백두대간 생태축 단절을 막기 위해 차단 울타리를 단계적으로 철거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그는 재작년 9월부터 매달 한 번 ‘위기의 도심동물’ 기획 시리즈를 내고 있는데, 두 달 전 아주 작은 생명체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보도 제목은 <아스팔트 위 말라죽는 지렁이 구하는 사람들>(8월21일). 폭우나 폭염으로 죽어가는 지렁이들을 구조하는 사람들과 지렁이를 돕는 방법을 소개했다. 기사가 나간 뒤 독자들 공감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지렁이를 풀숲으로 옮겨주고 있는데,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음에 반갑다” “작은 생명 하나라도 귀히 여기는 행위가 바로 우리 인간이 살 수 있는 방법이다”라는 내용이었다.

우연히 산책하다 만난 빵떡이를 ‘가족이 되어주세요’ 코너에 소개했고, 빵떡이는 기사를 본 시민에게 입양됐다. 고 기자는 얼마 전에 우연히 서울 시내 한 카페에서 빵떡이를 만났다.


◇지렁이 기사 보고 7년 만에 연락한 선배
타 언론사 선배 기자의 연락도 잊히지 않는다. 2018년 환경부에 출입할 때 알고 지냈던 기자였다. “지렁이 기사를 보고 7년 만에 문자를 보내셨어요. ‘지렁이 구조 기사 잘 봤어요. 무딘 감수성을 깨워주는 기사를 봐서 감사해서 연락해 봤어요.’ 환경 전문인 선배 기자가 제 기사를 보고 연락을 주셨다는 게 굉장히 뿌듯했어요.” 그러면서 “작은 생명을 도우려는 마음들이 모여 결국 우리의 삶을 따뜻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했다.


산양의 경우 그가 새롭게 의제로 끌어낸 보도라면 남방큰돌고래 ‘비봉이’ 방류는 진행 과정을 따라가면서 다르게 접근한 사례다. 국내 수족관에 남은 마지막 남방큰돌고래였던 비봉이는 48일간의 야생 적응 훈련을 마치고 2022년 10월16일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 방류됐지만,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방류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이 언론 브리핑을 하며 대대적으로 홍보할 때 그는 준비되지 않은 방류라고 지적했다.


“비봉이 방류 당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인기를 끌면서 사람들이 수족관 돌고래는 방류하면 좋은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저는 아니라는 기사를 계속 썼어요. 비봉이는 어릴 때 잡혀 왔고 수족관에서 17년을 사람에 길들여 살았어요. 개별적 존재인 비봉이가 처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단독으로 방류한 것이 지금도 안타깝습니다.” 그는 올해 1월 말 정부가 비봉이 방류 2년 3개월만에 슬그머니 낸 백서를 전문가들과 분석해 비봉이 방류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고 비봉이 죽음에 대한 인정도, 반성도 없다고 보도했다.


고 기자는 2003년 파이낸셜뉴스에 입사했다. 처음에 그는 영어교사 임용시험을 준비했다고 한다. 딸이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를 원하는 아버지의 권유를 따랐다. 한두 차례 떨어지다 이럴 바엔 내가 원하는 언론사에 들어가야겠다고 맘먹었다. 고교 시절에 기자 관련 동아리, 대학 재학 중에 영자신문 기자를 했던 게 영향을 줬다. 그는 “기자가 하고 싶어 모든 언론사에 원서를 냈다”며 “수십여 곳 넘게 떨어지다 파이낸셜뉴스에 어렵게 붙었다”고 웃었다.

◇11년전 온라인 칼럼으로 ‘동물뉴스’ 입문
고 기자는 파이낸셜뉴스에서 금융, 유통, IT 등을 다루다 2010년 한국일보로 옮겨와 국제, 산업, 정책 등을 담당했다. 그가 뉴스에서 동물을 다룬 건 2014년부터다. 당시 한국일보가 기자 각자의 관심 분야를 다루는 온라인 칼럼 연재를 장려했고, 그는 ‘고은경의 반려동물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기자라는 직업으로 동물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당시에는 동물 기사를 따로 쓸 분위기가 아니었다. 온라인에서 동물 분야를 다룰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기회여서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2015년 7월 디지털뉴스부에 배속돼 동물 전문 버티컬 서비스 ‘동그람이’(동물 그리고 사람 이야기)를 운영했다. 한국일보는 그해 디지털 콘텐츠 강화를 위해 자동차, 여행과 함께 동물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버티컬 사이트와 주제별 커뮤니티 성격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했다. 지금의 동물복지전문기자를 만든 원형질인 ‘동그람이’와 인연을 맺은 것이다. 그는 동그람이팀 팀장을 2년여간 맡아 동물 뉴스를 본격적으로 생산했다. 일반 동물 기사에 더해 다양한 고정 코너, 동물 관련 영상을 내고 페이스북과 카카오스토리 등 SNS 채널을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며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7월 경기 남양주시 동물자유연대 입양센터인 온센터에서 만난 도사견 ‘초코’. 순한 성격으로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착한 도사견이라는 별명이 있었던 초코는 지난해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한국일보는 2017년 8월 네이버와 ‘동물공감’이라는 이름의 ‘판’ 서비스를 내놓았다. 네이버 홈페이지에 있는 판 메뉴에서 ‘동물공감’을 설정하면 동물 콘텐츠를 만나볼 수 있는 서비스였다. 고 기자는 론칭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6개월 동안 네이버로 출근했다. 그러다 인사 발령으로 환경부를 출입했고, 2019년 1년 동안 일본 게이오대에서 연수했다.


