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한 팀 응원, 고양이 유니폼까지... 나는 '야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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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가 2년 연속 1000만 관중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전국 10개 구장은 연일 만원사례를 기록하고, 야구 관련 콘텐츠는 넘쳐난다. 누군가는 ‘야구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이 열기 한가운데 특별한 팬들이 있다. 바로 펜과 카메라로 세상을 기록하는 기자들이다. 이들은 취재 현장에선 냉정한 관찰자지만, 야구장에서만큼은 누구보다 열정적인 팬이 된다. 기자협회보는 30년 넘는 베테랑 팬부터 최근 ‘입덕’한 신참 팬까지, 각기 다른 사연으로 야구의 매력에 빠진 네 명의 기자를 만났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야구에 푹 빠지게 됐을까. 야구가 스포츠를 넘어 하나의 문화가 된 시대, 그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생생한 증언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

한화 이글스 팬 /고형석 대전CBS 기자

고형석 대전CBS 기자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30년 넘게 한화 이글스를 응원하고 있는 열혈 팬이다. 한화의 전신인 빙그레 이글스 시절, 어린이 회원으로 한밭야구장을 오갔던 그는 그때의 자신과 비슷한 나이가 된 자식들과 함께 여전히 이글스를 응원하고 있다. 아들딸 입장에선 모태 이글스 팬이 된 셈이다.


정작 그는 옆집 아저씨 덕분에 우연히 야구를 접했다. “부모님이 바쁘셔서 옆집 아저씨가 거의 매일 저를 야구장에 데리고 갔거든요. 당시엔 야구장이 지금 같은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아저씨들이 소주 많이 드시고 싸우고. 그런데도 학교에 가면 ‘오늘도 야구장 가고 싶다’ 그렇게 생각했던 기억이 나요.”


당시 그의 꿈은 KBS에서 근무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기자였다. 스포츠부의 개념도 몰랐던 때, 하지만 그는 구독하던 대전일보의 스포츠면을 꼼꼼히 읽으며 송진우 선수의 방어율, 장종훈 선수의 홈런 개수, 정민철 선수의 삼진 개수를 달달 외우고 다녔다.


그 꿈은 반쯤 이뤄졌다. 기자는 됐는데, 이글스 기사는 주로 사건·사고 위주로 써서다. 대신 그는 올해 초 이글스 스프링캠프를 3박4일 취재하는 것으로 남은 절반의 꿈을 채웠다. “가서 기획 3개를 쓰고 영상도 찍었는데요. 정말 일하는 것 같지도 않고 신나서 썼어요. 제가 아무리 기자지만 그 많은 선수들을 그렇게 가까이서 볼 순 없잖아요. ”


그의 기대에 부응하듯 이글스는 전반기 1위를 달성했고, 현재도 1위(7일 기준)를 유지하고 있다. 그의 마음도 조금은 여유로워졌다. “이글스가 1999년에 우승을 했거든요. 당시 플레이오프 때인가 야간자율학습을 땡땡이 치고 친구들이랑 야구장을 갔어요. 표도 없어 벽을 타고 넘어가다 다리가 부러졌는데, 그래도 경기를 다 보고 나왔거든요. 그 이후엔 내가 죽을 때까지 우승을 못 하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올핸 잘하면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분이 편안해요.”


고 기자는 쌍둥이 남매의 아빠로, 종종 가족들과 ‘직관(직접 관람)’을 간다. 특히 아들은 팀이 역전당하면 오열하는, 열혈 팬이다. 운동도 잘하는 아들은 최근 대전 신흥초 야구부 테스트에 합격했다. 정민철, 구대성 선수를 배출한 학교라 고 기자는 욕심이 나는데, 아들은 전학가기 싫어 버티는 상황이다. “어려운 길인 것도 알고 아빠의 욕심인 것도 아는데, 아들이 야구를 잘 하니까 선수의 길을 가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생각하거든요. 만약 야구를 계속해 한화 지명을 받으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과연 그의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고 기자의 이글스 사랑은 오늘도 계속된다.

