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200만원대… 광주전남 언론사 사주들, 처우개선 '뒷짐'

[로컬] 광주전남기협 '최저임금 1.5배' 공론화 이유는

  • 페이스북
  • 트위치

광주·전남 일간신문 4년차 기자의 몇 달 전 급여명세서엔 실수령액 289만원이 찍혔다. 야근, 휴일 근무 등 시간외근무로 받은 추가 수당 25만원을 합한 금액이다. 시간외수당을 뺀 한 달 임금은 260만원이 조금 넘는다. 이 월급이 모두 호주머니에 들어오는 건 아니다. 경찰서 등 현장을 오가는 택시비에 밥값, 커피값 등 취재 활동으로 쓰는 돈만 60~70만원에 달한다.

지난해 7월11일 광주광역시 남구 광주문화재단 대강당에서 열린 광주전남기자협회 운영위원회. 기자들의 열악한 처우 개선을 위해 사문화한 회원사 자격 유지 조항(회원 초임이 최저임금의 1.5배 이상이어야 한다)을 엄격하게 적용하기로 했다. /광주전남기자협회 제공


이 신문사 월급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200만원대 초반 등 이보다 열악한 언론사가 수두룩하다. 지역에서 20년 넘게 일한 A 기자는 “20년 동안 내 통장에 돈이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저임금 등 열악한 환경에 내몰리다 보니 촌지와 접대 등 나쁜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현재도 박봉인데 연차가 올라가고 직급이 높아져도 월급은 올라가지 않는다. 중앙지로 이직한 B 기자는 “연차별로 임금이 다르다고 하나 10만~15만원 수준으로 큰 차이가 없다”며 “의욕이 있어야 취재도 열심히 하는데, 비전이 보이지 않았다. 이직하는 데 임금 고민이 가장 컸다”고 말했다.

낮은 임금에 2명 중 1명 떠날 생각

이런 저임금 실태는 광주전남기자협회가 2023년 1월 발표한 ‘광주·전남 언론인 인식 조사’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응답자 176명 중 절반에 가까운 84명이 기자 생활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가장 큰 이유로 ‘낮은 임금’(50.3%)을 들었다. ‘업무 과다’(16.8%)와 ‘불투명한 미래’(15.1%)를 압도하는 응답이었다.


저임금과 고강도 업무에 기자들이 줄줄이 이탈하고, 인력난에 허덕이는 언론사는 출입처 관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주요 부서인 정치부와 사회부가 부장 포함해 2~3명뿐인 인적 구조에 취재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A 기자는 “현장에 갈 수 없는 환경이다. 전화로 취재하고 통신사 기사를 짜깁기하면서 전반적으로 기사의 퀄리티가 하향 평준화되고 있다”고 했다.

광주전남기자협회가 2023년 1월 발표한 ‘광주·전남 언론인 인식조사’에서 응답자 176명 중 절반(47.7%)이 “기자 생활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응답했고, 불만족의 가장 큰 이유로 ‘낮은 임금’(50.3%)을 들었다. /광주전남기자협회 제공

무엇보다 유능한 허리 연차 기자들이 다 빠져나가면서 언론사 조직 와해 우려도 나온다. 주요 신문사 편집국 조직 구조를 보면 5년차 이하 평기자와 20년차 이상 부장 등 간부급 기자들이 대부분이다. 실무 교육에 목말라하는 저연차 기자들이 따라 배울 선배가 전무한 상황이다. B 기자는 “의욕이 넘치는 젊은 기자들이 많은데 가르쳐 줄 선배가 없다”고 했다. 저임금 구조에 보고 배울 선배들이 없는 언론 현실은 평기자들에게 사표를 내고 떠나라고 한다.


광주·전남지역 기자들의 저임금 문제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지만 드러나지 않았다. 기자로 일한다는 자긍심은 낯 뜨거운 수준의 임금에 바닥으로 떨어진 지 오래고, 전례 없는 규모와 방식의 기자들 줄이탈로 이어졌다. 광주전남기협이 기자들의 적정 임금 보장을 공론화한 이유다. 이전까지 거의 사문화됐던 임금 기준 조항을 엄격히 적용하겠다고 나섰다.

현장서 떳떳하게 취재할 수 있나

지난해 7월 광주전남기협은 회장, 부회장, 사무국장, 정책실장 등 임원진과 18개 회원사(신문 7, 방송 8, 통신 3) 지회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운영위원회를 열어 회원사 자격 기준 조항을 의결했다. 회원사가 되려면 ‘회원의 초임이 고용노동부가 고시한 최저임금의 1.5배 이상이어야 한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당시 류성호 협회장(KBS광주방송총국)은 “제대로 된 처우가 보장되지 않고선 현장에서 떳떳하게 취재하기 어렵다”며 회원사 자격 유지를 제대로 심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매년 회원사로부터 최소 연차의 ‘근로소득 원천징수 영수증’을 받아 운영위원회가 심의해 ‘최저임금의 1.5배’를 충족하지 못하면 운영위원회 결의로 3개월간 소명 기회를 주고 개선이 안 되면 6개월간 자격정지, 제명 순으로 징계한다는 내용이다. 광주전남기협이 움직이자 올해 4월 협회 소속 18개 회원사 중 3개사(광주매일신문, 무등일보, 전남일보)를 제외한 15개사가 전년도 근로소득 원천징수 영수증을 제출했다. 광주매일과 전남일보는 7월 초 협회에 뒤늦게 임금자료를 제출했다.


