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에서 노동 관련 보도는 주로 폭력과 갈등을 중심으로 한 사건 보도로 이뤄져 왔다. 문제의 맥락과 해결책을 함께 논의하는 공론장을 열기보다는 노동조합과 기업 간 갈등을 중심으로 하면서 파업 및 노동자의 권리 주장으로 인해 경제적 손해가 발생한다는 주장에만 초점을 맞춰 보도해 왔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또한 노동 의제에 대한 대안적 보도 방식이 어떤 것일지에 대한 탐구도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다.
노동 의제 보도에 대한 성찰이 이뤄지기 어려운 환경에서, 언론계 내부의 노동 문제에는 보도 자체가 줄어드는 경향도 보인다. 최근 들어 방송 업계를 중심으로 직장 내 괴롭힘, 부당해고 등의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비정규직 노동 문제를 거론하면서 방송업계의 비정규직 문제도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우리 언론이 이렇게 파편화되고 쪼개진 방송업계의 비정규직 노동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고 있어 아쉬움이 크다.
일반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에 대한 보도는 그 자체로 어려움이 있는 의제일 수 있다. 취재원의 확보는 물론 취재원의 보호 역시 중요한 도전 과제다. 특히 방송계 비정규직 문제라면 관련 토론회나 공적 논의장에서도 당사자들은 가명 혹은 무기명으로만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프리랜서라는 미명 하에, 네트워크 속에서 다음 일자리를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불안정 노동자들이 부당한 노동 관행을 폭로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언론이 이에 대한 취재를 한 뒤 어떻게 자신의 안전한 노동을 보장할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적 반응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 때문만이라고 하기엔 최근의 언론계 비정규직 노동 문제에 대한 보도들은 단순히 법률적 판단의 중계 혹은 일방적 주장의 전달에 그치고 있어 저널리즘의 책임을 다한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최근의 여러 사안에서 이러한 문제가 두드러지고 있다. 우리 언론은 고용노동부는 물론 각 지자체의 노동위원회들이 방송계의 비정형 노동자들의 권리를 인정하고 방송계의 문제적 관행을 개선하라는 판단을 계속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단순한 판례 보도처럼 다룬다. 그리고 이러한 결정 뒤로 문제를 제기한 노동자에게 소송을 통해 압박하는 방송사의 태도나,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지는 동료로 인정하지 않고 새로운 직군을 신설하면서 차별을 유지하는 행태, 그리고 최근 엔딩크레딧에서 폭로했듯 방송작가에 대한 비하적 언사가 난무하는 업무 환경 등에 대해서는 이슈화하고 그 맥락을 짚으며 해결책을 도모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더 나아가 몇몇 언론사는 고용노동부에서 방송계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기로 한 결정을 두고 언론 압박용, 정부의 언론 길들이기 등의 프레임을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문제는 언론계에서 파편화된 노동 행태를 새롭게 창출하고 노동 계약의 불안정성 자체를 도구화해 온 데 있음에도, 본질에 다가가 해결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정부 대 언론의 갈등 구도로 프레이밍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지금도 우리 방송산업의 수많은 비정형 노동자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노동이라는 것을 인정받기 위해 소송을 하고 있다. 출퇴근 관리가 없고 복무규정이나 명시된 계약 조항이 없이 일해온 사람들이 현행 법 규정에 따라 몇 가지 기준을 맞출 수 없으니 근로자가 아니라는 방식으로 권리를 부정당하는 현실에 대해서, 함께 언론 생태계를 만들어온 동료라는 인식이 있다면 단지 이러한 사실을 전달하면서 문제를 외면하는 보도로 그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우리 사회 전반에 나타나고 있고 사회 구조 변화에 따라 더욱 그 심각성이 커지고 있다. 돌봄 노동, 플랫폼 노동, 학술 노동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일하고 있으나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언론이 충실히 다룰 수 있으려면, 언론산업의 구조 속에서 발생한 내부의 비정규직 문제를 해법 중심으로, 성찰적으로 다루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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