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파인더 너머] (221) 다른 시간, 두 세계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박윤슬(문화일보), 이솔(한국경제신문), 고운호(조선일보), 박형기(동아일보), 이현덕(영남일보), 김정호(강원도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한 가판대에 두 세계가 공존한다. 위쪽엔 색색의 조화가 빽빽이 꽂혀 있다. 빨간 장미와 분홍 카네이션, 노란 거베라가 화려하게 피어 있지만 손끝에 닿으면 생명 대신 비닐의 감촉이 돌아온다. 인공의 완벽함으로 만든 꽃들은 시들지 않고 계절이 바뀌어도 언제나 같은 빛깔을 유지한다. 그 아래에는 또 다른 시간이 흐른다. 작은 봉투 속에는 미지의 생명이 잠들어 있다. 상추와 호박, 당근, 참외 씨앗 등이 봉투 표지로 존재감을 알리지만 실상 그 속을 들여다보면 새끼손톱보다 작은 소박한 알갱이뿐이다.


위의 꽃들이 ‘지금’을 붙잡은 세계라면 아래의 씨앗들은 ‘언젠가’를 기다리는 세계다. 조화는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약속한다. 하지만 생명은 반드시 변화 속에서 피어난다. 씨앗 하나가 틔우는 초록의 시간은 인내와 돌봄을 필요로 하지만 그 안에만 진짜 계절이 있다.


가판대는 그렇게 묘한 균형을 이룬다. 위에는 인간이 만든 정지된 생명이, 아래에는 자연이 품은 잠재의 생명이 서로를 비춘다. 지나가다 잠시 멈춰 두 세계를 바라본다. 시들지 않는 꽃과 자라날 꽃 사이. 어쩌면 우리의 삶도 그사이 어딘가 흔들리며 자라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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