NC 다이노스 팬 / 김정화 경향신문 기자

김정화 경향신문 기자는 NC 다이노스의 팬이 된 날을 정확히 기억한다. 지금으로부터 꼭 2년 전인 2023년 8월15일이다. 그 날은 오랜 다이노스의 팬인 친구의 권유로 창원NC파크에 경기를 보러 간 날이었다. “야구장에 간 게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거든요. 창원 사람이라 다이노스를 응원하겠거니 생각했지만 사실 야구에 큰 관심도 없었고요. 그런데 왜인지 그날의 날씨, 습도, 푸른 하늘, 그라운드, 그리고 친구와의 수다까지 저의 ‘덕심(오타쿠가 변형된 ‘덕후’와 ‘마음’의 합성어)’을 자극했어요. 그야말로 ‘덕통사고(뜻밖의 교통사고처럼 갑자기 어떤 대상에 빠져드는 것)’였습니다.”


그 전까지 그에게 야구는 경기 수도 많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단조로운 스포츠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날을 계기로 김 기자의 인생에 야구가 급작스레 끼어들었다. 이후엔 속수무책으로 다이노스의 열성 팬이 됐다. 지난해만 15번의 직관을 갔고, 의식적으로 모은 것도 아닌데 어느새 유니폼, 응원봉, 응원 수건, 카드지갑, 키링 등 종류별로 다이노스 상품을 모으는 사람이 됐다.


“한 공간에서 같은 팀을 응원하고, 한 목소리로 승리만을 바라는 경험이 거의 없었는데 그걸 다이노스 야구를 보면서 처음으로 하게 됐어요. 특히 야구는 제가 고향과 계속 연결될 수 있는 고리이기도 합니다. 지방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살고, 서울과 똑같은 문화 콘텐츠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주기도 하고요. 그래서 더욱 다이노스가 소중한 것 같아요.”


김 기자는 다이노스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지난해 말 <‘얼빠’ 아니고 ‘야빠’인데요>라는 제목의 기획기사도 연재했다. 안타가 뭔지도 몰랐던 그가 어떻게 야구 팬이 됐는지, 야구장 ‘큰 손’이 된 여성 관객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쓴 기사다. 이 기사가 계기가 돼 그는 팟캐스트와 유튜브, 심지어 야구학회에서 주최하는 학술대회에까지 나갔다. 특히 학술대회 발제자로 참여한 김휘집 선수를 만나 사진도 찍고 사인도 받는 진귀한 경험을 누렸다. “기자 일을 하면서 제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기사를 쓸 일이 많지 않은데, 오롯이 좋아하는 걸 쓸 수 있어 정말 즐거웠어요. 그걸 통해 또 새로운 기회가 열리는 것 같아 좋았고요. 언젠가 스포츠부 출입도 해보고 싶습니다.”


야구는 김 기자에게 인생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주기도 했다. “큰 점수 차로 이기던 경기도 갑자기 뒤집히고, 누구에겐 강한 선수가 다른 누구에겐 약하기도 하고.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시야가 넓어졌어요. 매일 어떻게 잘하겠어요. 3할만 치자, 그 생각이 기자 일을 오래 지속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KIA 타이거즈 팬 / 박승환 무등일보 기자

박승환 무등일보 기자에게 KIA 타이거즈는 ‘친구’ 같은 존재다.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다. 전라남도 여수 출신인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무렵 타이거즈 팬이 됐다. 야구를 알게 됐을 땐 이미 주변 친구들이 모두 타이거즈를 응원하고 있었고, 그도 자연스레 팬이 됐다.


광주·전남 지역에서 타이거즈는 단순한 야구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자부심이라면 자부심인 게 지역민 대부분이 타이거즈 팬입니다. 부모님 세대부터 해태 타이거즈 팬이다 보니 자연스레 팬인 경우가 태반이에요. 서사와 역사가 깊은데, 최다 우승팀에 한국 시리즈에 올라가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팀이거든요. 팬들이 열정적인 점도 타이거즈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박 기자는 타이거즈 경기를 매일 챙겨본다. 퇴근 시간이 일정하진 않지만 집에 오면 야구부터 트는 것이 그의 습관이다. 지난해 직관한 경기만 20회, 경기 외 유튜브 채널이나 관련 기사를 찾아보고 구단 상품 역시 수집한다. 지금까지 모은 유니폼만 5벌인데 심지어 고양이 유니폼도 갖고 있다. “유니폼을 더 많이 사고 싶은데, 경쟁이 너무 치열해 제때 구매하지 못하는 편입니다. 사인볼도 수집하는데, 새벽부터 줄 서서 사인을 받아요.”


