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언론중재법 개정' 입장 선회… '권력자 포함'은 고수

15일 기협 등 언론현업 4단체 공동 토론회
노종면 의원 "중과실 제외, 고의·악의로 단순화"
11일 대통령 기자회견 후 입장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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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언론개혁특별위원회가 9월 중 처리를 공언한 허위정보에 대한 배액 배상안 도입을 언론중재법 대신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통해 추진하는 것으로 선회했다. 기존 언론중재법 주요 내용 중 언론계에서 논란이 됐던 일부 조항도 삭제한다고 밝혔다.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유튜브에서도 일부러 가짜뉴스로 관심을 끈 다음 돈 버는 사람이 많은데 가만히 놔둬야 하느냐”, “(배상은) 언론중재법을 건들지 말자”는 발언 후 변화 기류가 나타나는 모습이다.

15일 한국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PD연합회 등 언론현업 4단체가 주최한 <허위정보 배액배상 어떻게 봐야하나> 토론회에서 노종면 더불어민주당 의원(언론특위 간사)은 대통령 발언에 대해 “언론중재법으로 바꿀 부분은 바꾸되 배액배상제는 (정보통신)망법으로 하자는 취지”라며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고 저희도 그렇게 입장을 조율해 가던 과정에서 대통령 입장이 나왔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15일 언론현업4단체가 주최한 <허위정보 배상 어떻게 봐야하나> 토론회. (왼쪽부터) 표시영 강원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노종면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성호 MBC기자(방송기자연합회장), 이준형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전문위원, 심석태 세명대저널리즘대학원 교수, 강성훈 KBS PD, 김은지 시사IN 기자(한국기자협회 부회장), 이재욱 MBC기자. /한국기자협회

앞선 기자회견에서 이 대통령은 “언론을 특정할 게 아니라 누구든 돈을 벌거나 누군가를 해코지할 목적으로 악의를 갖고 일부러 가짜 정보를 만들어 내거나 조작하면 아주 크게 배상하게 하자”며 “당에 언론만을 타깃으로 하지 말라는 얘길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또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비서관은 이날 “언론중재법을 건드리게 되면 언론을 타깃으로 해서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야기”라며 “언론중재법보다는 정보통신망법에서 해서 좀 더 큰 그물을 펼치는 게 낫지 않냐는 말씀”이라고 부연했다.

이에 따라 배액 배상제 도입을 포함해 언론중재법에 포함될 것으로 거론돼 온 조항의 수정이 예고된다. 일례로 5일 언론특위는 허위조작 정보를 새로 규정하고, 고의는 물론 중과실로 허위사실 등을 인용 보도하기만 해도 배액 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구체적 추정 요건까지 적시한 개정안 주요 내용 등을 공개했는데, 이중 ‘중과실’에 대한 부분을 제외하기로 했다. 또 그간 배액 배상을 3배, 5배 등 특정 배수로 정하기로 했던 노선도 뒤집었다.

노 의원은 “중과실 개념은, 간단히 말씀드리면 빠졌다”며 “(애초 중과실이 포함된 이유는) 결국 법원이 허위여부를 판단하지만 이걸 중과실로 볼지, 고의나 악의적인 걸로 볼지 애매한 경우 법원의 판단에서 가급적 재량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법을 설계하고 싶었던 거다. 보도를 했을 때 누군가 법익 침해를 당할 걸 알 수도 있었을 부분을 상정해두자는 취지였지만 내부 여러 논의가 있었고, 저는 오해라 보지만 언론계 의견 등을 감안해 고의나 악의로 단순화하기로 조율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몇 배 정액’으로 하는 것도, 수치는 아직 결정 못했지만 법원 재량을 폭넓게 인정하는 게 맞는가 고민에서 정액의 아이디어가 나왔던 건데 ‘몇 배까지’로 하는 방향으로 내부 정리가 거의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앞서 “일부러 그러는 것과 실수는 다르다”며 “일부러 그런 게 아니면 중대한 과실이라도 징벌 배상할 일은 아니다”라고 했다. 또 “규제 범위는 최대한 좁히자”며 “고의적으로 나쁜 의도를 가지고 일부러 그러는 것을 못하게 하자”고도 했다.