언론사들이 광주전남기협에 임금자료를 제출한 이유는 회원사 자격 유지에 따른 유·무형의 이익 때문이다. 기자협회 회원사는 지역에서 공신력 있는 매체로 인정받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광고 물량을 비회원사에 비해 많이 받는다. 기자들은 광주시·전남도, 법원·검찰·경찰 등 주요 기관 출입기자단에 포함되고, 재교육이나 연수 혜택도 받을 수 있다. 광주전남기협이 처우 개선의 지렛대로 임금 요건을 발동한 까닭이다.

광주전남기자협회 소속 18개 회원사 로고. /광주전남기자협회 제공

자료 미제출 포함 9개사 임금 요건 미충족

지난해 최저임금인 9860원은 월급으로 환산하면 206만원(주 40시간 기준)이다. ‘최저임금 1.5배(1만4790원)’를 적용하면 초임 기자에게 309만원을 지급해야 한다. 광주전남기협이 공인노무사 자문을 토대로 임금 자료를 검토한 결과,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회원사는 자료 미제출 3개사를 포함해 9개사로 나타났다. 최저임금에 겨우 턱걸이하거나 최저임금보다 20~30% 많은 수준이었다.


협회는 6월 중순 운영위원회를 열어 9개사에 대한 징계 여부를 심의했다. 운영위원 24명 중 14명이 참석한 회의는 “규정대로 징계해 처우 개선을 견인해야 한다”는 주장과 “현실적 여건에 따라 징계는 과하다”는 의견이 맞섰다. ‘최저임금의 1.2배’ 수준인 광주형 생활임금(시급 1만2760원)으로 회원사 자격을 심사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징계 여부를 표결에 부친 결과 찬성 7표, 반대 7표의 동수로 부결됐다.


그날 운영위원회에 참석했던 C 기자는 “징계 현실화에 따른 기자 불이익 우려도 있었겠지만 연차가 높은 지회장들의 경우 사측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향후 언론사에서 본인 입지도 고려할 연차라 경영진의 눈치를 보고 반대표를 던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문사들은 임금을 현실화하기 어려운 경영 여건을 호소했다. 분양 광고가 바닥이고 주요 수익원인 지자체 홍보 예산도 기자 2~3명으로 유지하는 인터넷 언론사들이 달려들면서 30~50%까지 줄었다고 주장했다. 고연차 D 기자는 “기자들의 처우 개선 취지는 이해하나 매출은 줄어들고 디지털 대응에 인력을 추가로 뽑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신문, 방송, 통신이 제각각 처한 상황이 다른 데 일률적으로 1.5배 조항을 강제하는 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했다.

저널리즘 뒷전, 모기업 방패막이만 관심

경제력이 충분한 신문사들이 임금 현실화에 의지가 없다는 게 문제다. 수년 전 신문사를 인수한 건설사가 기존 체불임금과 퇴직금을 청산하면서 10~20%만 주고 80~90%는 주지 않은 게 상징적이다. E 기자는 “언론사를 인수하면서 그 정도인데, 정상 임금을 줄 수 있겠느냐”며 “투자는 하지 않고 명맥만 유지해 자기 이익을 채우려는 몰상식한 사주들이 많다”고 말했다.


저임금 개선과 복지 확충에 귀 기울이지 않고 모기업의 방패막이로 활용하려는 언론사 사주, 그런 사주편에 선 경영진들이 근본적인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언론사 운영비 찔끔 던져주고 개인 명예를 누리면서 장삿속만 채우려는 사주들의 눈에 기자 처우 개선은 남의 회사 일이다.


“모기업이 부도 직전에 있어도 신문사를 안 놓아요. 신문사에서 돈 나오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러겠어요. 언론사 운영에 별 돈 안 들여도 메리트가 많다는 뜻이겠죠. 경영이 점점 열악해지는데, 언론사를 매입하려고 줄 서 있어요. 매물만 나오면 사겠다고.” 최저임금만 줘도 언론사를 운영할 수 있다는 인식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A 기자는 전했다.


임금 규약을 발동한 광주전남기협에 대해 지역 언론계에서 뒷말이 나온다. 직능 단체에 불과한 기자협회가 언론사 경영까지 관여한다는 둥, 기자협회가 너무 나간 것 아니냐며 언론사 분위기를 끌어가는 기자들도 있다고 한다. C 기자는 “기자들에게 최소한의 처우를 해주자는 게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겠다”며 “경영진 편에 선 기자들도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광주전남기자협회는 조만간 운영위원회를 다시 개최할 예정이다.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무등일보, 임금 기준에 못 미치는 8개사에 대한 징계 여부를 가릴 방침이다. 또 징계 유예기간을 두거나 ‘최저임금의 1.5배’ 기준을 완화하는 방법 등도 논의 테이블에 오른다.


기자들이 원한 건 좋은 저널리즘을 펼칠 수 있는, 유혹에 빠지지 않고 맘껏 취재하고 싶은 환경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실질적 변화가 이뤄지면 좋겠다”는 저연차 기자의 소망은 실현될 수 있을까.

김성후 선임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