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중' 가속페달 밟는 국힘… 언론 역할 중요성 커져
국힘 '중국인 3대 쇼핑 방지법'에 보수·진보언론 일제히 비판
"자영업자 유커특수 기대에 찬물", "어려운 시기 위험천만 언동"
팩트체크 나서는 언론… '혐중' 이념화 속 언론역할 주목
국민의힘이 의료·선거·부동산 분야에서 중국인을 배제하는 이른바 ‘중국인 3대 쇼핑 방지법’을 당론으로 추진하며 다수 언론에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반중’, ‘혐중’ 정서를 자극해 강성 지지층 결집에 나선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혐오를 정치 자원으로 삼은 공당의 행보에 언론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 국면이다.
국힘 ‘혐중’ 당론에 언론 비판… 진영·지역 막론 '소탐대실'
국민의힘이 10일 방지법 당론 추진을 선언한 후 기성 언론에선 비판이 잇따랐다. 세계일보는 14일 사설에서 이에 대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후 우파 내부에서 확산하고 있는 반중 정서에 편승하려는 의도”라며 “외국인이 특혜를 받고 우리 국민이 역차별을 받는다면 반드시 시정되어야 하지만 특정 국가, 특정 국민을 겨냥한 입법은 정치적 혐오 조장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11일 사설에서 “국민의힘, 수권 정당 맞나”라고 꼬집었다. 이 신문은 “중국인 공격은 일부 국민 사이의 반중 정서를 자극해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사리분별 없이 이재명 정부를 공격하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정치권이 혐오·차별을 조장하는 것은 선진국 품격에도 걸맞지 않거니와, 한중 관계를 감안하면 외교, 안보, 경제 분야에서 후폭풍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언동”이라고 경고했다.
김은혜 원내정책수석부대표가 2일 “중국인 무비자 입국 허용 이후 이재명 정부 정책에 대한 여러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며 “국민 역차별 방지 3법을 당론화할 것”이라 했고, 10일 국민의힘이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이를 공식 당론으로 발표한 후 이 같은 지적이 나왔다. 국정감사에서도 ‘중국인 건강보험료 먹튀’ 주장 등이 나오고, 정부여당이 이를 반박하며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보수 성향 매체 또는 지역언론도 공당의 행보에 부정적 평가를 내놨다. 조선일보는 13일 사설에서 “국내 거주 외국인들이 특혜를 받고 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고치겠다면서 이를 ‘중국인 쇼핑 방지법’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치적 접근 방식”이라며 “국힘 의원이 중국 단체 관광객 무비자 입국을 두고 ‘간첩에게 활동 면허증을 내준 것’이라고 언급한 것 역시 반중 정서 자극이라고 비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어 “더군다나 그 대상이 우리 경제나 안보에 중차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국이라면 국익에 심대한 위해를 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13일 경향신문과 동아일보는 각각 사설과 칼럼에서 “국민의힘이 어쩌다 유튜브에서나 통할 가짜뉴스를 대변하는 정당으로 전락한 것인지 개탄스럽다. (중략) 관광업계와 자영업자들이 ‘유커 특수’를 살리려 안간힘을 쓰는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찬물을 끼얹어서야 되겠는가”, “무분별한 반중, 혐중 정서를 확산시키고 한중 관계 개선의 싹을 꺾는 건 국익과 직결된 문제다. (중략) 한국사회가 오랜 기간 일본의 혐한 시위를 비판했던 기억이 선명한데, 이젠 우리가 누군가를 혐오하는 주체가 됐다니 씁쓸한 뿐”이라 평했다.
‘차이나타운’이 있는 인천 지역 등을 커버하는 경인일보는 16일자 사설에서 “지난 9월 서울 명동과 대림동에서 시작된 반중 시위가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 중인 경기도로 번지고 있는 것”이라며 “절대다수 국민들의 마음은 편치 못하다. 지난 8일 대한상공회의소의 500개 소매유통업체 대상 조사에 따르면 올 4분기 소매유통 경기가 싸늘할 것으로 전망되었다. (중략) 지금 한국은 국내외적으로 매우 엄중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반중 정서의 정략적 이용은 소탐대실”이라고 우려했다.
건보료 재정, 부동산 소유, 선거 쇼핑? 대부분 ‘사실 아님’
국민의힘이 생산적 논의 대신 특정 국가에 대한 혐오를 내세워 당의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려 하고, 이 과정에서 국익을 도외시했다는 시선이 주되다. 특히 이 같은 주장이 잘못된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비판이 다수 나온다. 일단 ‘중국인 무비자 입국’ 제도는 윤석열 정부 시기 결정된 사안이다. 2024년 한중일 정상회의 공동선언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이 3국 인적교류 4000만명 달성을 합의했고, 올해 3월 최상목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 “3분기 중 시행”하겠다고 밝힌 정책이다. 한중일 정상회의 직후 국민의힘은 “국가경제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소모적 정쟁은 멈춰야 할 것”이란 논평을 냈다.
‘건강보험료는 국민이 내고 혜택은 외국인이 가로챈다’는 주장에 동아일보는 13일 칼럼에서 “지난해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요건이 강화되면서 국내 체류 중국인들의 건보 재정은 흑자로 돌아섰다. 2020년대 초반까지 있었던 수백억원 대 적자 또한 통계 오류로 밝혀져 적자 폭이 줄거나 흑자로 수정됐다”고 반박했다. ‘중국인은 외국인 중 토지 필지, 주택 보유 및 투기 분야 1위’이고 ‘대출규제에서 자유로워 실제 살지도 않으면서 월세를 받아간다’ 주장에 같은 날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중국인의 국내 부동산 매입도 주로 실거주 목적이며,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주기엔 거래량도 미미하다”고 적기도 했다.
