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동선을 취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2일 새벽 압록강을 건넌 김 위원장이 베이징역에 도착하기까지, 또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기념행사가 끝날 때까지 베이징 특파원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감시와 제재를 겪었다. 중국은 김 위원장의 경호를 위해 특파원들을 연행하고, 사무실을 봉쇄하고, 휴대폰 데이터를 삭제시키는 등 전례 없는 취재 통제를 가했다. 6년 8개월 만에 방중한 김 위원장, 그러나 그 역사적 순간을 취재하려던 특파원들에게 중국은 한 치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았다.
취재 통제는 북중 접경 지역인 단둥에서부터 시작됐다. 특파원들은 김 위원장이 압록강을 건널 것으로 예상되는 2일 새벽에 앞서 단둥에 머물며 취재를 준비했다. 이미 단둥 전체엔 외국인 숙박 금지령이 내려져, 특파원들은 민박에 머물거나 중국인 이름으로 예약을 하는 등 편법을 써야 했다. 곳곳에 공안이 있어도 큰 제재가 없던 1일 저녁, 그러나 밤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수많은 공안이 깔리고 압록강 철교에 불이 꺼지더니 근처에서 취재하던 특파원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멀리서나마 철교가 보이는 호텔에 묵고 있던 특파원 역시 공안이 방으로 찾아와 장시간 조사를 받아야 했다.
A 특파원은 “공안에 연행된 특파원은 단둥출입국관리국에 끌려가 왜 왔느냐 추궁을 당하고, ‘주숙등기’를 안 했다는 이유로 중국 법을 지키겠다는 한글 서약서를 쓰고 지장까지 찍었다고 하더라”며 “다른 특파원 역시 호텔 방에 붙잡혀 공안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결국 김 위원장 열차가 지나간 새벽 3시 이후에야 풀려났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공안이 문제 삼은 것은 주숙등기. 중국 출입경관리법에 따르면 외국인은 다른 도시 지역에서 체류 시 24시간 내에 일종의 전입신고인 주숙등기를 해야 한다. 공안이 특파원들을 붙잡고 조사할 때 가장 트집 잡기 쉬운 명분도 주숙등기로, 결국 대부분의 특파원은 이를 빌미로 김 위원장의 중국 진입을 취재하지 못했다.
공안의 감시와 제재는 베이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공안은 김 위원장의 열차 도착 시간을 전후해 베이징역 일대를 비롯한 베이징 시내에서 삼엄한 경계를 펼쳤다. 베이징역엔 가림막이 설치됐고 역이 내려다보이는 건물과 공원엔 출입이 금지됐다. 열차가 들어설 승강장 바로 옆 노선엔 다른 기차를 정차시켜 시선을 차단하기도 했다. B 특파원은 “취재를 위해 역 내부로 들어갔다가 공안이 따라붙은 기자도 있다”며 “문제 삼을까 미리 다른 기차표를 구입해놨는데 열차를 예정 시간보다 먼저 출발시켰다고 하더라. 결국 다른 도시에서 내렸는데 거기까지 공안이 쫓아왔고, 다시 베이징에 들어올 때도 검문소에서 취재비자가 문제가 돼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중국은 역에 진입하는 순간 여권 검사를 한다. 특파원의 경우 취재비자가 붙어 있어 특히 어디를 가는지 동선이 모두 파악된다. B 특파원은 “일이 아니라 여행으로 소도시를 가도 호텔에 체크인을 하는 순간 전화가 온다”며 “왜 왔는지, 일로 온 건지를 묻는다. 놀러왔다고 하면 어딜 갈 예정인지 동선을 확인하는데, 거부할 별다른 도리가 없기 때문에 그냥 다 보고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베이징 시내서도 공안은 특파원들의 취재를 사사건건 감시했다.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취재라도 신분증 검사를 하며 막아섰고, 사진과 영상을 삭제시키거나 아예 공안이 붙어 그 근방에서 쫓아내기도 했다. 공안이 특파원들에 일일이 연락해 위치를 파악하고 일부 특파원은 사무실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억류하는 사례도 있었다.
3일 진행된 열병식과 관련해선 더욱 노골적인 취재 제한이 일어났다. 국내 방송사들의 베이징 지국 사무실은 대부분 열병식이 열리는 창안제에 위치해 있는데 8월31일부턴 외부인 출입을 금지시키고 열병식 당일엔 일체 출입을 막은 것이다. C 특파원은 “열병식 하루 전날 퇴근할 땐 공안이 사무실에 들어와 누가 있는지 확인하고 문에 봉인지를 바른 후 퇴근시켰다”며 “중국은 기본적으로 기자들 활동에 대해 절반 정도 스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국내언론은 관영 매체를 중심으로 100% 통제하는데, 해외언론은 통제 밖의 행위를 하니 체제에선 용납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최근 중국 정부가 문제 삼은 보도를 쓴 일부 매체는 아예 열병식 취재증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열병식 취재 자체도 쉽지 않았다. 행사가 시작하는 시간은 오전 9시였지만 특파원들은 오전 2시45분까지 미디어센터에 집결해야 했다. 그곳에서 총 3번의 보안 검사를 받은 후 약 3시간 뒤인 오전 6시가 돼서야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액체류인 가글, 선크림, 립스틱도 반입 불가, 보안 검사엔 공항에나 있을 법한 폭발물 탐지 장치까지 투입됐다. 다만 특파원들에 배정된 자리는 김 위원장이 있는 망루와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B 특파원은 “이번 김정은 방중이 언젠가는 역사 교과서에 실릴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취재할 수 있었던 건 너무나 영광이고 행운이었다”며 “철통같은 공안 감시 속에 하나라도 더 취재하려 했던 경험은 큰 자산으로 남을 것 같다. 다만 이렇게 열의 있는 특파원단이 있는데 취재환경이 뒷받침됐더라면 더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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