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장의 사진이 최근 이틀간 정국을 흔들었다. 사진이 찍힌 장소는 국회 본회의장, 찍힌 대상물은 똑같이 휴대전화 화면이었다. 그 주인공이 여야의 핵심 중진의원이란 점도 같았다. 정치인의 휴대전화 속에서 오간 ‘거래’ 혹은 ‘주문’이 만천하에 공개되면서 파장은 길게 이어지고 있다.
이데일리는 4일 오후 <[단독]국힘 송언석, 대통령실에 정찬민·홍문종 등 광복절 특별사면 요청> 제하의 기사를 온라인에 보도했다. 이날 국회 본회의 도중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과 텔레그램 메시지를 주고받는 모습이 사진기자 카메라에 포착된 것이다.
공개된 사진에서 송언석 원내대표는 강 비서실장에게 ‘특사 관련’이라며 안상수 전 인천시장 부인인 김 씨, 정찬민 전 의원, 홍문종 전 의원, 심학봉 전 의원 등 명단과 함께 “복권요청 추가입니다”라고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송 원내대표가 “감사합니다^^”라고 보내자 강 비서실장이 “이게 다예요?”라고 답장했고, 송 원내대표가 다시 “현재까지 연락 온 거는 이게 전부입니다^^”라고 회신한 내용까지 한 화면에 잡혔다. 해당 사진은 노진환 기자가 촬영했다.
이 사진은 5일 한국일보 등 신문과 방송사 메인뉴스에서도 보도되며 크게 화제가 됐다. 6일에도 동아·조선일보와 한겨레 등이 사설을 통해 “겉과 속이 다른” 처신으로 “정치적 흥정”을 벌이는 송 원내대표를 강하게 질타했다.
이튿날인 5일, 이번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인 이춘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휴대전화 속 ‘거래’ 내용이 파문을 일으켰다. 이 의원이 역시 4일 본회의에서 주식 계좌를 확인 중인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는데, 해당 계좌 명의가 이 의원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확인되면서 단순 해프닝 차원을 넘어 불법 차명 거래 의혹으로 번졌다.
5일 오전 <“‘코스피 5000’ 외치는 정부…법사위원장 이춘석은 차명으로 억대 주식 거래”> 기사를 보도한 남윤호 더팩트 기자에 따르면 해당 계좌 주인은 이 의원이 국회 사무총장 시절부터 보좌해온 인물로 지금도 이 의원실에서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다.
더팩트는 이 기사에서 “이춘석 의원은 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참석해 고개를 숙인 채 여러 차례 휴대전화 화면을 응시하며 주가 변동 상황을 주시했다. 이 의원은 휴대전화를 이용해 네이버 주식을 5주씩 분할 거래하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호가를 확인하며 주문 정정을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 의원은 네이버, 카카오페이, LG씨엔에스 등 주식 정보를 확인하기도 했는데, 해당 주식들의 매입금액은 총 1억원이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해당 계좌의 명의가 ‘이춘석’이 아니었다는 점. 따라서 차명 주식 투자가 강하게 의심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해당 계좌 주인인 보좌관 A씨는 더팩트 취재에 “이 의원님은 주식 거래를 하지 않는다. 제가 주식 거래를 하는데 의원님께 주식 거래에 관한 조언을 자주 얻는다”, “어제 본회의장에 들어갈 때 자신의 휴대폰으로 알고 헷갈려 들고 들어갔다. 거기서 제 주식 창을 잠시 열어 본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의원도 이날 오후 페이스북에 <더팩트 단독기사 관련 입장>이란 글을 올려 “국회 본회의장에서 주식 화면을 열어 본 부분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물의를 일으킨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면서도 “타인 명의로 주식 계좌를 개설해서 차명 거래한 사실은 결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의원은 “향후 당의 진상조사 등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했으나, 정청래 민주당 당대표가 윤리감찰단에 철저한 진상조사를 지시한 당일 밤 당을 탈당했다.
이 의원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오늘 하루 저로 인한 기사들로 분노하고 불편하게 해 드린 점 깊이 사죄드린다. 변명의 여지 없이 제 잘못”이라면서 “신임 당 지도부와 당에 더이상 부담드릴 수는 없다고 판단해 민주당을 탈당하고, 법사위원장 사임서도 제출했다”고 밝혔다. 또한 “제기된 의혹들에 대한 수사에 성실히 임하고,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했다.
정청래 대표는 6일 이 의원의 탈당에도 불구하고 징계에 해당하는 제명조치를 그대로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당규 제18조, ‘징계를 회피할 목적으로 징계 혐의자가 탈당하는 경우 각급 윤리심판원은 제명에 해당하는 징계처분을 결정할 수 있다’, 제19조, ‘윤리심판원은 탈당한 자에 대해서도 징계사유의 해당 여부와 징계 시효의 완성 여부를 조사할 수 있다’는 규정에 의거, 이춘석 의원을 제명조치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당대표에 취임하자마자 이런 일이 발생해서 국민 여러분들께 정말 송구스럽고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당대표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추후에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기강을 확실하게 잡도록 하겠다”며 “대한민국 주식시장에서 장난치다가는 패가망신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겠다고 선언한 이재명 대통령과 이재명 정부의 기조대로 엄정하게, 앞으로 이와 유사한 일이 발생하면 엄단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5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이날 오후 이 의원과 A씨를 금융실명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은 이날 오후 한 개인으로부터 ‘이 위원장의 비자금 조성이 의심되니 철저히 수사해달라’는 내용의 고발장을 접수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국민의힘도 6일 이 의원을 차명 주식 거래 혐의로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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