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도청 의혹서 출발… '사찰·요양원·건설사' 연결고리 찾다

[인터뷰] 김현주 KBS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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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KBS전주 기자는 전북 군산의 한 요양원 불법 도청 의혹에서 출발해 사찰과 건설업체, 지역 종교계까지 이어지는 구조적 문제점을 두 달간 파헤쳤다. /김현주 제공

“이 보도 관련한 녹음파일을 정리해 봤는데요, 아주 짧은 통화까지 포함해 1000통이 넘는 통화를 했더라고요.”
전북 군산의 한 요양원 불법 도청 의혹에서 출발해 사찰과 건설업체, 지역 종교계까지 이어지는 구조적 문제점을 두 달간 파헤친 김현주 KBS전주방송총국 기자는 “처음에 이 사안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고 말했다.


시작은 군산의 한 노인전문요양원에서 불거진 불법 도청 의혹이었다. 그가 만난 요양원 직원들은 대부분 50~70대 여성 요양보호사들이었다. 그들은 도청 장치가 있다는 걸 몇 년 전부터 알았지만 무서워서 문제 제기를 못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몇 년간 억눌려왔던 감정을 비로소 이야기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김 기자는 추가 취재를 벌여 7월23일 첫 보도를 냈다. 요양원에서 직원들을 불법 도청했다는 의혹이 나왔는데, 요양원 측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하고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는 내용이었다. 일주일 뒤 추가 보도가 나왔다. 요양원 측이 불법 도청 고발장에 서명한 부원장과 팀장을 일반 직원으로 강등하는 등 직장 내 괴롭힘을 했다는 보도였다.

불법 도청 의혹이 나온 군산의 한 요양원 근처에 있는 건설업체를 성우스님이 차명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보도. 성우스님이 회주로 있는 은적사에서 요양원은 150m, 건설업체는 550m 떨어져 있다.

보도의 흐름이 바뀐 건 우용호씨와 통화였다. 부원장을 지낸 우씨는 요양원 설립자이자 원장인 성우스님이 A 건설업체를 차명으로 소유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처음에 이야기를 듣고 관련 자료를 받았는데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며 “스님이 건설업체를 실소유하고 있다는 게 너무 이상했다”고 했다.


우씨의 증언과 건설업체 직원이 준 USB에는 회계자료와 성우스님의 목소리가 담긴 녹취 파일 등이 있었다. 이 자료들이 믿을만한지 판단해야 했다. 그는 “가능한 많은 취재원에게 접근하고, 취재원을 다양화해서 크로스체크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건설업체 등기부등본에는 성우스님의 친동생과 그의 남편, 친인척 등이 임원으로 등록돼 있었고, 이 업체는 성우스님이 주지를 지낸 김제 금산사와 그 말사 공사를 도맡아 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 기자는 8월11일과 14일, 18일, 25일 연속 보도를 통해 A 업체가 김제 금산사 성보박물관, 군산 상주사 불교문화체험관 등 공사를 맡았고 그 과정에서 이중계약서 작성과 허위 세금계산서 발행, 이른바 ‘단가 후려치기’ 등으로 국고 보조금을 가로챘다고 보도했다. 또 이 업체가 직원 수를 부풀려 월급을 빼돌리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모아 또 다른 공사를 따내기 위한 로비 자금으로 썼다고 폭로했다. 특히 8월18일 보도한 <사찰 공사로 만든 비자금 어디로?>에선 지난해 12월 현금 1억원이 든 돈가방을 성우스님에게 받아 금산사 주지 화평스님에게 전달했다는 A 업체 전직 현장소장의 증언을 담았다. 두 사람은 “돈을 받기는 했으나, 다시 돌려줬다”(화평스님), “돈을 줬지만, 다시 돌려받았다”(성우스님)며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해당 건설업체 현장소장 K씨가 지난해 12월 성우스님에게 받아 금산사 주지 화평스님에게 전달한 돈가방 사진. /김현주 제공

취재는 쉽지 않았다. 동국대 이사장과 김제 금산사 주지,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 상임이사 등을 지낸 성우스님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성우스님의 입에서 유력 정치인과 자치단체장, 경찰 관계자 등이 나왔어요. 취재에 응하던 건설업체 직원 중 한 명은 중반부터 제 연락을 피했습니다.” 지자체 공무원도 그렇고 누군가의 눈치를 본다는 느낌이 들었다. 김 기자는 “한 지자체에 전화해 사찰 공사 사업비를 물었는데 일주일을 기다리라고 했다”면서 “왜 오래 걸리는지 묻자 ‘사찰 쪽에 먼저 확인받고 이야기를 해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굉장히 의아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두 달 넘게 취재를 이어갔다. 7월 한 달은 데일리 리포트를 하면서, 8월 한 달은 관련 기사를 내보내면서 취재했다. 그는 “집에 가서도 자료를 보고, 주말에 회사에 출근해서 자료를 붙잡고 있었다”면서 “어떻게 보면 집착인 거 같기도 한데 ‘이 문제를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2023년 1월 입사해 3년째 기자로 일하는 그는 “어떤 사안에 몰입해서 취재한 경험은 처음이었다”며 “이 경험이 앞으로 ‘내가 취재를 열심히 했는가’ 하는 개인적인 기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보도 이후 관련 제보가 들어와 추가 취재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기존 보도가 승려 성우 개인에게 초점을 둔 측면이 있는데, 후속 보도에선 성우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던 제도적 측면이나 조계종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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