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4일 오전 11시40분, 언론중재위원회 서울제4중재부 주재로 열린 조정 기일에 박선영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과 한겨레신문을 대리해 고경태 기자와 방준호 사회부 이슈팀장이 출석했다. 언론중재위 조정 기일에 장관급 공직자가 직접 참석한 것은 이례적인데, 박 위원장 뒤편에 또 한 명의 진실화해위 관계자가 앉아 있었다.
박 위원장은 한겨레가 6월5일 보도한 <박선영 진화위원장, 최근 박성재 전 법무장관 만난 뒤 “정의부답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자신의 정당한 업무 수행을 ‘부적절한 행보’로 규정하는 등 사실관계를 왜곡해 보도했다며 언론중재위원회에 반론보도 및 3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신청했고, 이날 조정 기일이 열렸다.
조정의 신청인은 진실화해위원회가 아닌 박선영 위원장이었다. 진실화해위는 올해 언론중재 및 조정 신청을 1건도 제기하지 않았다. 박 위원장이 개인 자격으로 한겨레를 언론중재위에 제소한 것이다. 그런데 이날 조정 현장에 고영준 진실화해위 정책보좌관이 참석했다. 박 위원장이 진실화해위 공식 업무와 무관한 개인 소송에 정책보좌관을 데려간 것이다. 박 위원장은 지난해 12월10일 취임 직후 고영준 변호사를 정책보좌관으로 임명했다. 정책보좌관은 별정직 4급으로 위원장의 정책 및 연구 과제 등을 보좌하는 자리다.
박 위원장은 올 들어 7월 말까지 언론중재위에 한겨레를 상대로 5건의 조정 신청을 냈다. 모두 고경태 기자가 보도한 기사에 집중됐다. 9일 조정 기일이 잡힌 1건을 제외하고 4건은 1월23일과 3월18일, 5월9일과 7월14일 중재 절차가 이뤄졌다. 그때마다 박 위원장은 정책보좌관을 대동하고 언론중재위에 출석했다. 또 정책보좌관의 조력을 받아 언론조정 신청서 등 소장을 작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위원장이 개인 업무에 공적 조직을 활용하는 것은 이해충돌 시비를 부를 수 있다. 진실화해위 내부에서도 위원장에 대한 공적 보좌와 사적 지원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진실화해위 한 관계자는 “진실화해위가 제기한 공식적인 소송이 아니고 위원장이 개인 자격으로 낸 소송에 정책보좌관이 같이 나갔다면 공무 수행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더구나 박 위원장의 정책보좌관은 연가나 출장을 내지 않고 언론중재위에 출석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성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고 정책보좌관은 조정 기일인 1월23일과 3월18일 연가를 내지 않았다. 5월9일과 7월14일엔 각각 1시간30분, 3시간의 연가를 냈다. 정책보좌관 스스로 공무 수행이 아닌 걸로 판단해 출장을 내지 않거나 연가를 내고 출석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고 정책보좌관은 “위원장이 개인 자격으로 신청했지만 조정 내용이 완전 개인적인 내용이라 볼 수 없고, 위원회 업무와 관련한 내용도 포함돼 있어 지원하기 위해 방청했다”고 말했다. 또 “위원장 보좌 업무 범위가 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좀 애매한 부분이 있고 출장을 내면 출장비 부분이 문제가 될 것 같아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고경태 기자 기사에 대한 법적 대응을 계속하고 있다. 언론중재위에서 조정이 불성립된 2건에 대해 한겨레를 상대로 정정·반론보도 청구 및 3000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7월 말엔 <박선영 진화위원장, ‘3기 진화위 신속 추진’에 우려 표명> 기사와 관련해 “정당한 의견 표명과 업무 활동을 마치 개인적 이익을 위한 부적절한 행위인 것처럼 왜곡하여 보도했다”며 언론중재위에 반론보도를 신청했다.
고 기자는 “박선영 위원장이 ‘자신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언론이 무턱대고 비판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계신 것 같다. 그러지 않고는 이렇게 매번 납득할 수 없는 논리로 언론중재를 남발할 수가 없다”고 했다.
기자협회보는 개인 소송에 진실화해위 정책보좌관이 참여한 것과 한겨레에 집중적으로 소송을 제기한 배경에 대해 박 위원장에게 전화와 문자로 수차례 물었으나 답을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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