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으로 지칭한 정보통신망법(망법) 개정안 주요 내용을 20일 공개하며 이번 정기국회 처리를 당론으로 밝힌 후 다수 언론이 사설 등을 통해 권력감시 위축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앞서 민주당이 ‘언론개혁’ 일환으로 공개한 법안은 언론, 유튜버 등이 불법 또는 허위조작정보를 유통시키고 ‘악의’가 인정됐을 땐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 최대 10억원 과징금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았다. 앞서 언론현업단체들이 요구해 온 권력자들의 배액배상 청구권 배제 등이 반영되지 않았고, 그간 언론의 권력감시 기능을 위축시킬 것이라 지적해 온 조항도 그대로 남아 비판이 나온 바 있다.
22일자 다수 주요 신문사 사설에선 민주당의 망법에 대한 우려가 잇따랐다. 경향신문은 이날 <허위조작 보도 징벌적 손배, 권력 감시 위축 없게 해야> 사설을 통해 “언론 보도나 유튜브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고, 그에 따른 피해를 구제해야 한다는 당위성과 시급성은 공감한다”면서 “윤석열의 12·3 내란 후 ‘스카이데일리’가 ‘중국인이 한국 선거에 개입했다’는 식의 허위 사실을 보도하고, 정치적 갈등을 심화시킨 사례를 목도했다. 그런 일은 다시 없어야 한다”고 했다.
다만 법안의 ‘악의’나 ‘허위·조작’ 개념이 모호하고, 현 국내 법 체계에서 ‘이중징벌’이 될 수 있는 등 우려가 크다는 게 요지다. 경향신문은 “이대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권력자나 재력가들이 불편한 보도가 나올 때마다 ‘악의적 허위 보도’로 몰아붙이는 봉쇄·보복성 소송이 남발될 수 있다. 실제 언론 취재대상의 90%가 공적 인물·기업인데, 언론의 권력감시·비리 고발이 중대한 전환점을 맞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만약 윤석열 정부 때 이 제도가 있었다면, ‘김건희 의혹’ 보도는 어려움에 처했을 것”이라며 “김건희가 ‘허위 경력’ 의혹을 취재하는 YTN 기자에게 복수 운운하는 걸 목도하지 않았는가”라고 부연했다.
한겨레도 이날 사설 <‘가짜뉴스 근절’이 ‘언론자유’ 위축으로 이어져선 안 돼>에서 “가장 큰 논란은 ‘악의’를 어떻게 입증할 것이냐다”라며 법안에 명시된 8가지 ‘악의 추정 요건’에 대해 “언론의 취재 현실을 무시한 내용도 일부 포함돼 있다”, “의견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악의적 보도’라고 단정하는 건 적절치 않다. 그러면 객관적 증거나 증언이 일치하더라도 기사를 쓸 수 없게 된다”고 적었다.
한겨레 역시 돈벌이를 위한 가짜뉴스 유통, 허위보도에 대한 미약한 현 처벌 수준 등 문제 지점엔 동의의사를 표했다. 다만 “하지만 가짜뉴스를 막겠다는 정책 목표가 아무리 옳더라도 언론 보도에 대한 규제는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시민의 표현의 자유를 막는 양면성을 지닐 수밖에 없어 세밀하게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진보 성향 외에 중도 또는 중도보수로 평가되는 신문에서도 지적이 잇따랐다. 세계일보는 사설 <‘재갈법’ 우려되는 언론개혁안, 독소 조항 제거해야>를 통해 “징벌적 배상은 명백한 가짜뉴스만을 대상으로 해야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 한다는 오해를 피할 수 있다”며 “허위조작정보를 막자는 취지는 동감하지만 (악의 추정 조항 중) ‘충분한 조치’나 법원의 문서 제출 명령 규정은 적용 여하에 따라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 특히 취재원 보호 원칙이 무너지면 권력이나 기업의 비리를 폭로하거나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한 내부 고발자나 익명 제보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일보는 또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 대기업 등 권력자의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권을 배제하지 않은 점도 문제다. 권력자 연루 비리는 한 매체의 폭로 보도에 이어 다른 매체의 추종 취재로 전모가 드러나기 마련”이라며 “권력자가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를 막이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을 남발하면 이런 흐름이 이어지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법안 처리 전 독소조항이 삭제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일보도 이날 사설 <민주당 ‘언론개혁’안, 표현의 자유 위축 우려된다>를 통해 “민주당 안은 배상기준과 구제 대상이 모호하다. 언론 탄압과 여론 검열에 악용할 소지가 상당하다는 얘기”라며 “주관적인 ‘악의’를 법으로 판단하겠다는 것부터 위험한 발상이다. 민주당은 ‘내용 성격상 유통되면 타인을 해할 것이 분명한 경우’, ‘사실 확인을 위한 충분한 조치를 하지 않은 경우’ 등을 악의적 정보로 규정했으나, 객관적 입증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권력감시 위축을 우려한 언론계의 권력자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권 배제를 민주당이 거부한 데 대해서도 한국일보는 “‘대국민 창피를 감당하면서 소송을 걸고 보자는 정치인이 있겠느냐’는 논리는 허술하다. 손배소 남용 시 법원이 소송을 각하할 수 있게 하는 특별 규칙을 뒀지만, 작금의 사법부 압박을 보면 법원이 권력 논치를 보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권 일부 인사들은 기성언론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왔다. 민주당 안이 신뢰받지 못하는 것은 ‘언론 손보기’ ‘비판 여론 입틀막’ 용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매일경제는 이날 <“언론·유튜브에 징벌 배상” 與, 자신들부터 가짜뉴스 삼가야> 사설을 통해 “허위 정보 생성과 가짜뉴스 확산을 정치인들이 면책특권 뒤에 숨어 활발히 하고 있다”며 “요즘엔 의원들이 정치성향에 맞는 유튜브에 출연해 허위 정보에 동조하거나 직접 흘리는 경우도 흔하다. 스스로 유튜브를 운영하며 검증이 안 된 소식을 내보낸다면 이들 역시 규제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했다.
이대로라면 언론 활동 위축이 불가피하고, 방안의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평가한 매일경제는 “특히 정보통신망법 대상이 되는 온라인 콘텐츠가 너무 많아 악의적인 가짜뉴스를 가려내기 힘들다. 이를 위해 통신 서비스 플랫폼 사업자에게 유해 정보를 차단하고 결과를 보고하는 방식이 거론되지만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날 민주당 망법과 관련해 사설을 내놓은 주요 일간지들은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 독소조항 배제 등을 제언했다. “입법을 서두르기에 앞서 폭넓은 공론장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다. 허위조작정보 근절의 대의와 언론자유라는 헌법적 가치 사이의 균형점을 찾기 위한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서울신문), “언론계와 시민사회 의견 수렴과 토론 등 공론화와 반대의견 수렴이 선행돼야 한다. (중략) 입법 시한보다 중요한 것은 입법 자체가 사회적 신뢰 속에 이뤄지는지 여부다”(한국일보) 등은 대표적이다.
또 “정부와 여당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권력가 입맛에 따라 손배를 오남용하지 못하도록 법안을 숙의하고 정밀 설계해야 한다”(경향신문), “언론의 자유와 건전한 공론장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올해 정기국회 회기내 통과라는 일정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여론의 지지를 받은 검찰청 해체와는 성격이 다르다”(한겨레) 등 주장도 제시됐다.
최승영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