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를 대신해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방미통위)를 설치하는 법이 1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앞서 밝힌 일정대로라면 이 법은 15일 법제사법위원회 상정, 18일 본회의 상정을 거쳐 25일쯤 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이다.
부칙 제1조에 따라 이 법은 공포한 날 바로 시행된다. 국무회의 의결과 관보 게재 등의 일정을 고려할 때 이르면 추석 연휴 직후 법이 공포·시행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법이 시행되는 즉시 이진숙 방통위원장의 임기는 종료된다. 이 법 부칙 제4조가 지금은 이진숙 위원장 한 명뿐인 정무직을 제외한 방통위 공무원들에 대해서만 방미통위로의 승계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진숙 위원장만 물러나는 게 아니다. 방통위란 이름 자체가 17년 만에 사라진다. 중간에 ‘미디어’만 들어갈 뿐 비슷한 이름이라고는 해도 어찌 됐든 현판부터 홈페이지, 각종 정부 문서 등에서도 방미통위로 이름을 바꿔 달아야 한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등장했던 방통위란 이름을 더는 쓰지 않게 되는 것이다.
유료방송 정책 포함, 규제 및 진흥 부처로
그렇다면 이름 말고 달라지는 건 무엇일까. 가장 큰 건 위원회 구성 방식과 소관 사무의 변화다. 기존 방통위가 5인 상임위원 체제였다면, 방미통위는 상임(3인)+비상임(4인) 구성으로 상임위원이 2명 주는 대신 총원은 2명 늘어난다. 대통령이 위원장과 비상임위원 1명을 지명하고, 나머지 상임위원 2명은 여야가 각각 한 명씩, 남은 비상임위원 3명은 여당이 한 명, 야당이 2명 추천해 결과적으로 여아 4대3이 되는 구조다. 또 위원회 회의는 4명 이상의 출석으로 개의해 출석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하기로 정족수 규정도 손봤다.
그리고 2013년 미래창조과학부로 분리된 후 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체제까지 이어졌던 유료방송 정책 기능을 방미통위가 흡수한다. 방미통위 설치법 제11조 위원회의 소관사무 조항엔 ‘유료방송정책, 뉴미디어정책, 디지털방송정책’이 추가됐고, 이에 따라 과기정통부 소관이던 IPTV 등 유료방송을 포함한 ‘방송의 진흥 및 규제’에 관한 사항을 폭넓게 방미통위가 다루게 됐다. 규제기관이던 방통위가 이젠 진흥까지 책임지는 부처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크게 달라지는 건 이 정도다. 방통위법 제정 17년 만에 이를 폐지하고 만든 ‘제정법’이자 최민희 과방위원장 말대로라면 “13년 논의”해서 만든 법인데 구조와 내용은 기존 방통위 설치법과 상당 부분 유사하다. 이 때문에 방미통위를 방통위와 다른 ‘새로운 조직’으로 볼 수 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새로운 방송통신 기구” vs “기본적으로 동일한 조직”
5일 과방위가 개최한 ‘방송 미디어 통신 거버넌스 개편 공청회’에 진술인으로 참석한 이인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제가 보기에는 전혀 새로운 조직이 아니다”라며 “권한 범위가 좀 확장되기는 하는데 기본적으로 조직 구성 방식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새롭게 방송통신 쪽의 기구를 만들어 보려 한다”는 최민희 위원장 설명에 반박하며 한 말이다.
국민의힘 의원들도 이날 ‘개정만 해도 될 걸 굳이 새로운 법을 만들어서 이진숙 위원장을 쫓아내려 한다’며 반발했다. 최형두 의원은 “이진숙 방통위원장을 그냥 법에 의해서 교체할 수 있는 법안이라는 것 외에는 긴급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민희 위원장과 과방위 여당 간사인 김현 의원은 법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이라고 지적했다. 김현 의원은 그러면서 “현행법을 폐지하고 제정법으로 가는 이유는 방송 분야의 상당 영역이 들어오면서 조직이 커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현 의원에 따르면 방미통위 업무 조정·확대로 과기정통부에서 자리를 옮기게 될 공무원은 35명. 현 방통위 본부 직원 수 기준으로 약 15%에 해당한다. 소관 사무가 늘고 인원도 늘면서 예산도 늘겠지만, 조직 신설에 준하는 큰 변화인지는 해석하기 나름일 수 있다. 2008년 방송·통신 전 분야를 관할하는 ‘매머드급 부처’로 출범한 방통위는 2013년 미래부로 분리되며 절반 수준으로 쪼개진 뒤에도 이름이 그대로였고, 설치법도 일부 개정만 됐다.
‘제5장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 부분 역시 그렇다. 위원장을 국회 인사청문을 거쳐 대통령이 정무직 공무원으로 ‘임명’하도록 바꾼 것과 국회 탄핵소추 대상임을 명시한 제19조(심의위원장) 신설 정도를 제외하면 기존 방통위법과 거의 그대로다. 심의위 직무, 심의 대상도 추가되거나 바뀐 게 전혀 없는데 이름은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로 바꿔야 한다.
