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는 이미 충분한 방어권을 가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여러 사례를 보면 방어하지 못해서 결국 오보로 남아 있는 사례들이 꽤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언론개혁특별위원회 간사인 노종면 의원은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언론 보도 피해자 보호 강화를 위한 언론중재법 개정 방안 마련 토론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거대 여당인 민주당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골자로 한 언론중재법 개정을 빠르게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에서 언론계가 우려하는 사안 중 하나인 정치인, 재벌 등 권력자에 의한 제도 악용 가능성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민주당은 권력자에 대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권을 일정 부분 제약하는 식으로 법 개정안을 설계한다면 우려를 씻을 수 있을 것이란 입장이다. 가령 정치인 등 권력자들은 반드시 언론중재위원회 중재를 거쳐야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중재나 하급심에서 조정 결정이 나오면 그것을 수용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겠단 얘기다. 노 의원은 언론중재위에 일종의 행정집행센터 같은 기구를 새로 설치하자는 주장도 내놨다.
그러나 이 정도로 우려를 불식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애초 제도의 적용 대상에서 권력자를 배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건 언론자유 침해라는 본질적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없을 때도 정치·경제 권력이 자신들에게 비판적 보도를 하는 언론을 억압하는 일은 끊이지 않았다.
직전 정권 때만 봐도 윤석열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검찰이 언론사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고, 일명 ‘바이든-날리면’ 보도를 두고도 경찰 수사와 재판이 진행됐다. 대부분 사건에서 언론사와 기자들의 무혐의·무죄 판결이 나온 건 수사와 소 제기가 비판적인 언론에 대한 ‘재갈 물리기’였다는 방증이다.
한국기자협회를 비롯한 언론 현업 10개 단체는 최근 성명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해 “무엇이 악의적 보도인지 법률에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으면 향후 어떤 권력이든 자신들에게 불편한 비판 보도를 억압하는 도구로 악용할 수도 있다”며 제도 적용 대상에서 정치인과 공직자, 대기업 등을 제외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 단체는 2021년 민주당이 추진한 언론중재법 최종안에서도 정치인, 대기업 등이 제외됐었다고 짚었다.
민주당의 입법 속도전과 의견 수렴 방식 역시 우려를 자아낸다. 당초 1일 토론회에서 민주당 안(개정안)이 공개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채영길 한국외대 교수의 발제와 토론만 이어졌다. 그나마도 발제자가 지각하면서 사회를 본 노 의원이 발제문을 요약해 설명하는 식으로 시간을 때우는 촌극이 빚어졌다.
이런 식이라면 토론회가 입법 관련 각계의 이견을 조율하고, 우려나 문제점에 대한 해법 모색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보여주기식’으로 진행된다는 오명을 쓸 수밖에 없다. 민주당 언론개혁특위는 당 지도부가 이달 25일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제시한 상황에서 토론회를 더 열겠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이번처럼 형식적 차원에 불과한 토론회를 몇 차례 더 연다고 해서 논란이 사그라들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누차 강조했듯이 개혁은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일방적이고 신속한 법 개정 추진이 아닌, 언론이 언론다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보다 촘촘한 법안 설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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