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징벌손배 최대 5배, 과징금 10억까지"
[20일 허위조작정보 근절 특위안 공개]
망법 개정안, 민주당 당론으로 추진
최초 발화자에도 책임 묻는 방식
권력자 손배청구 배제 여전히 없어
한국판 DSA 도입 취지마저 사라져
더불어민주당이 불법 또는 허위조작정보를 유통해 손해를 입힌 이에게 피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하도록 하는 내용의 정보통신망법(망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추진한다고 20일 발표했다. 그간 언론계가 우려한 권력 감시 기능 위축 관련 조항이 여전하고, 권력자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 자격 제한 요구도 수용되지 않았다. 허위조작정보 대책으로 나온 법안이 당초 한국판 디지털서비스법(DSA) 취지는 폐기하고 징벌 대상을 언론은 물론 사실상 모든 인터넷 이용자로 확대했다며 “개악안”이란 비판까지 나온다.
민주당 언론개혁특별위원회는 이날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으로 지칭한 망법 개정 주요 내용을 공개했다. 특위안은 현 망법상 불법정보가 아니어도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가 허위이거나 사실로 오인하도록 변형된 정보”를 ‘허위정보’로, 이 가운데 “유통될 경우 타인을 해하게 될 것이 분명한 정보”를 ‘허위조작정보’로 정의하고 유통을 금지(풍자·패러디 제외)했다. 망법에 손해배상 일반 조항을 신설해 이런 정보를 고의 또는 과실로 유통해 타인에게 손해를 끼칠 경우 손배 의무를 부과한다.
특히 언론이나 유튜버 등 “정보 전달을 업으로 하는 자”가 불법이나 허위조작 여부를 알면서 유통시켰고 ‘악의’가 인정될 땐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할 수 있게 했다. 악의는 △법원 자료제출 명령에 따르지 않을 때 △이미 불법·허위조작정보로 판명된 것과 유사 내용을 유통할 경우 △본문에 없는 내용을 제목이나 자막에 썼을 때 △사실확인을 위한 충분한 조치를 하지 않았을 때 등 8가지 조항에 따라 추정한다. 피해자의 손해액 증명이 어려울 땐 법원이 5000만원까지 손해액을 정할 수 있게 했는데 배액배상 적용 시 콘텐츠 유통자(게재자)의 최대 손배액은 2억5000만원에 이른다.
그 외 불법·허위정보 최초 발화자가 정보통신망을 통하지 않았더라도 유통될 것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면 동일한 책임을 부여하고, 악의적이고 반복적인 유통이 법원 판결로 인정됐을 땐 징벌적 손배와 별개로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최대 10억원 과징금을 부과하는 조항도 포함됐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이날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허위조작정보를 악의적으로 생산하고 반복 유포하는 게재자를 제재함으로써, 다수의 선량한 국민들이 입을 수 있는 명예훼손 등 유무형의 손해를 막고, 국민의 알 권리를 더욱 두텁게 보호하기 위한 개혁안”이라 밝혔다. 이어 “당론으로 추진해 본회의에서 속히 통과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언론특위 노종면 간사는 “바뀌는 규정이 많아 법안 발의엔 더 신중을 기하는 차원에서 1~2일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 말했다.
민주당의 소위 언론개혁 법안이 언론의 권력 감시기능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비판해온 언론계는 반발하고 있다. 언론중재법 개정으로 시작된 행보는 이재명 대통령의 의사 표명 후 망법 개정으로 선회했지만 그간 우려 지점을 여전히 안고 있어서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특히 언론현업단체들이 일관되게 요구해 온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 자격에서의 정치인, 고위공직자, 대기업’ 제외가 포함돼 있지 않은 데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며 20일 입장문을 냈다. 앞서 언론계는 권력자의 경우 일반 손배 청구로 충분하다고 했지만 언론특위는 일률적인 ‘공인 배제’ 방식이 “명분과 합리성에 의문”이 있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권력자의 ‘전략적 봉쇄소송’ 우려 등에 언론특위는 ‘중간판결제’ 등이 담긴 특칙을 대안으로 냈지만 이 역시 ‘재탕’이다. ‘입틀막’ 소송을 당했다고 본 언론 등이 법원에 봉쇄소송 여부 판단을 구하면 소송절차가 중단되고 만일 인정되면 해당 심급 제소가 종결되는 방안은 실효성이 떨어지고 소송 자체는 못 막는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되돌아왔다. 악의 추정 요건에 따른 취재원 공개 강제 등 소지와 최초 발화자의 배상 책임을 명시한 규정이 내부고발 등 제보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재론되는 상황이다.
특히 망법 개정 선회 후 플랫폼 책임을 강화하는 한국판 DSA 도입에 관심이 모였지만 실상은 “표현 게시자에 대한 규제와 처벌 강화”로 방점이 찍혔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20일 논평에서 “‘정보전달을 업으로 하는 자’를 대상으로 규정함으로써, 언론사는 물론 콘텐츠를 제작하거나 정보를 선별해 게재하는 사실상 모든 인터넷·플랫폼 이용자에게까지 책임을 확대했다”며 “(민주당이) 또다시 ‘가짜뉴스’를 명분으로 인터넷 표현 게시자에 대한 행정적·민사적 규제 강화에만 초점을 맞춰, 표현의 자유를 더욱 위축시키는 개악안을 내놓았다”고 평가했다.
애초 망법 개정은 불법정보에 대한 신고·조치 제도를 도입해 대형 플랫폼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는 유럽연합(EU) DSA를 모델로 내세웠는데 이 같은 민주당 초안이 대부분 삭제돼 법 취지를 폐기했다는 인식이다. ‘타인을 해하게 될 것이 분명한 정보’ 등 모호한 개념을 통한 자의적 규제 여지가 커져 “국가가 진실의 심판자”가 되려는 태도란 지적도 나왔다. 오픈넷, 참여연대 등 6개 언론시민단체는 21일 공동성명에서 “민주당의 망법은 표현의 자유를 짓밟는 한국형 표현통제법일 뿐”이라며 법안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또 △EU DSA 핵심 요건을 토론하고 한국 내용규제 근본개혁을 위한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 △국제기준에 부합한 사실확인 기관과 관행 지원·활성화 등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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