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이 가장 늦게 알게되는 구조를 바꾸는 일

[언론 다시보기] 정진임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소장

정진임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소장.

한 달 전, 충남 예산군 신암면 조곡리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조곡산단 반대 주민대책위 주민 세 분을 만났다. 2021년 SK에코플랜트는 이곳에 산업단지 건설을 추진했다. 산업단지 안에는 자원순환시설이 포함됐다. 하지만 언뜻 친환경적으로 보이는 이 시설의 실상은 산업폐기물 처리장이었다. 지하 35미터, 지상 15미터 규모에 석유, 페인트, 시너와 같은 산업폐기물을 처리하는 매립장이었다. 이들은 자기가 살고 일하는 지역에 환경오염 시설이 들어온다는 것을 한참 뒤늦게야 알았다. 누구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뒤늦게 사안에 대응하기 위해 군청에 찾아갔다. ‘왜 주민에게 알려주지 않았냐’고 묻자, 담당 공무원은 ‘홈페이지에 고시했다’고 답했다고 한다. 살면서 지자체 고시 공고를 수시로 들여다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만났던 주민은 “칠십, 팔십 먹은 노인네들이 홈페이지를 어떻게 보냐는 소리를 못 하고 그냥 벙쪄서 있었어요. 지금도 억울해요”라며 요식행위에 그친 군청에 바로 대꾸하지 못했던 당시를 회상했다.


조곡리뿐 아니다. 전국 농촌 곳곳에 환경오염 시설 도입을 둘러싼 갈등이 숱하게 벌어지고 있다. 난개발 추진 지역도, 문제가 되는 시설의 종류도 제각각이지만 모두를 관통하는 문제가 있다. 주민들은 이 사실을 뒤늦게야 알게 됐다는 점이다. 땅 주인이 아니라서, 어떤 시설이 들어오려는 건지 정확히 알려주지 않아서, 군청 홈페이지에 찾아보기도 어렵게 형식적으로 고시해 놓아서…. 이유는 다양하다.


왜 주민들은 뒤늦게 알 수밖에 없을까? 개발을 추진하는 과정에 주민들이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자료인 환경영향평가서의 공개는 한참이나 늦어지고, 사업을 승인하는 회의들은 주민들에게 비공개되기 일쑤다. 기업은 회의장에 들어와 직접 설명하지만 주민들은 참관도 할 수가 없다. 어떤 지역에 어떤 시설을 지으려고 하는지와 같은 기본정보조차 모든 협의가 종료된 이후에 고시될 뿐이다. 군청 홈페이지에 들어가야만 찾아볼 수 있도록 하는 그 고시 공고로 말이다. 환경오염 시설이 지역에 설립되는 과정에 주민들의 참여는 보장되지 않지만, 그것에 대한 피해는 오롯이 주민들이 떠안아야 한다. 환경오염으로 인해 건강과 삶터가 망가지기 일쑤다. 밀실에서 추진되는 난개발을 막고 주민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제도 개선이 필요한 이유다.


환경오염 시설이 지역에 들어오려고 할 때는, 땅 주인이건 주민 대표자건 상관없이 해당 지역 주민 모두에게 문자로 통지할 필요가 있다. 하루에 몇 통씩 재난 문자도 보낼 수 있는 인프라가 있는 정부라면 이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환경오염 시설 추진은 엄연히 정부-기업-주민 모두에게 영향이 있는 일이다. 그 과정에 주민의 목소리도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주민들의 삶을 지키는 과정에서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 기자는 군청, 도청에서 무슨 일들이 결정되고 있는지 가장 빠르게 알 수 있는 이들 중 하나다. 특히 지역 언론은 주민들이 몰랐던 개발 계획을 가장 먼저 포착하고, 그것이 지역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분석하고, 주민들에게 알릴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군청 홈페이지 구석에 묻혀 있는 고시 공고를 일일이 찾아볼 수 없는 주민들에게, 언론의 보도는 가장 효과적인 정보 전달 통로가 된다. 더 나아가 언론은 밀실에서 이뤄지는 의사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압박할 수 있다. 누가 어떤 회의에서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주민 의견은 얼마나 반영되었는지 추적하고 보도함으로써 행정의 책임성을 높일 수 있다. 환경영향평가서가 제때 공개되지 않는다면, 왜 공개하지 않는지 묻고 보도해야 한다. 어쩌면 공공기관은 지금껏 누구에게도 저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질문에 대한 대답이 온다면 그것은 분명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주민의 삶터에서 벌어지는 환경파괴 사안을 주민들이 가장 늦게 안다. 난개발 결정 과정에서 주민 배제와 정보 불평등의 벽은 단단하고, 이를 대하는 공무원들은 주민보다는 기업의 편에 서기 일쑤다. 난개발을 막아내는 것도 중요하고, 제도를 바꾸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우선 주민들의 삶을 위해 제도 개선이 이뤄지기까지 그 간극을 잘 메워야 한다. 스마트폰도 사용하지 않는 고령의 주민들에게 군청 홈페이지에 고시했으니 보라고 하는 무성의한 행정의 관행 앞에 언론은 중요한 전달자가 될 수 있다. 주민들이 가장 늦게 알게 되는 구조를 바꾸는 일에 분명 언론도 역할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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