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언론의 책임성과 품질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미디어바우처 제도를 도입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25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미디어바우처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에선 지역 언론이 신문 구독자 급감, 광고시장 축소 등으로 고사 직전에 처해있다며 미디어바우처 제도가 일종의 ‘생명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시됐다. 토론자들은 “언론사의 광고 매출이 과거 수준으로 회복 불가능한 오늘날 미디어 환경에서, 미디어바우처 제도는 언론의 산업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제도”라며 일단 시범사업부터라도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여한 유병욱 강원일보 미디어총괄본부장은 “미디어바우처 제도가 도입될 경우 신문사는 독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지면 제작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고 ‘좀 더 나은 신문’을 만드는 데 집중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며 “다시 말해 수요자 선택에 따라 언론사가 경쟁적으로 지역밀착 콘텐츠를 제작하고, 독자와 소통하는 구조를 촉진할 수 있게 된다. 오늘 토론회 이후 부디 현실적인 지원이 이뤄져 현장에서 일하는 지역 언론인들이 체감할 수 있는 결과물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지역신문협회 총괄부회장인 이영호 군포신문 대표이사도 “미디어바우처를 소지한 독자로부터 선택받기 위해서라도 지역 언론은 양질의 기사를 기획하고 현장 취재 등 심혈을 기울일 것”이라며 “특히 ‘가짜뉴스’ 근절은 물론 지역 중심의 고품격 언론서비스가 가능해져 지방분권, 지역균형발전에 커다란 역할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국회와 정부가 하루 속히 미디어바우처 제도를 도입하는 법률 제정에 나서주기를 간절히 청원한다”고 강조했다.
미디어바우처 제도는 정부가 시민에게 일정 금액의 바우처를 지급하고 시민이 신뢰하는 언론사에 그 바우처를 직접 사용케 하는 제도로, 언론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대안으로 주목받았다. 2010년 미국에서 최초로 제안됐고, 한국에선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1대, 22대 국회에서 ‘국민참여를 통한 언론 영향력 평가제도의 운영에 관한 법률안’, 일명 미디어바우처법을 대표 발의하며 주요하게 논의됐다.
다만 토론회 참여자들은 제도를 본격 도입하기 전 시범사업이 필요하다는 데 대부분 공감했다. 이날 토론회서 발제를 맡은 이용성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위원은 “미디어바우처 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 또는 과제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지역 단위의 시범사업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며 “이미 구독자지원 제도 운영 경험이 있고 지역신문발전기금과 언론진흥기금을 갖고 있는 지발위나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시범사업을 운영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사업 신설과 기금 증액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지원 대상 언론사, 배분 방식, 지급 대상과 지급액 등은 여전히 쟁점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김선호 언론재단 책임연구위원도 “가장 큰 문제는 재원”이라며 “재원의 출처로 방송 통신 주파수 사용료, 온라인 광고세,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 부가가치세, 포털 등 뉴스를 매개하는 플랫폼 사업자로부터 조성된 기금, 정부광고, 수신료 징수액의 일부 등이 언급됐지만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러운 법리적 근거로서 작용하고 있지 않다. 또 재원의 출처와 별개로 과연 대규모 재원 조성이 가능한가, 대규모 재원으로 언론사나 언론인을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등의 특혜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남궁창성 강원도민일보 미디어실장 역시 “국민이 직접 언론사를 선택하게 되면 특정 매체나 정치적 성향을 반영하는 매체로 바우처가 과도하게 집중될 수 있다”며 “매체 쏠림을 막기 위해 상한선이나 하한선을 설정하고 시범사업을 통해 정책적 오류를 최소화해야 한다. 유튜브 시장의 극단화 현상이 재발될 우려가 있는 만큼 시범사업 실시를 통해 안전장치와 투명성 확보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날 토론회에선 큰 틀에서의 합의만이라도 이루자는 의견도 나왔다. 유병욱 본부장은 “재정이 어떻고 지원 대상이 어떻고 이런 얘기들이 계속 오가는데, 저는 원칙적으로 ‘미디어바우처법을 제정하자’라는 큰 틀에서의 합의는 이뤄졌으면 좋겠다”며 “세부적인 내용은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서 해야지 우리 스스로 자꾸 한계를 짓는 것 같다. 지역 언론들만이라도 기본적인 원칙을 합의하고 법 제정 단계로 넘어간 뒤 그 안에서 논의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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