일본 연수를 마치고 복귀한 그는 온라인 콘텐츠 부서에 소속돼 8개월가량 일하다 ‘동물 콘텐츠를 전문적으로 다시 다뤄볼 생각이 없냐’는 제안을 받았다. 2020년 11월이었다. 당시 한국일보는 새로운 콘텐츠로 차별화하자는 취지로 1인랩을 신설했고, 그는 ‘애니로그랩’을 만들어 2년 가까이 운영하며 동물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뤘다. 그는 “여러 실험 가운데 동물들의 목소리를 대신해 의견을 내는 ‘애니청원’ 코너가 기억에 남는다”며 “문재인 정부 시절의 청와대 국민청원을 패러디해 운영했는데 굉장히 반응이 좋았다”고 했다.


그는 동물 칼럼 ‘고은경의 반려배려’를 10년째, 유기동물 입양코너 ‘가족이 되어주세요’는 9년 넘게 유지하고 있다. 뉴스레터 ‘고은경의 애니로그’도 4년 6개월째 내고 있다. 2014년 시작한 온라인 칼럼 ‘고은경의 반려동물 이야기’가 이듬해 이름을 바꿔 지면에 실린 ‘고은경의 반려배려’와 ‘가족이 되어주세요’는 게이오대 1년 연수 중에도 빠지지 않고 쓸 정도로 애착이 강하다. ‘반려배려’는 3주에 한 번, ‘가족이 되어주세요’는 일주일마다 새로운 콘텐츠가 나온다. 그는 ‘가족이 되어주세요’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동물이 주인공인 코너이고 실제 입양으로 연결되기도 해요. 입양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사람들에게 입양을 기다리는 많은 동물이 있다는 점을 알릴 수 있어요.”

한국일보가 운영하는 뉴스레터 ‘고은경의 애니로그’ 타이틀.


◇뉴스레터·유튜브 채널로 독자와 연결
한국일보 뉴스이용자위원회는 10일 한국일보가 발행하는 10개 뉴스레터를 평가하면서 ‘고은경의 애니로그’에 대해 “타깃이 명확하고 기자의 브랜드 파워 증대 등 목표에 부합하는 뉴스레터”라고 평가했다. 고 기자는 2021년 3월 뉴스레터를 시작했다. 매주 수요일 오전 9시 발송하는 레터는 ‘이번 주 동물 이슈’ ‘전문가가 바라본 동물’ ‘가족이 되어주세요’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제가 쓴 동물 뉴스를 유통하는 채널을 목표로 레터를 하고 있다. 일주일 동안 어떤 동물 이슈들이 있었는지, 제가 어떤 걸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기사를 링크해 알려드리고 있다”면서 “구독자들이 주는 의견에 꼭 답변을 드리고 있다”고 했다.


그의 애착 코너 ‘가족이 되어주세요’는 텍스트 기사로만 쓰지 않는다. 영상을 첨부해 동물을 보호하고 있는 관련 단체와 독자를 연결해주고 있다. 코너 특성상 영상을 보여주면 더욱 생생한 내용을 전달할 수 있을 거라는 판단에서다. 휴대전화로 직접 찍은 영상을 쓰기도 하지만 대부분 동물단체가 제공한 영상을 편집해 자막을 넣는 수준이다. 그는 “몇 년 전 회사 지원으로 동영상 촬영과 편집을 학원에서 3개월 정도 배웠다”면서 “동물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영상의 힘이 크다. 관련 영상을 애니로그 유튜브 채널 등에 올리고 있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동물에 관해서 10년 넘게 이야기를 해왔다. 예전에는 생소했지만, 이제는 동물 뉴스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동물복지전문기자라는 자부심과 책임감도 있지만 부담감도 있는 게 사실이다. “동물을 위해 기사를 쓰고 있냐는 질문을 항상 해요. 기자로서 욕심이 나는 기사라고 해도 동물에 해가 되거나 동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줄 것 같으면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는 “기사 욕심을 앞세우는 경우가 생긴다면 동물복지 기자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고 기자가 반려견 가락이(왼쪽)와 가람이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2016년 숙명여대 미디어학 박사과정에 입학해 수료한 그는 내년 8월 졸업을 목표로 논문을 준비 중이다. “미디어가 동물을 다루는 방식이 독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미디어가 동물을 어떻게 다루면 좋은지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연구”라고 그는 말했다.


전문기자 타이틀을 달고 활동한 지 3년째, 어떤 전문기자의 길을 열어갈까. “동물 관련 이슈가 발생할 때 ‘고은경은 어떻게 생각할까’를 궁금해하는, 그러니까 신뢰받는 시각을 제시하는 기자가 되고 싶어요. 이것보다 더 중요한 건 동물이 더 나은 삶을 사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요.” 그러면서 “정책을 바꾸는 일일 수 있고, 사람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주는 것일 수 있고, 같은 사안에 대해 다른 시각을 제공하는 방식일 수도 있다. ‘동물 편에 선 기자’ ‘동물 편에 서려고 노력한 기자’로 기억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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