매일 경기를 챙겨보는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2023년 9월9일 LG 트윈스와의 더블헤더 2차전이다. 5회 말 5대4로 지던 경기, 무사 만루 기회에서 대타로 나온 최형우 선수가 역전 만루포를 친 날이다. 박 기자는 그날 친구들과 외야에서 경기를 보던 중이었다. 홈런이 날아오는 모습을 보고 몸이 즉각 반응했고, 그렇게 공을 잡으러 가는 그의 뒷모습이 TV 중계 카메라에 잡혔다. “가장 좋아하는 선수가 최형우거든요. 최형우 선수는 타이거즈의 정신적 지주라고 생각해요.”


타이거즈는 지난해 통합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그러나 올해는 5위(7일 기준)로 상대적으로 부진한 편이다. “지난해 우승했을 땐 정말 기뻤거든요. 오랜만에 쟁취한 우승에 광주에서의 승리라 더 의미 있었는데, 올해 성적엔 당연히 만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해 타이거즈 우승 당시 현장 취재를 나갔다. 지역민들이 얼마나 야구에 진심인지 알기에 취재를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다만 고령자들이 경기 표를 구하지 못해 광장에 모인 것을 보면서 한편으론 가슴이 아팠다. “그분들이야말로 해태 때부터 쭉 응원을 해 온 분들이거든요. 구단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고령층을 위해 현장 구매석을 별도로 마련했으면 하는 점입니다. 타이거즈 팬 규모가 두터운 만큼 고령층도 배려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면 좋을 것 같아요.”

삼성 라이온즈 팬 / 조현희 영남일보 기자

“20대가 되고 나서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해본 경험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그런 점에서 삼성 라이온즈는 저에게 청춘의 한 조각 같습니다.” 조현희 영남일보 기자는 라이온즈가 어떤 의미인지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울산 출신인 그는 2019년부터 대구에서 생활했지만 한동안 야구에 관심이 없었다. 아저씨들의 스포츠라는 이미지 때문에 별 매력을 못 느꼈다고 했다.


전환점은 2023년이었다. 어느 순간 야구장 응원 문화에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응원 문화도 많이 바뀌고, 구단 상품도 2030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특히 친구들의 권유가 좀 있었는데, 저는 울산 출신이라 롯데와 삼성 중에 고민했거든요. 그런데 아무래도 몸에 푸른 피가 흐른다고 해야 하나, 라이온즈가 더 끌렸습니다.”


그 해 처음으로 가본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는 조 기자의 예상과 많이 달랐다. 젊은 여성 팬들이 절반 이상인 데다 승리에 집착하기보단 즐기는 분위기라 인상 깊었다고 했다. 평소 알던 모습과 상반된 이미지에 그는 라이온즈에 푹 빠져들었다. 바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퇴근하면 매일같이 야구 경기를 챙겨봤고, 인스타그램으로 라이온즈 공식 계정과 팬 계정을 팔로우해 라인업과 기록, 선수 소식 등을 확인했다.


조 기자는 매해 10경기 이상 직관도 했다. 홈구장뿐 아니라 부산, 대전, 서울 등 원정 경기까지 따라다녔다. 직관은 친구들, 또는 회사 동료들과 갔다. 대부분 라이온즈 팬이라 절로 동지애가 쌓인다고 했다. “지역에 있다 보니까 주변 지인들, 동료들, 취재원들을 보면 대부분 라이온즈 팬이더라고요. 그래서 평소에 야구 얘기도 많이 하고 동료 기자들과도 자주 직관을 가는 편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직관은 지난해 8월2일 SSG 랜더스와의 경기다. 3대2로 지고 있던 9회 말, 이성규 선수가 홈런으로 동점을 만들더니 2아웃 상황에서 상대 선수 폭투로 역전승을 거둔 날이다. 그날은 조 기자가 가장 좋아하는 원태인 선수가 첫 완투승을 한 날이기도 했다. “드라마틱한 경기였어요.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경기를 꼽자면 지난해 플레이오프 마지막 경기인데요. LG 트윈스에 1대0으로 이기면서 한국 시리즈에 진출했는데, 많이 벅차올랐어요. 제 주변에 우는 친구들도 꽤 있었습니다.”


올해 삼성은 8위(7일 기준)로 부진한 편이다. 그럼에도 조 기자는 의연했다. “한 번 푸른 피는 평생 푸른 피라고 생각하거든요. 라이온즈는 창단 이래 구단명이 한 번도 안 바뀐 유서 깊은 명문 구단이에요. 저 역시 죽을 때까지 라이온즈를 응원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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