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 손배' 힘있는 자에 혜택… 시민 위한 논의하자"
언론노조 10일 언론중재법 개정안 기자간담회
"중재위가 완충? 봉쇄소송 방지책 실효성 의문"
'고의 중과실 추정 요건'에 탐사보도 약화 우려도
더불어민주당 언론개혁특별위원회가 추진 중인 언론중재법 개정안에서 권력자의 전략적 봉쇄소송 방지책으로 주요 언급된 ‘언론중재위원회 조정 신청 우선’ 방침 등을 두고 언론계에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법안 초안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그간 우려가 총론 차원이었다면 일부 주요 방향이 공개되며 언론계의 비판도 구체적 각론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정치인 등 권력자가 아닌 시민 피해구제를 위한 법안 본질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나왔다.
10일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언론보도 피해 구제, 누구를 위한 개정인가?: 권력자 아닌 시민을 위한 개정을 향하여> 기자 간담회를 열고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쟁점과 이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특히 이날 간담회에선 언론계가 지속 문제제기 한 ‘권력자의 전략적 봉쇄소송’ 남발 소지에 대해 언론특위가 제시한 완충 장치로써 언론중재위의 역할에 대해 실효성이 없을 것이란 평가가 나왔다. 언론노조는 이날 배포 자료에서 “지금도 정치권과 대기업은 언론중재위에 정정보도를 청구하기 전에 형사나 민사 소송을 거는 경우가 많다”며 “설령 개정안대로 언론중재위의 직권조정을 반드시 거치게 한다 해도 정치권이나 대기업 등이, 현재 언론중재위의 중재위원 구성을 고려할 때 무조건 수용 의무를 부과할 법적 정당성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특히 조정불성립의 경우 대안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배액 손해배상을 청구받은 언론사가 법원에 중간판결을 신청할 수 있다 해도 이는 거의 이용되지 않으며 본안 소송과 함께 진행된다”며 “정치인 등 권력자의 배액배상 청구를 허용하면 이렇게 복잡한 쟁점이 발생하는 만큼 다양한 대응 수단을 갖춘 권력자에게는 일반적 배상 청구만을 허용하는 것이 법을 간결하게 만들고 시민 피해 구제에 집중할 수 있는 방안이라 판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언론특위는 언론보도에 대해 배액배상을 청구할 때 언론중재위의 조정신청을 의무적으로 거치고 직권조정 결과를 따르도록 하는 방안을 악용 방지책으로 제시했다. 불복 시 일반 손배소 제기는 가능하지만 권력자의 경우 이 결정에 반해 손해액의 몇 배 책임을 물리는 배액배상을 청구하려면 별도 취소소송을 거쳐 승소해야 한다. 아울러 전략적 봉쇄소송을 당했다고 본 언론이 법원에 ‘중간판결’을 신청하면 제소는 중단되고 이유가 인정되면 제소 자체가 기각되는 방안도 제시했다.
이호찬 언론노조 위원장은 이에 대해 “언론중재위는 중재와 조정을 위한 조직이고, 위원들은 다 명예직이다. 빠른 시일 내 양측의 주장을 듣고 어떻게 합쳐낼지를 고민하는 곳이지 소송의 옳고 그름에 대해 명확히 판단할 지위나 사회적 권위가 부여돼 있지 않다. 그런 언론중재위의 직권조정 결정을 공직자들은 무조건 수용하라고 하는 게 비합리적이라 생각한다”며 “권력자들이 소송 남발을 했을 때 언론중재위가 과연 직권 조정 결정을 할 수 있을까. 대다수가 결국 조정불성립으로 갈 테고 그러면 결국 소송으로 가는데 언론중재위의 조정전치주의로는 소송 남발을 막을 수 없다는 게 저희의 판단”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중차대한 법 개정을 하며 새 제도를 도입하려면 법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어떤 절차를 거친 다음 대안으로 내세우는 것이 맞지 않나. 저는 일단 시민 피해 구제에 집중하되 권력자를 (배액 손배청구 대상에서) 제외한 채 법 개정을 하고 이후에도 계속 권력자에 대한 허위조작 보도가 남발된다면 상황을 보며 다시 판단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새로 규정하고 언론보도로 피해를 입은 시민의 입증책임 부담을 던다는 취지로 언론사 등에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음을 추정케 하는 요건이 특위안에 구체적으로 명시된 부분에 대해서도 비판이 나왔다. 이미 현행 명예훼손 소송에서 언론사는 실무상 입증책임을 지며 증거 제출 등을 하고 있고 고의 또는 중과실 여부에 대해선 법정에서 판례법리에 따라 판단을 하고 있는데 이런 절차를 다시 언론중재법에 명시하는 일이 “취재원 노출을 강제함으로써 공익 제보를 위축시키고 고발 및 탐사보도를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언론특위는 앞서 ‘허위조작 보도’를 “허위 사실 또는 조작된 정보를 고의 또는 중과실로 다중에 알리는 행위와 보도물”로 규정하고 이를 인용, 매개한 경우까지 징벌적 손배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법원에 자료 제출 명령권을 부여해 언론사는 따르도록 하고, 법원이 비공개로 제시된 내용을 확인하고 판단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이 위원장은 “지금도 법원에 가게 되면 언론은 허위사실 여부, 진실이라 믿을 상당성 여부를 두고 다투고 재판 과정에서 종합적으로 다뤄진다. 이 과정에서 언론은 취재원 보호를 위해 취재원을 공개할 수 없다고 하거나 다른 루트로 취재경위가 옳았음을 제시하고 법원이 판단을 한다”며 “현재 고의 과실 추정 요건은 ‘법원의 자료 제출 명령을 어기면 고의 중과실’이란 식으로 세세하게 규정했는데 언론으로선 고의 중과실(판단 가능성)을 안고 (소송을) 시작하게 되면서 취재원 보호 등에서 훨씬 후퇴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종합적으로 다뤄져야 할 사안이 하나의 요건으로 판단되면 언론의 방어권 차원에선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고, 결국 권력감시나 탐사보도를 제한할 수밖에 없다”며 “언론사의 자료 제공 의무를 강화할 필요는 있지만 고의 중과실 추정요건은 권력자에 한해 일단 삭제하고, 일반인에 한해서도 극히 제한적으로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론현업단체들은 언론중재법 개정과 관련해 정부기관, 정무직 공무원 및 그 후보자, 대기업 및 그 주요 주주와 임원 등의 경우 징벌적 손배 청구를 할 수 있는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요구를 이어왔다. 이날 배포 자료엔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가 ‘더탐사’의 이른바 ‘청담동 술자리 의혹’에 대한 손배 청구 소송에서 10억원 손배액을 청구해 8000만원 배상 판결을 받은 사례가 언급됐다. 쿠팡이 지난 2월 재취업 ‘블랙리스트’ 운영 사실을 보도한 한겨레에 1억원 손배를 청구하고 MBC, 민중의소리, 세이프타임즈 등에 형사고소, 언론중재위 정정보도 청구 등을 동원한 케이스도 거론됐다.
