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 기자의 비율이 이른바 ‘크리티컬 매스(Critical Mass·어떤 현상이나 변화가 시작되거나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최소량 또는 수준)’라 여겨지는 30%를 넘어섰지만, 미디어에서 여성 취재원의 비율은 여전히 10%대에 머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취재원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비롯해 언론사 내부의 다양성을 확대하고 여성 의제를 활성화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5일 한국여성기자협회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서 ‘한일 공공·기업·미디어의 성별 다양성’을 주제로 한일여성기자포럼을 주최했다. △정·관계 여성 비율 세계 최하위 수준, 왜 △기업 내 유리천장과 고용차별 △미디어에 드러난 여성 과소 대표성 등 3개 주제를 다룬 포럼 중 마지막 세션에서는 미디어에서 여성이 과소 대표되는 현실의 원인을 찾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논의가 이어졌다.
정치·경제 분야서 남성 취재원이 여성 7배
이날 발표를 맡은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부교수는 ‘출입처 의존성’으로 인해 취재원의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는 현실을 지적했다. 김 교수는 “한국 언론은 출입처 의존성이 높고, 이는 국회의원이나 정부 취재원 비중을 높이게 된다”며 “한국의 정치 및 경제 영역에서 여성의 진출 비중이 낮다는 점을 고려하면 새로운 취재원을 확보하려는 노력 없이는 취재원의 성비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특히 사회와 문화 영역에 비해 정치와 경제 분야에서 여성이 과소 대표되는 경우가 많았다. 김 교수에 따르면 2023년 정치 분야에서 여성 취재원은 14.5%에 머물렀던 반면, 남성 취재원은 84.5%에 달했다. 경제 영역 역시 남성 취재원(82.1%)이 여성 취재원(10.8%)의 약 7.6배였다. 재계 전문가와 연구자 등 전문성 있는 직업에서 남성 취재원의 비율이 높은 탓이다. 김 교수는 “오전에 발제하고 오후에 기사를 완성해야 하는 한국 언론의 특성상 이미 알고 있는 취재원에게 연락하는 경우가 많다”며 “속도 경쟁이 아닌 심층 취재 위주의 언론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BBC에서 실시하는 성평등 전략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나왔다. 포럼 토론자로 참석한 이웅비 BBC코리아 편집장은 “BBC가 ‘50:50 Equality Project’와 ‘GWiN(Global Women in News)’를 통해 취재원 간의 성별 균형을 유지하는 데 힘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50:50 Equality Project’는 모든 기자가 직접 기사 출연자와 취재원의 성비를 측정·기록·공유하고, 매달 리포트를 작성해 취재원의 성비를 수치로 점검한다. BBC는 또한 ‘GWiN’을 통해 기존의 출연·취재 네트워크 바깥에서 새로운 여성 전문가를 발굴하고, 이를 데이터베이스화해 취재원의 품질과 다양성을 동시에 확보했다.
이 편집장은 “회의 단계부터 인터뷰 성비를 점검하고, 여성 전문가를 발굴·데이터베이스화 해 주제별로 연결하는 문화를 구축한 결과 기존 기사와 차별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며 “이는 기사 품질의 향상으로 이어졌고, 여성 독자의 반응 역시 수치로 입증됐다”고 강조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의 경우 ‘젠더 데스크’를 통해 회사 내부에서 여성 의제에 대한 논의를 공식화했다. 미시마 아즈사 아사히신문 수도권 뉴스센터장은 “각 부서에 여성의 목소리를 대표하는 젠더 데스크를 설치한 결과 회사 내부에서는 ‘젠더는 신문 1면에 실려야 할 뉴스’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사히신문은 각 부서에서 데스크(중간 간부) 중 한 명이 젠더 데스크로 임명되면 부서에서 성평등 보도가 얼마나 이루어지는지 등을 살피고, 부서별 특성을 살린 여성 의제 기사를 기획한다.
보수적인 일본 신문의 성별 다양성 보장 위한 노력
아사히신문은 또 2020년 ‘젠더평등선언’과 2022년 여성 등용 촉진에 초점을 맞춘 ‘젠더평등선언 +(플러스)’를 발표하기도 했다. 젠더평등선언은 △조간 ‘사람’란에 등장하는 인물은 연중 남녀 어느 쪽 성별도 40% 이하를 밑돌지 않게 한다 △회사 주최 주요 심포지엄의 연사는 남녀 어느 쪽 성별도 40% 이하를 밑돌지 않도록 한다 △관리직의 여성 비율을 2020년 약 12%에서 최소 두 배로 늘리고 남성의 육아휴직 참여율도 높인다 △젠더 평등에 관한 사내 연수 및 스터디 모임을 정기적으로 개최한다 △젠더 평등 보도를 모아 정기적으로 책자를 만든다 △선언의 달성 정도를 정기적으로 점검, 공개한다 등이다.
젠더평등선언 플러스는 △여성이 없는 회의는 만들지 않고 △부문별 여성 등용 수치 목표를 설정해 달성한다는 두 개의 목표를 골자로 한다. 두 선언 모두 뉴스룸 내부와 기사에서 성별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다. 아사히신문은 2024년 ‘젠더 가이드북’을 발간하며 신문에 실린 기사와 사진, 광고 등에서 발굴한 71개의 사례를 성 감수성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아쉬움을 지적하기도 했다.
젠더 프로젝트가 지속되자 회사 내부 분위기도 변했다. 미시마 센터장은 “2년 전 일본에서 새 내각이 발족했을 때 각료 53명 중에서 여성이 단 한명도 없었다”며 “과거에는 기자들이 ‘1면 감’이라고 떠들어야만 기사를 실어줬는데 사내 젠더의식이 좋아지니까 저희가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기사가 1면에 실렸다”는 성과를 전했다. 또 “평소 젠더 이슈에 관심이 없던 사람도 젠더 데스크에 임명돼 회의에 참석하면 여성 의제에 관심을 갖는 경우가 생긴다”며 “구성원들의 젠더 인식이 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미디어에서 다양성 실현을 위해 여성의 ‘위축 효과’를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윤수희 KBS 콘텐츠제작본부장은 “여성 취재원에 대한 사이버 공격은 외모 비하부터 출신 지역, 사생활까지 인물의 발언 내용을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며 “이에 따라 사생활을 보호받고 싶은 취재원이 기명 인터뷰를 꺼리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유네스코는 2022년 발표에서 과도한 온라인 폭력으로 인해 여성 기자들이 저널리즘 영역을 떠나거나 기사 생산성에 영향을 받는다고 발표한 바 있다.
포럼 참석자들은 미디어의 성별 불균형을 해소하는 유일한 길은 언론이 지속적인 관심을 갖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웅비 편집장은 “여성의 목소리를 대내외적으로 들리게 하는 일은 일회성 또는 단기 프로젝트로만 접근하면 달성할 수 없는 과제”라며 “외부에서는 콘텐츠 설계의 혁신을, 내부에서는 여성 리더십 양성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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