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파장 예상하고도 김어준에 주목한 이유
[언중위, 민주당 정정보도 신청 기각]
해석·분석 기사에 정정청구 이례적
해당 기자 "토론으로 해결 가능한데
제도에 기댄다면 정치는 왜 있는가"
올해 언론계, 정치권에서 가장 논쟁이 벌어진 기사를 꼽으라면 이 보도가 아닐까. 주간경향의 ‘공장장 가라사대-팬덤 권력’(1645호, 9월15일자) 보도 이후 파장이 계속되고 있다. 김어준 유튜브의 팬덤 권력 현상을 여러 갈래로 나눠 분석한 이 기사를 두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공격이 이어졌고, 소수의견이지만 같은 당 의원의 “유튜브 권력이 정치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작심발언도 나왔다. 기사 속 문제의식에 공감한 타사 기자, 평론가의 관련 칼럼도 쏟아졌다. 이런 와중 민주당 국민소통위원회는 관련 기사인 <“김어준 생각이 민주당 교리”... 정당 기능마저 넘긴 집권당>에 대해 정정 및 반론보도를 신청하기도 했는데, 언론중재위원회는 최근 기각 결정을 내렸다.
민주당 의원들과 김어준 팬덤의 공격 등 보도 후 파장은 주간경향 기자들로선 기사를 쓰기 전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었다. 김씨 자체가 여권 인사들에겐 이미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고 지지층도 많지만, 그만큼 싫어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도 많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기사에 대한 비판적 의견 또한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의 정정보도 청구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이주영 주간경향 편집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해석·분석 영역의 기사에 대해 정정보도를 청구한다는 점에 대해 의아했고, 조정에서 어떤 주장을 할지 지켜보려던 참에 언중위의 기각 결정 소식을 들었다”며 “당연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 정도 기사도 여당에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 이 사회에 되게 위험한 신호라고 봤다”고 꼬집었다. 해당 기사를 쓴 이효상 기자도 “언론의 부작용을 적극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이긴 하지만, 반론을 충분히 개진할 수 있는 여러 채널이 있는 집권여당이 제일 먼저 이 방식을 택한 점에 과연 최선이었나 싶었다”며 “정치라는 건 제도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토론을 통해 해결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늘 이런 식으로 제도에 기대 해결을 하려는 것 같은데, 그럼 정치는 왜 있는 건가 싶었다”고 말했다.
‘공장장 가라사대’란 제하에 6개의 꼭지로 구성된 이 보도는 당시 7명의 주간경향 취재기자 전부가 달려들어 준비한 기사다. 유튜브를 통해 제기된 음모론, 어젠다가 여론과 정치권에 어떻게 작동하는지 연결고리를 되짚어보는 한편,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 시청자 21명 인터뷰와 1년간 출연진 집계를 통해 심층적·객관적 분석도 더했다.
취재는 6월 중순부터 시작됐다. 이른바 ‘어심(김어준이 미는 후보)’, ‘명심(이재명 대통령이 미는 후보)’ 논란이 불거지던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둔 시점, 부서 회식 자리에서 자연스레 김어준 유튜브에 대한 대화가 오갔다. 이주영 편집장은 “어느 유튜브에선 경향신문 수뇌부에서 결정한 거라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이어 “전당대회에서 김어준이라는 이름이 공개적으로 거론된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었다”며 “계엄과 탄핵이라는 드라마틱한 국면을 거치면서 여당이 집권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유튜브 매체의 영향력이 급격하게 올라왔다는 점, 이제는 인사에도 상당히 영향을 미친다는 데 대해 정부 초반 꼭 한 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우선 스터디 시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기자들이 일정 기간 김어준 방송을 꾸준히 챙겨보는 게 취재의 시작이었다. 처음엔 김어준이 키워드였지만, 유튜브를 보고 취재원들을 만나며 결국 정치의 문제라는 데 초점을 맞췄다. ‘김어준 악마화’는 제일 피하려 했다. 가장 큰 책임은 필터링 없이 그대로 활용하는 정치권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유튜브에 그 자리를 내줄 동안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한 레거시 언론의 책임도 분명 있는 사안이었다. 이재덕 기자가 그 다음호 ‘취재 후’ 코너에 “기사는 또 다른 차원의 괴로움이었다. 언론인 김어준을 비평한다는 것은 기자 개인으로서, 또 경향신문과 언론계 구성원으로서 나와 내가 속한 조직, 업계의 민낯을 직시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라고 전한 이유다.
‘레거시 미디어의 열등감’, ‘이런 기사가 필요했다’. 보도 이후 평가는 양쪽으로 갈렸다. 기자들을 향해 메일폭탄이 쏟아졌고, 한 SNS에선 기자 얼굴을 박제하는 등 이른바 ‘좌표찍기’도 벌어졌다. 기자들은 이 기사가 어떻게 읽히길 바랐을까. 이효상 기자는 “어차피 받아들이시는 분들에 달려 있다고 본다. 다만 이 사안을 한 번쯤 정면에서 다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가설을 세우고 입증하는 과정을 거칠 뿐’이라고 말한다. 레거시 언론 입장에선 가설이 증명되기 전까진 보도하지 않는 게 당연한 건데 너무나 쉽게 그 가설이 나온 과정을 얘기하는 게 정상적이지 않다고 봤다”며 “결국 이런 현상이 사회에 도움이 될까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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