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취임 100일을 맞은 기자회견에서 더불어민주당 언론개혁특별위원회가 강행하고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제동을 걸었다. 고의·중과실로 인한 허위보도에 배액배상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에 “중과실은 배액배상 요건으로 부적절하다”고 지적했고, 징벌 대상에서 유튜브는 제외하는 지점도 “언론만을 타깃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 지적에 민주당은 부랴부랴 수정안을 내놨다. 대통령 발언 4일 만에 달라진 내용을 보면 고의적 허위보도에 대해서만 배액배상을 하도록 하고 중과실은 제외했다. 또 언론중재법이 아닌 정보통신망법 개정으로 방향을 틀어 유튜브 등 온라인 플랫폼도 배액배상 대상에 포함하기로 했다.
초안이 안고 있던 일부 문제가 뒤늦게나마 손질됐다니 다행이다. 그러나 법안을 둘러싼 가장 큰 문제는 해소되지 못했다.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등 권력자를 배상 대상에 포함하면서 자칫 법안이 권력자를 보호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다. 지금껏 언론특위는 권력자의 경우 언론중재위원회에 조정 신청을 한 후에야 소송을 진행하도록 하고 비판 보도를 막기 위한 ‘전략적 봉쇄소송’이라고 법원이 판단하면 아예 소를 기각할 수도 있게 하는 등 견제 장치가 충분하다는 주장을 펼쳐 왔다. 언론사가 권력자의 고액 소송 압박에 짓눌려 불합리한 조정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아 실효성이 없다는 판단에 이 부분은 최종안에 빠질 가능성이 높지만, 권력자를 제도에서 원천 제외하라는 언론계의 주장에 대해선 요지부동이다.
허위보도 피해 시민의 부담을 덜겠다는 취지로 언론사가 고의가 없었음을 스스로 입증하도록 한 점도 문제가 많다는 목소리가 높다. 법원이 요구한 자료를 제출하지 못할 경우 곧바로 언론사가 고의로 허위보도를 했노라 추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당한 보도라는 사실을 소명하는 과정에서 취재원이 강제로 노출돼 공익 제보가 위축될 가능성도 크다.
언론 현업단체가 여러 차례 밝혔듯 우리는 허위조작 보도를 막자는 법안의 취지 자체에 반대하지 않는다. 우리는 ‘가짜뉴스’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심각하게 인지하며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 전체의 노력을 간절히 원하는 당사자다. 언론을 불신하다 못해 징벌까지 바라는 국민의 목소리에 대해서도 깊이 반성하고 있다. 그러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한 기준조차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언론사에 과도한 배상 부담만 가중하는 개정안은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 극단적 처방에 불과하다. 또한 권력자들은 이미 언론사를 상대로 수십억 원대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할 만큼 대응력이 충분하다. 개정안은 권력자에게 또 하나의 무기만 안겨줄 뿐,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언론의 권력 감시 기능을 훼손할 위험이 크다.
민주주의는 자유 언론이 권력을 견제할 때 비로소 건강해진다.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정확한 정보 접근권이라는 두 민주적 가치가 충돌하는 이 문제는 애당초 정치권만의 졸속 처리로 해결할 일이 아니었다.
대통령의 한마디에 법안의 주요 내용이 손바닥 뒤집듯 바뀐 해프닝만 봐도 졸속 처리의 문제는 명백하다. 이달 25일 전광석화처럼 관련 법을 고치겠다는 여당의 ‘속도전’은 이미 명분을 잃었다. 한 걸음 물러서서 모든 이해관계자가 테이블에 앉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회 전체가 참여하는 진지한 숙려 과정이 시작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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