“권력자 소송 인한 공론장 위축 효과, 결국 시민에 피해”

언론계에서 실효성 의문을 제기한 전략적 봉쇄소송 방지책, 즉 ‘언론중재위 조정 전치주의‘에 대해서도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언론특위는 앞서 권력자들이 언론보도에 배액 배상을 청구할 때 언론중재위의 조정신청을 의무적으로 거치고 직권조정 결과를 따르도록 하는 방안을 악용 방지책으로 제시했다. 불복 시 일반 손배소 제기는 가능하지만 권력자의 경우 이 결정에 반해 손해액의 몇 배 책임을 물리는 배액 배상을 청구하려면 별도 취소소송을 거쳐 승소해야 한다. 또 전략적 봉쇄소송을 당했다고 본 언론이 법원에 ‘중간판결’을 신청하면 제소는 중단되고 이유가 인정되면 제소 자체가 기각되는 방안도 제시했다.

노 의원은 “언론중재위 제도에 대해 평가는 다양하겠지만 실익이 있을 것이라 판단했는데 제 스스로도 이건 부인할 수 없겠다 한 부분이 ‘언론사가 배액 소송을 피하기 위해 불합리한 조정을 수용하도록 압박받을 수 있다’는 점”이라며 “위헌일 수 있다는 지적도 매우 중하게 듣고 내부 검토를 해왔는데 지금은 ‘언론중재위 전치주의’는 빼는 쪽으로 기류가 흐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노 의원은 중간판결 제도에 대해서는 고수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민법상 중간판결을 활용한 제도에 대해 발제자께선 실효성이 없을 것이란 평가했지만 저는 매우 힘 있는 제도로 작동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그간 중간판결과는) 개념이 달라서 요건 자체가 이미 특정돼 있고 거기에 대해 판단이 나오면 가처분을 능가하는 효과를 주기 때문”이라며 “재판부가 권력자, 정치인 등에 대해 봉쇄소송이라 판단하면 그 재판 결과를 권력자 스스로 공표하도록 명령할 수 있는 장치까지 넣었다. 일률적으로 언론보도가 위축된다는 게 합리적인 우려인지 문제의식이 있다”고 했다.

언론계에서 가장 크게 우려가 나온 ‘권력자에 대한 징벌적 손배청구 대상 제외’에 관해서도 그동안과 다르지 않은 입장이 나왔다. 언론계가 지속 제기해 온 9월 처리를 목표로 추진돼 온 ‘속도전’에 대한 설명도 따로 없었다. 노 의원은 “지금 저희 과제는 권력자에 의한 봉쇄소송이 존재한다고 판단하고 그걸 막을 수 있는 실효적인 방법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라며 “저희가 제안하는 봉쇄소송 방지책에 방안이 담겨있다고 본다. 공인을 일률적으로 배제할 명분이 저는 좀 떨어져 보인다”고 했다.

