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법 무시하고 사장추천위원회 무력화하는 유진그룹의 YTN 최대주주 자격을 박탈하라.”
전국언론노동조합과 언론노조 YTN지부, 9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이 18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유진그룹 YTN 사장추천위원회 무력화 규탄 기자회견’에서 “YTN 최대주주 유진그룹이 방송의 자유와 독립성을 강화하는 취지로 개정된 방송법을 무시한 채 입맛대로 사장을 꽂으려 시도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언론개혁특별위원회 부위원장)과 공동주관으로 열린 기자회견은 방송법 통과로 사장추천위원회 도입이 의무화된 YTN에서 대주주 유진그룹이 사추위 상당수를 차지하는 안을 사측이 최근 제시한 게 직접적 계기가 됐다. YTN지부 등은 이날 기자회견문에서 사측 안에 대해 “유진그룹이 독식하도록 설계해 유진그룹 맞춤형 사추위를 만들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며 “사실상 최대주주가 사장 인사권을 장악하는 것으로 방송의 독립성을 철저히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호찬 언론노조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사추위에 대한 입장을 보니 유진그룹은 역시 보도전문채널을 소유할 자격이 없다. 사추위를 두는 이유 자체에 대한 인식이 없고, 공공성이란 마인드조차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며 “결국 해법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출범 후 불법적인 2인 방송통신위원회에서 YTN을 무자격 자본 유진에 넘긴 과정을 명확히 조사해 YTN 최다 출자자에서 퇴출시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이번 방송3법 개정에서 공영방송의 경우 국민추천위원회에서 시민들이 직접 사장 후보를 뽑아 방송의 독립성 보장을 이룰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지만 아쉽게도 YTN 같은 보도전문채널엔 국민들이 직접 사장 후보를 뽑는 제도를 전면 도입하지 못했다”면서 “YTN 최대주주 유진그룹은 이마저도 무력화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진그룹이 대주주가 된 뒤) 공정방송 장치인 보도국장 임면동의제, 사추위가 무력화됐는데 그마저도 유진그룹은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할 사장을 낙점할 도구로 사추위를 또다시 전락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사추위 관련 협상에서 YTN 측은 대주주 추천 4명(유진그룹 추천 3명), 노조 추천 1명, 시청자위원 1명 등 총 6명으로 구성된 안을 제시했다. 정책설명회와 면접 과정도 모두 비공개로 돌리고 최종 면접 대상자를 3명으로 확대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앞서 전임 김백 사장 사퇴로 인한 사내이사 자리에 정재훈 사업본부장을 내정하는 안건을 의결하고, 새 대표이사 직무대행을 맡긴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같은 행보에 반발해 온 노조는 각 대주주가 1명씩 3명, 노조 추천 3명, 시청자위원 1명, 언론 관련 학회 추천 1명, 언론 시민단체 추천 1명 등 총 9명으로 꾸려지는 안을 내고 설명회·면접 절차의 공개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YTN지부는 이날 발행한 쟁의대책위원회 특보에서 “이사회처럼 사추위도 입맛에 맞는 인사들로 채운 뒤 밀실에서 졸속 심사를 거쳐 최종적으로는 정 본부장을 사장 자리에 앉히려는 속셈”이라며 “노사 갈등으로 사추위 구성이 안 되더라도 그냥 정재훈 사장 대행 체제를 계속 유지하면 된다는 계산도 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측의 사추위 안에 대해 “유진그룹 마음대로 다 하겠다는 얘기”라며 “이사회에 올릴 최종 후보 숫자도 3명으로 늘렸는데, 점수가 3등이어도 유진그룹 눈에만 잘 보이면 1등으로 뽑겠다는 뜻”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날부로 임단협 협상 결렬에 따른 쟁의 120일째를 맞은 YTN 구성원들은 기자회견에 앞서 5차 파업 돌입을 선언했다. 쟁의 후 5번째 파업을 시작한 YTN지부는 18일 오전 10시30분 서울 마포구 YTN 사옥 1층에서 조합원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결의대회를 열고 “방송법 무시하는 유진그룹 퇴출하라”를 외쳤다. 파업은 21일까지 나흘간 진행된다. YTN지부는 윤석열 정부 시기 YTN 대주주였던 공기업들이 지분을 처분하고 유진그룹이 YTN 최대주주로 승인된 과정의 위법성을 지적하며 이를 방송장악의 맥락에서 지속 비판하고 고발, 수사 요구도 해왔다. 