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체포됐다가 법원의 체포적부심을 통해 풀려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석방 이후 행보가 점입가경이다. 소셜미디어, 강경 보수성향 유튜브에서는 물론이고 국회 국정감사장에서도 자신이 ‘이재명 정권에 의해 탄압받은 피해자’라고 강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국회 탄핵소추로 직무 정지 중이던 지난해 9월 보수성향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가짜 좌파들과 싸우는 전사가 필요하다”, “민주당이나 좌파 집단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등의 발언을 했고, 민주당이 이를 공직선거법 및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고발하면서 피의자로 수사를 받아왔다. 8월부터 이 전 위원장에게 출석요구서를 6차례 보낸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이에 응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아 지난 2일 체포영장을 전격 집행했다.
비록 이틀 뒤 체포적부심에서 법원이 “표현의 자유 제한을 이유로 한 인신구금은 신중해야 한다”며 그를 석방했지만, 체포영장 집행이 과잉수사냐 적법절차였느냐의 논란은 여전하다. 그는 불출석 사유서 제출 및 수사 협조 의사 표시 등을 근거로 경찰의 체포영장 집행이 부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반박들은 단순히 법리적 차원이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체포 당일 경찰서로 압송되면서 그는 “이재명(대통령)이 시켰습니까. 정청래(대표)가 시켰습니까”라면서 수갑을 찬 손목을 기자들 앞에 들어 보였다. 자신이 집권 여당으로부터 탄압받고 있다고 야당 지지자들에게 어필하려는 정치인의 퍼포먼스를 방불케 했다. 석방 이후에는 “이재명 검찰과 이재명 경찰이 채운 수갑을 사업부에서 풀어줬다”는 일성과 함께 “같이 구호 외치고 응원해 주고 격려해 준 애국시민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했다. 보수단체 집회의 단골 구호인 ‘애국시민’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자신이 정치적으로 어필할 타깃층을 특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추석 연휴 막바지에 유튜브 ‘이영풍TV’에 출연해 확실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자신의 체포를 대통령실이 사전에 알고 있었을 것이란 주장도 폈다. 의혹의 진위를 떠나서 이 채널 운영자는 부정선거 음모론을 믿으며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비상계몽’이라고 한 반탄·극보수 성향의 정치유투버다. 이미 정가에는 내년 지방선거 때 이 전 위원장의 대구 시장 출마설이 파다하게 퍼져있다. 여러 가지로 아귀가 맞는 대목이다. 실제로 그가 석방된 이후 강경 보수성향의 야당 지지자들은 그를 ‘애국투사’, ‘21세기의 잔다르크’, ‘자유대한민국의 철의 여인’ 등으로 호명하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이) 정치탄압 장사를 하고 있다’는 여당의 지적이 설득력이 있다.
그는 1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 민간인 신분으로 출석해서도 “대통령에게 밉보이면 당신들도 이럴 수 있다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민주당과 좌파 집단은 상상하는 모든 것을 하고 상상하지 못한 것도 한다고 했는데, 저를 잘라내기 위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는 건 상상할 수 있는 범주”라는 주장을 거두지 않았다.
이제 민간인이 된 만큼 이 전 위원장의 정치 발언을 법적으로 제재할 방법은 없다. 다만 위원장 재직 중 윤석열 정부의 무리한 방송장악에 앞장선 이로서 일말의 책임감을 느낀다면 자신을 ‘탄압받는 민주주의자’로 포장하는 일은 그만두기를 바란다. 그가 우선 해야 할 일은 방통위 흑역사에 대한 반성과 사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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