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장범 사장은 '김의철 불법해임' 가담자의 침묵을 궁금해할까

정연주 사장 '축출' 8·8사태 후 17년, 방송법 통과됐지만
KBS 내부에 남은 '방송장악' 상흔, 여전히 해결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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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8일, 오늘은 ‘세계 고양이의 날’이라고 네이버가 알려준다. 오늘이 어떤 날이냐고 KBS 구성원들에게 물으면 아마 적지 않은 이들이 17년 전 그날을 떠올릴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경찰력을 동원해 정연주 당시 KBS 사장을 강제로 쫓아낸 날. KBS인들에게는 ‘8·8사태’로 불리는 그날이 바로 오늘이다.

2008년 8월8일 KBS 이사회 회의장 주변에서 사복경찰과 청경들에 의해 끌려나가는 KBS 사원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제공

그날 KBS 이사회가 열리는 회의장 주변엔 사복경찰들이 깔렸고, 이들은 저항하는 KBS 직원들을 강제 해산시켰다. 2013년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가 8·8사태 5주년 특집호로 발행한 노보엔 당시 상황이 이렇게 묘사돼 있다. “90년 4월 방송민주화 투쟁 이후 18년 만에 벌어진 공권력 투입이었고, 사원들은 경찰과 청경들에게 개처럼 끌려 나갔다.”

같은 시각, 회의장 안에선 경찰의 비호 속에 KBS 이사회가 열리고 있었다. 정연주 당시 사장 해임제청안을 의결하기 위한 자리였다. 집권 반년차에 접어든 이명박 정권은 당시 여권이 수적으로 불리하던 KBS 이사회 구조를 바꾸기 위해 야권 측 이사를 해임하고 여권 성향으로 그 자리를 대체하는 등 사전 정지 작업을 벌였고, 마침내 이날 여권 이사들 주도로 정연주 사장 해임제청안을 가결했다.

이날의 사건은 많은 KBS인들에게 상처로 남았다. 사장을 교체하겠다고 경찰력까지 동원한 정권의 폭압에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요구가 본격적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KBS 사장부터 바꾸려 드는 ‘관행’을 없애자는 취지였다. 이를 위해 KBS 이사 추천 과정부터 정치권 입김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공영방송이 정치적으로 독립돼야 한다는 건 이론의 여지가 없었지만, 정작 정치권에선 시큰둥했다. 야당일 땐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제도적으로 보장할 방송법 등 개정에 찬성하다가도 막상 집권하고 나면 주저했다. 그러다 이재명 정부 출범 두 달 만인 지난 5일 방송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언론노조 KBS본부가 “역사적인 순간”, “20년 가까이 요구한 끝에 이룬 값진 결실”이라 환영한 건 17년 전 오늘이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2023년 9월 윤석열 정부 하에서 김의철 당시 KBS 사장 해임을 주도했던 서기석 이사장과 권순범 이사. /언론노조 KBS본부 제공

그러나 방송법 통과가 곧바로 공영방송 정상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윤석열 정부에서 뒤틀어놓은 KBS 내부 문제는 아직도 산더미다. 시행령 한 줄 개정으로 밀어붙인 수신료 분리징수가 불러온 현장의 혼란이 대표적이다. 4월 기존의 통합징수로 되돌리는 방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수신료 현장의 혼란까지 해결된 건 아니다. 통합징수법 통과에 쾌재를 부르며 뜬금없이 수신료 인상까지 외쳤던 박장범 KBS 사장은 현장의 목소리는 나 몰라라 하고 통합징수 시행을 위한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에서 불법으로 해임된 김의철 전 KBS 사장 문제도 남아 있다. 김 전 사장은 해임된 지 1년 4개월여 만인 지난 1월 해임 처분 취소 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법원은 KBS 이사회가 제청하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재가한 해임 사유를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반년 만인 7월21일 이재명 대통령이 “전 정부에서 행해진 위법한 처분을 바로잡”는 취지로 상고 포기를 결정하며 김 전 사장의 해임 취소는 확정됐다. 그러나 김 전 사장에 따르면 보름이 넘도록 법원에선 사건 종결 처리를 하지 않고 있는데, 피고 보조참가인인 KBS 측이 재판부에 아무 의견을 표명하지 않은 까닭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한다.

그러나 대통령실의 상고 포기로 사실상 확정된 판결 앞에 KBS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더구나 이건 가처분도 아닌 본안소송이다. 박장범 사장은 ‘2인 방송통신위원회’의 정지환 KBS 감사 임명이 법원 가처분 판결로 효력이 정지되고 박찬욱 감사가 복귀하자 ‘정지환 감사의 직무 정지는 일시적인 것’이라며 박 감사를 사실상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반발해 박 사장을 상대로 특별감사를 벌이겠다는 박 감사와 이를 막으려는 박 사장 간의 갈등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김 전 사장의 경우 정지환 감사와 달리 해임 취소가 번복될 가능성도 없다. 법원은 김 전 사장 해임이 위법이라고 했고, 대통령실도 이를 인정해 상고를 포기함으로써 판결을 확정 짓도록 했다. 그렇다면 KBS 입장에서도 이에 반하거나 사건 종결을 지연할 이유가 없다.

2023년 7월 박장범 당시 '일요진단' 앵커. /KBS

무엇보다 박장범 사장은 과거 공영방송 사장 불법 해임과 관련해 방송을 통해 직접 문제의식을 드러낸 적이 있다. 박 사장은 김의철 전 사장이 재임 중이던 2023년 7월 ‘일요진단’ 앵커 시절 클로징멘트를 통해 고대영 전 KBS 사장 해임 취소 확정 판결을 언급하며 “공영방송 사장을 불법 해임한 문재인 전 대통령 그리고 불법 해임과 관련됐던 여러 사람들, 일제히 침묵하고 있다. 대법원 판결을 겸허히 수용하고 반성한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는 항의의 표시인지. 침묵의 커튼 뒤에 숨은 이들의 생각이 궁금하다”고 말했다.

2년이 지나 김 전 사장의 해임 취소가 확정된 지금, 윤석열 전 대통령은 물론 당시 김 전 사장 해임을 주도했던 서기석 KBS 이사장 등도 역시나 침묵을 지키고 있다. 서 이사장의 침묵은 ‘반성’과 ‘항의’ 중 어떤 쪽에 해당할까. 바로 그 서 이사장 등에 의해 임명제청돼 KBS 사장이 된 박장범 사장은 그 침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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