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 마늘과 만나면, 닭도 소도 한층 맛있어진다는데...

[역사와 스토리가 있는 영남 음식] (14) 의성마늘

사람들은 말한다. “영남에 맛있는 요리가 있어?” 때론 이런 말도 덧붙인다. “거긴 한국에서 제일 먹을 게 없는 도시들이야.” 과연 그럴까? 호남에서 4년, 서울에서 18년, 나머지 시간을 영남에서 살고 있는 필자로선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뭔가 말하고 싶은 열망에 몸이 들썩거린다. <역사와 스토리가 있는 영남 음식>은 그런 이유에서 발원한 졸고다. [편집자 주]


압도적인 양과 비주얼의, 그야말로 마늘천지. 경북 의성 재래시장에선 흔한 풍경이다.

2019년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길목인 9월이었다.


지금은 여러 구설수와 논란에 휩싸여 적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욕을 얻어먹는 처지가 됐지만, 그때는 백종원의 위상이 ‘요식업계 황제’에 가까웠다.


보통의 시청자가 보기엔 지겨울 정도로 TV 출연이 잦았고, 그가 언급하거나 찾아간 식당은 당장 매출액에 0이 몇 개 더 붙을 정도로 손님들이 밀려들었으니.


경상북도 의성. 튀긴 닭에 양념을 해서 파는 가게가 있다고 했다. 백종원이 다녀간 곳이었다. 시골의 여느 식당과 다르지 않은 입구와 실내. 문은 열려있는데 주인장이 없었다. 전화번호를 적어놓았기에 통화를 했다.


“10분만 기다려요”란다.


긴 시간이 아니니 “그러겠다”고 답했고.


잠시 후 나타난 아주머니(혹은, 할머니)가 뚝딱뚝딱 자른 닭을 기름 솥에 익혀 꺼낸 후 불그스레한 양념을 꺼내왔다. ‘훅~’하고 풍겨오는 알싸한 마늘 냄새.


양념에 들어간 마늘의 엄청난 양이 짐작되는 순간이었다. 옥호(屋號)가 ‘양념통닭’이 아닌 ‘마늘닭’인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마늘닭의 주인공은 마늘일까, 닭일까.

짐짓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백종원이 이 마늘양념에 반했나 봐요?”


기대와 달리 자랑이 아닌 심상한 대꾸가 돌아왔다.


“그 양반? 뭘 엄청나게 아는 척하던데, 지가 닭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어.”


오랜 세월 닭을 고르고 만지고 튀겨내고, 거기에 어떤 양념이 어울리는지 수십 년 골똘하게 고민해 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프라이드. ‘의성 마늘닭집’ 주인의 말에선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런 자긍이라면 까짓 백종원이 아니라 고든 램지(Gordon Ramsay)도 우습게 보일 듯했다. “닭튀김이라면 내가 너보다 훨씬 잘 알아”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유명한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는 법. 그날 맛본 마늘닭은 기름에 튀긴 음식 특유의 느끼함이 없었고, 자극적이지만 미묘하게 미각을 자극하는 마늘의 풍미가 입과 더불어 코까지 행복하게 만들어줬다.

영어로는 갈릭(Garlic)이라 부르고, 중국인들은 산(蒜)이라 쓰는 마늘의 역사는 유구하다.


드라마틱한 소설처럼 재밌는 역사책 <삼국유사>에서도 곰과 마늘에 얽힌 토픽이 확인된다. 이 책은 자그마치 800여 년 전인 고려왕조 말기에 승려 일연(1206~1289)이 쓴 것이다.


더 멀리 가보자.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 파라오(Pharaoh)가 지배하던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에도 ‘건강하려면 마늘을 드시게’라는 문장이 등장할 정도.

고기 한 점에 생마늘 두쪽. 화끈한 한국인의 입맛.

점심으로 ‘마늘닭’을 먹은 그날. 저녁은 의성군에서 유명하다고 이름난 소고기구이집에 갔다. 채식주의자라면 치를 떨 일이겠으나, 나는 육식주의자(?)에 가깝고, 다행히 내 주변에 베지테리언이 없으니.


듣기로 의성에서 식용으로 키우는 소에겐 마늘을 먹인다고 했다. ‘얼마나 지천이면 사람 먹는 마늘을 소에게까지 먹일까’라는 의심이 들었다. 한데, 그런 생각은 의성군 재래시장마다 주렁주렁 널려있는 수천 접 마늘을 보며 사라졌다. 의성은 한국에서 손꼽히는 ‘맛있는 마늘’ 산지다.


그걸 증명하듯 석쇠에 구운 소고기 옆에는 의성마늘이 한 접시 가득 놓였다. 굽지도 않은 생마늘이. 누구랄 것도 없었다. 식당 안 사람들 모두가 소고기 한 점에 마늘 한 쪽을 더해 꿀꺽꿀꺽 삼키고.


소고기구이집 주인에게 물었다. “마늘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느긋하고 여유만만한 대답이 금방 돌아왔다. 반문이었다.


“네? 마늘 싫어하는 한국 사람이 있나요?”

굳이 단군신화까지 거론하지 않아도, 우리는, 마늘의 민족이다. 아마도.

맞다. 한국 사람인 나도 마늘을 누구보다 좋아한다.

그러니까… 그게 2011년이다. 한 달쯤 마케도니아의 호숫가 마을 오흐리드(Ohrid)에 머문 적이 있다.


그 기간 숙소였던 조그만 게스트하우스에선 가끔 유럽 각국에서 온 청년들의 바비큐 파티가 벌어졌다. 라제 파마코스키, 알렉산더 몰코스키란 이름을 가진 동네 청년들은 구운 고기보다 생마늘을 더 많이 먹는 나를 보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 별명이 ‘미스터 갈릭맨’이 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마늘은 맛있다. 의성마늘은 특별히 더 맛있다.


[필자 소개] 홍성식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중·고교 시절. 영어 단어와 수학 공식을 외우라는 교사의 권유를 거부하고, 김지하와 이성부의 시를 읽으며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를 보러 극장에 드나들었다. 그 기질이 지금도 여전해 아직도 스스로를 ‘보편에 저항하는 인간’으로 착각하며 산다. 노동일보와 오마이뉴스를 거쳐 현재는 경북매일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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