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인공지능(AI)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는 국내 매체가 꾸준히 늘고 있다. 선도적 대응 차원에서 AI 기업과 협약 등을 우선 체결한 후 청사진 모색에 나서거나 개별 프로젝트 실행에 나선 게 언론들의 현 상황이다. 기술기업이 아닌 언론으로선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준비 없는 ‘홍보용’ 협약으로 뉴스 데이터만 넘길 수 있고, 협업 일변도 흐름이 최선이 아니란 우려도 나온다.
최근 1년 새 AI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었거나 일정 수준 이상 협업 프로젝트를 한 국내 언론사는 10여곳이다. 지난해 11월 결과물을 낸 구글-중앙일보를 필두로, 업스테이지-조선일보, 퍼플렉시티-이데일리·매경미디어그룹·한겨레·뉴스핌, 네이버-브릴리언트코리아·KBS, NC AI-MBC 등이 공개적으로 협업 소식을 알린 바 있다.
단일 AI 기업 중에선 퍼플렉시티와 협업이 활발한 모양새다. AI 대응이 요구되지만 언론계와 저작권 이슈가 진행 중인 네이버 등 국내 AI 기업과는 협업이 어렵다고 본 반면, 글로벌 AI 중 드물게 미디어 파트너십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뉴스제공 시 수익 공유 방침 등을 지닌 지점이 주요했다는 게 공통적 언급이다. 자체 콘텐츠 생태계가 없는 퍼플렉시티는 언론과 협력을 적극 추진해 글로벌 AI 기업 중 진입 장벽이 높지 않았던 편이기도 하다.
일찌감치 협약을 맺은 매체에선 성과도 보고된다. 퍼플렉시티와 첫 결과물로 ‘AI 검색’을 도입한 매경에서 AI 주무를 맡는 매경AX 관계자는 25일 서면 답변에서 “기존 키워드 검색량 만큼 AI 검색량이 늘었다. AI 검색을 합하면 100% 가까이 늘어난 셈”이라며 신문·퍼플렉시티 구독권을 연동한 상품에 대해서도 “의미 있는 성과가 있었다”고 했다.
매경AX 관계자는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해 홈페이지 체류시간을 늘리고 있다”며 “독자의 별도 질문에 답하도록 기사별 AI 검색창을 전 세계 미디어업계 최초로 설치했는데 브랜드 가치에 적합한 서비스로 독자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고 했다. 이어 “협업을 통해 타 미디어와 AI 서비스 격차를 최소 6개월 좁히거나 확대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파트너십은 기술 역량이 모자라는 언론사로선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우려도 나온다. 국내 언론과 AI 기업 협약 후 “뉴스제공을 대가로 매출이 났을 때 나누는”(이데일리), “KBS는 다양한 학습용 콘텐츠를 제공해”(네이버) 같은 발언, 보도자료 내용이 나왔는데 자칫 뉴스 데이터 저작권 사안에 대해 AI 기업의 책임만 덜어준다는 시선이 대표적이다. 일방적으로 뉴스 데이터만 넘기지 않기 위해선 대비가 필요한데 ‘선 협약 후 준비’의 언론사 행보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언론사 디지털 부문 한 관계자는 “협약을 맺었다는데 없이도 가능한 서비스가 나오거나, 이제 뭘 할지를 살피는 경우가 많다. 사전 스터디를 하고 치열한 작전 수립에 의해 서로 주고받는 게 제휴일 텐데 마케팅 차원 제휴로 보인다”고 평했다. 언론에서도 잠재 위험은 인지하지만 불확실한 여건이 판단을 어렵게 한다는 토로도 나온다. 네이버를 상대로 한 한국신문협회, 지상파 3사의 소송 등이 있긴 했지만 본격 논의는 정체된 현 상황이 대표적이다.
황예랑 한겨레 미디어전략실장은 “퍼플렉시티와 미디어 파트너십 계약을 맺었으나 대규모 데이터를 학습용으로 제공하지는 않는다”며 “퍼플렉시티에 한정하지 않고 AI로 이용자가 경험할 수 있는 서비스, 콘텐츠 프로세스 효율화 방안 전반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해외에선 뉴욕타임스가 아마존과 개별 협약으로 수백억 보상을 받거나 오픈AI와 소송으로 공정이용 여부를 따지는데 한국에선 현재 기준선, 합의의 최저선이 없어 그게 가장 고민스럽다”고 덧붙였다.
네이버가 개별 협약 방침을 분명히 하며 언론사 고심은 더 커질 듯 보인다. 실제 KBS와 협약 직후인 7월30일 한국온라인신문협회 월례회의엔 네이버 관계자 6인이 참석, 비공개를 전제로 ‘개별적 협력으로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KBS, 브릴리언트코리아도 그런 차원’, ‘추가로 몇 개사와 더 논의 중’, ‘기술팀에선 20여개 매체면 된다는데 (매체 성격을) 다양하게 고르려 한다’ 등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일본 유력지 요미우리신문을 비롯해 니혼게이자이신문, 아사히신문이 퍼플렉시티가 저작권법을 침해했다며 잇따라 거액의 손해배상을 제기해 화제가 됐다. AI 검색 답변이 저널리즘 콘텐츠에 크게 의존한다는 보고서(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브리프 2025년 8월호)가 나오기도 했다. 연구는 공정 보상체계 마련을 위해 AI 답변을 실시간으로 분석, 출처별로 매체 기여도를 계산해 광고수익 50%를 이 비율로 배분하는 AI 검색 ‘프로라타(ProRata)’ 사례도 제언했다.
이성규 블루닷AI 대표는 “종이신문이 센 일본 미디어시장 특성이 반영됐겠지만 자기 콘텐츠 가치에 확신이 있어 가능한 행보로 보였다. 미국·일본 대형언론이 빅테크를 보는 관점이 그런 소송에서 나타나고 과정에서 딜을 키울 수도 있는데 국내 일관된 협업과는 다른 모습”이라며 “개별 협상을 해두면 차후 다른 AI 기업에 ‘너넨 돈내라’ 같은 요구를 할 명분이 안 설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언론이 ‘프로라타’ 모델을 기업과 정치권에 제안하는 방식도 고민해 볼만하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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