실제 언론의 팩트체크 기사(<방지법 낸다는 ‘중국인 3대 쇼핑’ 맞나>, 노컷뉴스 10월15일)에선 같은 내용이 반복 확인된다. 중국인 대상 건보료 적자 규모는 2023년까진 적자였지만 2024년 55억원 흑자로 돌아섰다. 전체 외국인 재정수지도 2016년 이후 계속 흑자를 기록하는 상태(2024년 기준 순이익 9439억원)다. ‘부동산 쇼핑’ 주장 역시 반만 맞는 말이다. 외국인 주택보유 1위는 중국인이지만 면적 기준 토지보유 1위는 미국(52.5%)이고, 중국은 전체 7.9%에 불과하며, 외국인 90% 이상은 부동산을 1채만 소유하고 있다는 국토교통부 통계로 반박된다. 대출과 관련해서도 중국인은 내국인처럼 금융규제 적용을 똑같이 받는다.
‘한국에 거주하지 않는 중국인이 지방선거에서 표를 행사한다’는 ‘선거 쇼핑’ 주장도 마찬가지다. 현행법상 영주권을 얻고 3년이 경과한 외국인에게 지방선거 투표권이 있는 것은 맞지만 “지방선거 때는 재외국민 투표가 이뤄지지 않아 투표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국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국힘 ‘중국인 3대 쇼핑 방지법’ 추진...당내서도 “중도층 좋아하겠나”>, 한겨레 10월10일)
반중 넘어선 공당의 ‘혐중’ 위험수준… 언론역할 중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극우 유튜버들은 ‘반중’, 나아가 ‘혐중’을 바탕으로 한 음모론, 콘텐츠를 퍼뜨렸고 정치권은 여기 가세해 부정선거 개입설을 퍼뜨린 바 있다. 이 같은 정서에 기반한 행보가 제1야당이 되고도 계속 이어지는 상태로 볼 수 있다. 그간 ‘동북공정’이나 ‘사드’, ‘코로나19’ 등 이슈를 기점으로 악화와 회복을 반복하는 반중 정서가 국내에 존재해온 것은 사실이고 최근 미중 패권 다툼 속에서 악화한 측면이 있다. 다만 공당이 제도정치권에서 보이는 모습은 반중을 넘어 혐중을 이념화한다는 점에서 훨씬 위험소지가 크다.
앞서 언론사들의 사설이나 팩트체크 등에서 나타나듯 상당 기성언론이 비판적 시각을 보이며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일부 행태는 우려도 낳는다. 여러 매체에서 정치권의 입장을 ‘받아쓰기’하거나 ‘중계’할 뿐 주장이나 사안의 시시비비를 따지거나 사실여부를 확인하는 덴 소극적인 모습도 나타나고 있어서다. 기사의 성격에 따라 해당 내용을 못 담는 일도 벌어질 수 있지만 매체 전체에 이런 류의 기사만 있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게 현재다. 이는 사안을 정쟁화할 뿐이란 점에서 결코 공동체에 긍정적 효과를 주기 어렵다.
이번 국면에선 정치권이 도마에 올랐지만 기성 언론이 조회수를 노리고 반중 정서에 기댄 뉴스를 대대적으로 보도해온 것은 반성할 지점이다. 김희교 광운대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는 책 <짱깨주의의 탄생>에서 2020년 6~8월 한국 언론의 중국 관련 보도를 분석하고 ‘사실보도보다 분노와 혐오를 조장’, ‘선입견이 담긴 감정적이고 부정적인 단어 사용’, ‘중국인 몇 명이 한 일도 중국 전체의 문제로 보도’, ‘전 세계적 문제나 자연현상도 중국 탓’, ‘미국 행위는 국가전략의 문제, 중국의 행위는 도덕의 문제’ 등을 특징으로 진단했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 무비자 입국이 허용된 이후였던 2일 김 교수는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와 인터뷰에서 “반중 정서는 반미 정서와 유사하게 일반적으로 국가와 국가 사이에 늘 존재한다. 특정 국가에 대해 선호도를 조사하면 대개 40~60% 사이에서 왔다갔다 한다. 중국과 나쁜 관계가 형성되면 높아지고, 좋은 일이 있으면 낮아지는 유동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고 이건 정상 범주 안에 있는 것”이라 설명했다. 그러면서 “혐중은 하나의 이데올로기화되는 것이고 이때부턴 위험한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혐중 시위는 특정 조직이 목표를 갖고 하는 거여서 더 위험한 일인데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은 혐오의 마지막 단계로 상당히 위험한 단계”라고 부연했다.
김 교수는 “보수진영이 극우화되면서 일종의 외부의 적이 필요했던 것 같다”며 “혐오는 인권의 문제임과 동시에 혐오비용의 문제를 발생시킨다. 굉장히 큰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는 심각한 문제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어 “혐중의 문제는 중국 문제가 아니고 우리 내부의 문제다. 우리가 K컬처의 나라로 불리는데 여기 걸맞게 세계인들과 연대할 자세를 갖추는 게 훨씬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교육, 방송, 언론 등에서 이 문제에 관심 갖고 치유하는 출발을 시작해야 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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