이후 민영화된 YTN에서 방송의 공정성과 독립성이 침해받는 행태가 잇따르는 데 비판 목소리를 이어오던 중 이번 사측의 사추위 안이 5차 파업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이날 직접 발언에 나선 A 조합원은 이번 사장 대행 선임에 대해 “가장 약한 고리, 그러니까 후배들이 대놓고 뭐라 할 수 없는 사람을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자리를) 맡게 하고 (시간이 지나) 정권 말이 되면 (관심이) 쭉 빠지니까 결국 중간 기착점 정도로 생각한 인사 아닌가 싶다”며 “인간적인 부분과 별개로 후배들 입장에선 굳이 그 자리를 맡았어야 하는지 상당히 아쉬운 면이 있다”고 했다. 이어 “우리 노조는 정말 분위기가 좋은 편이지만 집행부로선 대응하기 까다로울 수밖에 없을 텐데 노조원들이 더 조합에 많은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말 일과시간 중 YTN 간부들을 참석시킨 송년회에서 유경선 회장이 반말을 하고 여성 앵커를 찾는 등 언행을 했다는 최근 폭로와 관련해 B 조합원은 “선배들의 노력들 덕분에 지금 YTN 스튜디오에서 진행을 하는 앵커들은 국회의원이든, 장관이든, 대통령 후보든 누가 와도 어떤 질문도 할 수 있게끔 돼 있고, 그게 YTN의 역사였다. 그런 위상을 하루아침에 짓밟은 것”이라며 “일개 사원도 내가 다니는 회사 이름에 먹칠을 하거나 누가 될까 봐 자기를 낮추게 되는데 계열사 하나쯤 방송사를 거느리고 싶어 안달이 났다면 최소한 언론사 사주 코스프레는 했었어야 하지 않나”라고 비판했다.
조성은 언론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우리가 뜨거운 땡볕 아래 방송법 개정을 외쳐온 이유는 제대로 된 공정방송,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언론을 만들자고 한 것 아니었나. 유진 입맛에 맞는 사장을 뽑고 유진 이해관계게 부합하는 보도를 하라고 방송법 개정을 한 게 아니지 않나. 저들의 사추위 안은 그렇기 때문에 언론노동자에 대한, 방송법 개정을 염원해 왔던 우리 시민사회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내란 정국 동안 기계적 중립으로 사실상 내란 동조 보도를 했던 자들이 방송법이 개정되자마자 체리피킹 하듯 이런 식으로 악용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들의 장악 음모는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8~9월 사이 YTN지부는 개인 송사에 필요한 자금 지원을 위해 계열사 금원을 대여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입혔다는 배임 혐의로 유 회장을 경찰 고발했다. 단협 파기로 임명된 사측의 보도본부장·보도국장 임명 취소를 요구하는 3차 변론이 18일 진행되기도 했다. 8월 말 임단협 교섭에서 사측은 보도국장 임명동의제를 시행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노조는 과거 단협에 규정돼 있던 제도를 지키겠다는 확인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타결을 위해선 김백 사장 재임 시기 이뤄진 조직개편의 원상복구 및 부당 인사·징계에 대한 취소가 필요하다고 전해 사측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파업 2일째인 19일엔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YTN 졸속매각 규명 및 유진그룹 최다액출자자 자격박탈 요구’ 기자회견을 예고했고, 사측과 사추위 3차 교섭 및 2024 임단협 15차 교섭도 예정된 상태다.
전준형 YTN지부장은 “120일간 투쟁으로 많은 걸 바꿨다. 김백(사장)을 쫓아냈고 사추위와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를 얻어냈다. 하지만 최근 유진그룹과 회사 반응을 보면 이 모든 건 모래성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YTN 정상화를 위해선 유진그룹이 완전히 YTN에서 손을 떼게 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국회가 이번 달 방통위를 정상화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한다. 방통위가 정상화되면 그동안 YTN 매각 과정의 문제와 졸속 심사, 승인 조건 위반에 대한 모든 것들에 대해 다시 정상적인 심사와 평가가 이뤄질 거라 확신한다”면서 “그러나 YTN이 정상화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구성원들이 유진그룹을 거부하고 있다, 유진그룹을 쫓아내기 위해 열심히 싸우고 있다는 걸 끊임없이 증명하고 확인시켜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싸우지 않으면 누구도 우리를 위해 싸워주지 않는다. 더 많은 조합원들이 함께해서 YTN 구성원들이 얼마나 강력하고 간절하게 정상화를 원하는지, 국민의 보도전문 채널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지 명명백백하게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최승영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