민주당 언론특위 자문위원인 이준형 언론노조 정책전문위원은 이날 발제에서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통한 유튜브, 포털 등의 이용자를 배액배상제로 규율할 때 검토 사항을 제시, “(언론중재법과 관련한 문제제기와) 마찬가지로 권력자를 배액배상 청구 대상에서 원천적으로 제외하고, 권력자의 경우 일반 손배 등 기존 제도를 활용하도록 해야”하고, “고의( 및 중과실) 추정 조항 삽입에도 일관적 반대 의견”이라고 밝혔다. 언론, 대형 유튜버 뿐 아니라 일반 시민,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침해할 수 있다며 배액배상제 대상이 되는 이용자는 구독자 수 등 기준을 마련해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기자와 PD, 교수 등 언론계와 학계 등 인사들은 현업 경험에서 나온 현실적인 우려, 그간 언론중재법 논의, 유튜브가 포함된 허위정보 대응 방향 등 전반을 아울러 한목소리로 우려를 내놨다. 김은지 시사IN 기자(한국기자협회 부회장)는 “정치와 자본으로 대표되는 권력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같은 경우 (청구 가능한 대상에서) 빠져야 된다는 입장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오남용의 가능성이 크고 단 한 건이라도 그것이 공론장에 끼치는 위험이 크다는 차원”이라며 “기자 개인에 대한 보호, 민원 차원이 아니라 권력감시 기사를 위축하게 하는 효과 때문이라고 말씀을 드리겠다. 시민을 위한 해당 권력자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를 방해하거나 왜곡하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라고 했다.

15일 언론현업4단체가 주최한 <허위정보 배상 어떻게 봐야하나> 토론회에서 노종면 더불어민주당 의원(민주당 언론특위 간사)가 발언하고 있다. /한국기자협회

소속사와 기자 개인 차원, 윤석열 정부 시절 MBC 등을 사례로 든 그는 “이런 주장은 이것이 권력자의 성격, 선한 의지에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권력 그 자체가 가진 힘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단 한 건이라도 그것이 공론장에 주는 위축 효과를 우리는 지난 몇 년 간 지켜봐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승소여부와 상관없이) 그 사이에 들었던 시간과 에너지, 그 당연한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 우리 사회 온 기관이 동원돼 갈등을 하고 에너지를 썼다는 차원에서 과정상 드는 비용도 생각해봐야 한다. 실질적으로 변호사 비용은 아주 현실적으로 작동했고, 이 중심에서 시민을 놓고 봐야한다는 주장을 다시금 드릴 수밖에 없을 듯하다”고 부연했다.

“중과실 제외? 처음 들어… 중요 논의를 라이브 축구중계하듯 하나”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는 충분한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 ‘속도전’으로 추진되는 과정, 국내와 해외의 손배체계가 다름에도 언론불신을 토대로 마치 선전선동처럼 추진되는 현실에 대한 경계, 언론계 전반의 미진했던 자율규제 논의 등 전반을 지적했다. 심 교수는 “중과실 제외 방침을 여기 와서 처음 들었다”면서 “한국 사회 언론·표현의 자유, 권력 감시 체계 전반을 논의하는 큰 틀의 제도 설계를 하는 중차대한 법안에 대한 논의를 라이브로 축구중계처럼 지금 듣고 있다. 이게 과연 정상적인 상황인가”라고 했다.

심 교수는 “대통령께서도 이번에 미국 폭스 뉴스 케이스를 얘기했는데 아무도 말하지 않는 부분은 미국에선 국내에서 15만원, 50만원, 100만원 이런 손해배상 건들이 대상 자체가 아니란 것”이라며 “이를테면 사실적시는 명예훼손을 비롯해 국내에서 초상권이나 사생활 침해, 음성권 침해 등 광범위하게 인정되는 대부분 사안이 미국에선 인정되지 않고 바늘구멍을 통과해 책임질 사안으로 가게 되니 대단히 높은 수준의 배상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걸 다 빼고 형편없이 떨어뜨려 놓은 평균액을 두고 한국 언론사들이 잘못해도 배상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식의 선전선동이 이뤄지는 데 대해 엄격히 얘기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심 교수는 그러면서 “제가 이번에 이 논의를 보며 제일 답답했던 부분은 2021년 이후 여기 언론 단체에 계신 분들, 언론인들은 무엇을 하셨냐는 거다. 정치권에서는 사실 이게 돌림노래처럼 계속 나오는데 언론은 어떤 부분에서 실효적으로 촘촘하게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 위한 조치들을 해야할지 부분에 대해 고민을 해 봐야 될 것 같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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