현 시스템에서도 충분히 언론보도에 대한 대응력을 갖고 있는 권력자들에게 “배액 배상 청구의 자격까지 주는 것은 과도한 혜택”이고 평범한 시민이나 자영업자 등의 피해구제에 집중하는 게 바른 방향이란 지적이다. 김도원 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장은 “(이미) 명예훼손 소송에서 청구할 수 있는 위자료 액수는 상한선이 없다. 지금도 소송비용만 감당할 수 있다면 5억원, 10억원 얼마든 청구할 수 있다. 현재 소송을 못 해서 피해구제를 못 받는다면 그건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없어서가 아니다”라며 “힘 있는 사람들은 지금 제도로 충분히 구제를 받을 수 있고, 지금 제도가 부족하다면 그건 징벌적 배상을 도입한다고 해서 해결될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많은 시민들이 악의적 보도에 징벌적 손배를 한다고 하니 ‘그런 보도엔 배상 많이 받아야지’라고 생각하시지만 결국 소송을 해야한다. 액수와 배수가 아직 안 나왔지만 기본 손해액이 5000만원이고 배수가 5배라면 2억5000만원 내에서 받을 수 있는 거고 여기 인지대만 100만원은 될듯하다. 만일 패소하면 상대 변호사 비용까지 약 1000만원은 물어줘야 할 텐데 평범한 시민들이 징벌적 배상 제도를 선택할 수 있을지 실효성에 대해서도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와 관련해 조성은 언론노조 수석부위원장은 “권력자들, 특히 법조인 출신 권력자들은 어떤 보도가 나왔을 때 ‘이거 손해배상 청구할 거다. 언론중재위에도 갈 거고, 기자에게도 걸 거고, 언론사에게도 걸 거다’라고 할 거다. 그 분들은 너무 잘 알고 있는데 일반 시민들은 언론 관련 피해구제 절차를 얼마나 알고 있나. 이 모든 절차들, 그러니까 시민 피해 구제를 더욱 확대하기 위해 법 개정을 비롯해 홍보까지, 필요한 부분 전반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실장은 “언론보도에 대한 피해 구제라고 했을 때 시민들이 떠올리는 건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당, 정치인에 대한 무리한 보도, 실제 자신과 동료시민들이 피해를 본 경우 등 두 가지가 아닐까 싶다”며 “‘내가 싫어하니까 어떤 언론이 없어져야 돼’란 욕구도 있지만 그 언론사가 사라져도 거기서 일한 기자와 그 독자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자기 자신이나 동료 시민이 받은 언론 보도 피해를 어떻게 구제할지 방안을 언론중재법이 마련해주고 그런 사례가 더 확산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방안이 법안에 담긴다면 언론단체들도 충분히 (여당 논의에) 동참해 협력하겠다는 게 그간 밝혀온 입장”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9월25일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를 공언한 상황이지만 아직 법안은 발의도 되지 않았다. 언론계에선 조항 하나하나가 언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법안이 충분한 논의 없이 속도전으로 추진되는 데 우려를 표하며 숙의를 촉구해왔다. 이호찬 위원장은 “기본적으로 언론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크고 언론중재법에 반대 목소리를 내면 ‘언론도 권력 아니냐’, ‘허위보도 안하면 되지 않냐’ 비판이 나오는 상황에서 국민들을 설득하는 게 쉽지 않다. 실제 잘못된 언론에 대한 징벌 욕구가 저는 (추진 배경의) 절반 이상이라 생각한다. 시민들이 그런 인식을 갖게 된 기존 언론의 관행은 분명 문제이고 언론 스스로 돌아보며 책임을 키우고 신뢰를 회복해야 된다는 데 크게 동의한다”고 했다.
다만 그는 “시민들을 위해 언론이 해야 되는 역할이 있고 본연의 역할을 다하려는 수많은 종사자, 좋은 언론들마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법 개정이 돼선 안 된다는 차원에서 지금 이 말씀을 드린다”며 “권력자를 (징벌적 손배청구 대상에) 포함시켜서 얻을 수 있는 이득과 권력자를 제외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을 비교해 더 사회적으로 이익이 많은 방향으로 법 개정이 가야 된다. (그러기 위해) 부작용의 요소를 철저하게 검증하고 논의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래서 일정 시간 멈추고 집중적인 논의하자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전달하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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