7인 체제, ‘5 플러스 9 나누기 2’ 아니라지만…
방미통위 위원을 5인에서 7인으로 늘리는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7인 안’을 처음 제안한 노종면 민주당 의원은 단지 최민희 의원안의 ‘9인’과 김현 의원안의 ‘5인’에서 중간값을 낸 게 아니라고 설명했다. 노 의원은 “IPTV로 대표되는 유료방송 규모”를 보고 “이런 유료방송 정책을 어디서 담당해야 되느냐, 여기에 대한 정책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료방송이 미래부로 이관되던 시점 바로 직전에 IPTV 가입자 수는 지금의 5분의 1 수준이었다”며 2013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덩어리”가 방통위로 넘어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방통위가 다시 넘겨받게 될 IPTV 등 유료방송 시장의 규모를 고려한 ‘정책적 판단’이었다는 설명으로 해석된다.
IPTV 가입자 수가 지난 10여년간 많이 증가한 건 맞다. 2012년 9월 기준 IPTV 3사 가입자 수 합계는 582만명이었는데, 가장 최근 자료인 2024년 하반기 기준으론 2131만명이 넘는다. 5배까진 아니어도 4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전체 유료방송 시장을 놓고 보면 2024년 이후 감소 추세다. 5월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유료방송 가입자 수는 지난해 상반기 첫 감소를 기록한 뒤 하반기까지 연속으로 감소했으며, 감소 폭은 직전 반기 대비 확대됐다. 유료방송 성장 둔화는 약 5년 전부터 시작됐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은 지난해 보고서에서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가 유료방송의 대체재가 될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OTT를 포함한 방송 미디어 통합 거버넌스가 절실하다는 업계·학계 등의 요구는 ‘부처 간 이견’을 이유로 이번에 반영되지 않았다. 만일 향후 부처 간 협의를 통해 방미통위 혹은 어느 부처든 OTT 업무까지 맡게 된다면 그때도 시장 규모를 반영해 위원 증원, 부처 신설, 법률 제정 등이 필요하게 될까.
김홍일은 몰라도 ‘제2 이동관·이진숙’은 못 막는 법
이날 공청회에 진술인으로 참석한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대통령과 국회가 추천하는 5인으로 구성돼 온 기존 방통위의 정파적 한계를 개선하기 위해 위원 수를 7인 이상으로 증원해 합의제 기구의 대표성과 민주성을 높이고 독립성과 전문성 확보를 위해 위원 결격사유를 강화하는 방안으로 개편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파적 한계 개선’이라는 기대와 달리 대통령과 국회가 추천하는 위원 구성 방식은 달라지지 않는다. 대통령이 2명, 국회가 3명 추천해 여야 3대2 구도였던 것이 대통령이 2명, 여야가 각각 2명, 3명씩 추천해 4대3 구도로 달라질 뿐이다.
‘독립성과 전문성 확보를 위해 위원 결격사유를 강화하는 방안’도 이번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위원 결격사유 조항은 기존 방통위 설치법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다. 위원 임명에 관한 조항 역시 마찬가지다. 기존 방통위법 제5조 1항을 그대로 준용하면서 2목의 ‘판사·검사 또는 변호사의 직에 15년 이상 있거나 있었던 사람’만 제외했을 뿐이다. 이대로라면 검사 출신의 김홍일 전 위원장 같은 사람은 몰라도 대통령직 인수위나 대선 캠프에 관여했던 이동관 전 위원장, 이진숙 위원장 같은 사람은 제도적으로 막을 수 없다.
이런 규정만으로 법에 명시한 ‘방송 및 정보통신 분야의 전문성’ 있는 위원회 구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기존 방통위에 대해 ‘전문성 부재’와 ‘정치적 후견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 지는 이미 오래다. 2017년 4기 방통위 이후 방통위원 중에 통신 전문가는 사실상 없었고, 마지막으로 5인 체제를 갖췄던 문재인 정부 시절의 5기 방통위는 5명 중 3명이 정치인 출신으로 채워지기도 했다. 2020년 당시 전국언론노동조합은 ‘방통위는 낙마·부패 정치인의 자리보전용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어 “미디어 정책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채 당위와 정략에만 매달려 정책을 추진하다 보면 분명히 부작용이 속출할 것이고 그 결과 OTT를 비롯한 뉴미디어 시장은 해외자본에 뺏길 것이고 공영방송은 황폐해질 것이며 민영방송은 수익내기에 급급해질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최민희 위원장은 “새 정부는 전대미문의 방송 장악으로 피폐해진 방송통신 환경을 정상화시키는 것을 1단계 과제로 잡고 있다”면서 이미 시행 중인 개정 방송3법과 방미통위 설치까지가 그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건전한 여론 생태계를 조성하는 동시에 글로벌 경쟁 속에서 방송통신산업이 혁신하고 경쟁력을 갖게 하도록 2단계 작업에 돌입할 예정”이라고도 밝혔다. 새로 출범할 방미통위와 그 근거가 될 설치법이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진숙 축출법’ 논쟁을 넘어 정책적 판단에 대한 세심한 검토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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