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12·3 비상계엄 선포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 시민 104명에게 윤석열 전 대통령이 1인당 1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원고들이 공포와 불안, 좌절감, 수치심 등의 고통, 또는 손해를 입었으니 위자료를 줘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12·3 비상계엄뿐만이 아니다. 여야의 대립으로 정치위기 상황이 수없이 발생하면서 시민들은 알게 모르게 정신건강에 영향을 받고 있다. 특히 이 위기 상황을 적극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으로 인해 그 피해가 더욱 커지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1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정치위기 보도와 시민 정신건강’ 세미나에선 언론의 정치위기 보도가 시민들의 정신건강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토론자들은 언론의 영향력에 대해선 각기 다르게 평가하면서도 언론이 시민들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해야 할 역할이 있다는 데는 공감대를 이뤘다.
이날 발제를 밭은 최선영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객원교수와 고은지 게임과학연구원 객원연구원은 언론의 보도 방식이 시민들의 정신적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계엄 전후 6개월간 60개 언론사 유튜브 영상 31만개, 댓글 2545만개를 수집·분석한 결과 TV 뉴스와 달리 유튜브 뉴스에선 계엄 관련 뉴스가 여러 채널을 통해 동시·반복 재생돼 착란 또는 혼란 상태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또 계엄 전후 평균 조회 수, 좋아요, 댓글이 각각 62.1%, 95.0%, 77.4% 증가했다며 특히 증오와 혐오, 화남과 분노 등의 부정적 감정이 많아졌다고 분석했다.
최선영 교수는 “유튜브 플랫폼의 비선형적인 특성으로 인해 혼란 증폭의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또 감정이 변동한 결과에 따라 사회의 정치적 분열도 유추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이 유튜브 라이브와 리플레이를 명확하게 구분해 표시할 필요가 있고, 긴급 상황에서의 유튜브 영상 보도 가이드라인도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토론자들은 정치위기 상황에서 언론이 평정심을 갖고 차분하게 보도해야 한다고 제언하기도 했다. 이창준 성균관대 글로벌융합학부 교수는 “요즘 학생들과 연구하는 내용인데, MBTI로 치면 한 개는 F 성향의 감정적인 챗봇을, 한 개는 T 성향의 이성적인 챗봇을 만들었다”며 “F 성향의 챗봇과 얘기를 하면 불안이 줄어들고 더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T 성향의 챗봇이 훨씬 불안을 줄여주더라. 이걸 보면서 정치위기 상황, 특히 계엄 같은 상황에선 오히려 감정적인 보도보다 차분하게 정보를 전달해주는 보도가 사람들의 불안을 줄여줄 수 있겠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수민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도 “계엄이 선포된 그날 밤, 가장 극단적이고 긴박한 상황에서 언론이 어떻게 행동했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과연 언론이 유튜브라는 매체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잘 했는가. 다른 대체제가 없는 상황에서 언론이 통찰력 있고 신뢰할 수 있는 헌법학자,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행정 전문가들을 소환해 무엇이 문제인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는가. 그런 부분이 고민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미디어가 위기를 없앨 순 없어…‘어떻게’ 소비하느냐가 정신건강에 더 중요”
이날 세미나에선 정치위기 상황에서 미디어 사용이 오히려 정신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윤호영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는 “위기는 일단 그 상황 자체가 굉장히 부정적”이라며 “미디어의 역할은 악화된 상황을 개선·호전시키거나 악화·증폭시키는 것일 뿐이다. 결국 미디어 자체가 위기를 없앨 수는 없기 때문에 실제 사람들의 정신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려면 위기 상황 자체를 타개해야 하고, 그러면 실제 사람들을 동원해서 실질적으로 미래 전망을 긍정적으로 만들어주고 미래가 희망이 있다는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그러면서 “‘내란 신경안정제’, ‘계엄 신경안정제’를 키워드로 조회수 10만 이상인 유튜브 영상 39개의 댓글과 대댓글 6만여개를 수집·분석해봤는데, 공감의 내용이 많았다”며 “공감의 언어를 통해 향후 미래에 대한 전망과 현 상황에 대한 토론 및 내용을 들으면서 현재의 스트레스 요인을 견딜 수 있는 회복 탄력성 역할을 유튜브 영상이 수행하고 있었다. 즉 미디어 사용을 줄이는 것이 반드시 정신건강에 좋은 것은 아니고 어떤 방식으로 미디어를 소비하느냐, 어디에서 미디어를 소비하느냐가 정신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토론자들은 이 전제를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미디어가 방향성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심민영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센터장은 “공감을 통한 연결감은 분명 회복에 있어 굉장히 필요한 요인이지만 위기 상황에서 연결을 추구하게 되면 시야가 좁아진다”며 “내 집단에 대한 공감의 깊이는 깊어지고 대신 반경은 좁아지는데, 그렇게 되면 일시적으론 안전하고 연결된 것처럼 느끼지만 집단 안에서도 분열이 확산돼 결국 안정감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저는 미디어가 그런 것에 대한 견제 역할, 방향성을 다시 잡아주는 역할을 해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성권 국민의힘 의원도 “보도가 본질은 아니고, 시민들이 불안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정치권이 양상하고 있는 극단적인 진영 정치일 것”이라며 “그 부분에 대해선 모든 정치인들이 반성하고 새로운 정치 질서를 형성하는 데 노력해야 될 것이다. 다만 정치인 간의 갈등 상황이 미디어를 통해 증폭되는 건 분명한 사실이고, 특히 레거시 미디어가 아닌 뉴미디어에서 그런 경향이 있기 때문에 뉴미디어에 대한 사회적 컨센서스를 형성해내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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