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자들에게 필요한 것

[언론 다시보기] 양재규 변호사·언론중재위원회 조정본부장

기자에게 붙이는 가장 멋진 수식어는 ‘역사의 기록자’일 것이다. 서울서부지법 폭동이 있었던 1월19일 새벽에도 기록자가 있었다. “서부지법에 모여있던 시위대”가 “점차 폭력적인 모습으로” 변하자 “방송용 카메라가 아닌 스마트폰”을 들고 “폭동 가담자들의 행렬을 따라 법원 청사 내부에 들어가 촬영”을 했다. 그 덕분에 “법정이 모여 있는 3층, 판사 개인 집무실이 있는 7층에도 시위대가 난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내란 특검이 추경호 의원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선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추경호 의원실에서 취재진이 대기하고 있다. /뉴시스

당시 현장에는 또 다른 기록자도 있었다. 다큐멘터리 감독인 그는 폭동 시작 후 조금 늦게 현장에 도착해 “후문 밖 골목길에 앉아 아이폰으로 줌을 당겨” 촬영을 했고 “집회 참가자들이 강제로 개방한 후문을 통하여 법원 경내로 들어갔”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이 기록자에게는 법원 경내에 무단으로 들어갔다는 이유(건조물침입)로 벌금형이 선고됐다.


다 같은 기록자인데 법적인 평가가 다르니 배경에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혹여 그 원인을 기자만의 ‘특권’에서 찾는다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세상에는 기자에게 대단한 특권이라도 있는 것처럼 여기는 이들이 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기자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데 다 문제다. 기자라면 특권을 믿고 함부로 행동하지 않을까 염려되고, 기자가 아니라면 가뜩이나 어려운 처지에 놓인 기자들을 ‘특권층’이라 비난하고 조롱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기자에게 특권이 없음은 이미 여러 차례 입증됐다. 이른바 ‘안기부 X파일’ 사건에서 기자는 불법도청으로 만들어진 녹음파일을 입수, 방송에 내보냈다는 이유로 유죄를 받았다. 기사는 진실했고 내용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명예훼손으로 문제 삼았다면 유죄가 선고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취재 과정에서의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인정됐다.


군사보호시설에 무단으로 들어갔다고 해서 징역형을 받은 기자도 있었다. 기자는 군부대 내에서 유흥업소가 운영되고 있는 현장을 포착하기 위해 잠입했을 뿐이다. 묻히고 말았을 일이 기자의 위장취재로 세상에 드러났지만, 법적인 평가는 냉정했다. 군형법상의 초소침범죄를 가차 없이 적용했으니 말이다.


불법과외 단속 현장에 동행취재를 나선 기자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 사례도 있었다. 경찰과 언론의 공조가 익숙했던 시절의 일이다. 이때도 기자는 여지없이 취재 과정의 불법성을 피하지 못했다. 아무리 기사 내용에 문제가 없고 공익과 알권리를 위한 보도였다 하더라도 취재 과정에서의 문제가 있다면 그에 따른 책임을 면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반대의 사례도 있긴 하다. 한 방송사 제작진이 신분을 감추고 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재소자를 접견하는 일이 있었다. 재소자와의 대화 장면과 내용은 숨긴 채 가지고 들어간 카메라에 담겼다. 속임수를 써서 접견 업무를 담당하는 교도관의 직무집행을 방해했고 무단으로 건조물에 침입했다는 이유로 기소됐으나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례에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무죄 선고 이유가 기자에게 어떤 특권을 인정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판결문에는 그저 “사실상의 평온상태를 해치는 행위 태양으로 교도소에 들어갔다고 볼 수 없”어서라고만 적혀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기자에게 특권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국회의원에게 인정되고 있는 면책이나 불체포와 같은 권한이 기자에게는 없다. 기자는 형사소송법상 업무상의 비밀을 이유로 일부 전문직에 인정되고 있는 증언거부권에서도 비켜 있다. 공인된 라이선스가 필요 없는 일이기 때문일 텐데, 가만 보면 기자는 전문직도 아닌 것이다.

양재규 변호사·언론중재위원회 조정본부장.

보다 근본적으로 기자에게 정말 특권이 필요한지는 신중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특정 언론사 입사의 문턱은 높을 수도 있겠으나,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는 시대다. 기자의 자격은 라이선스에 있지 않으며, 역량은 사건을 바라보는 안목과 사실 확인을 위한 노력, 현장을 지키는 끈기에 있다.


무엇을 위한 보도인지, 취재 방법은 과연 적합한지, 다른 대안은 정말 없는지를 스스로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에게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만 한다면 비록 특권이 아니어도 기사는 충분히 빛날 것이고 역사의 기록자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다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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