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지역매체 '윤전기 포기'… 대형 신문들 '대쇄 전쟁' 예고

[구독률 10%, 그래도 찍긴 찍어야]
윤전기 노후화로 감가상각비 급등
월 유지비 수억대, 운영 쉽지 않아
서울경기 매체들도 속속 대쇄 맡겨

[그 와중에 대형매체들은 대거 투자]
한경 640억 투입, 대쇄시장 출사표
중앙, 국내 외간 물량 인쇄 최대치
조선, 아경·내일신문 등 석간 대쇄

  • 페이스북
  • 트위치

신문산업의 근간엔 ‘윤전기’란 기계가 자리한다. 기사와 더불어 협찬, 광고가 실리는 종이신문을 윤전기가 하루 몇 만에서 수백만부까지 찍어내면서 ‘비즈니스 모델’이 작동한다. 디지털 전환이 오래 얘기돼 왔지만 여전히 온라인 수익은 종이신문에 턱없이 못 미친다. 그런데 현재 종이신문 구독률은 줄고 줄어 10% 내외다. 신문을 찍을 수밖에 없는데 날로 수익은 떨어지는 중이다. 여기 기계 노후화 문제가 덧붙는다. 유지만으로도 부담인데 대당 수백억원의 새 윤전기를 구매하긴 쉽지 않다. 이 문제를 두고 시간만 가는 게 현재다.

올해 4월7일 인천 부평 윤전공장 1호기 시운전 행사를 연 한국경제 공장 내부 모습. 연면적 1만1592㎡에 지하 1층~지상 5층 규모인 공장엔 독일 만롤란트고스사의 최신 모델 윤전기 2세트가 설치됐다. 신문인쇄 시장이 위축되는 상황에서 500억원을 들인 윤전기 구매는 대쇄시장 공략에 나선 역발상으로 주목받았다. /한국경제신문 제공

신문업계의 만성적 고민은 최근 두 얼굴로 현실화하고 있다. 일단 많은 윤전기를 보유한 서울 소재 대형 신문사를 중심으로 ‘대쇄 전쟁’이 예고된다. 반면 상대적으로 중소매체, 특히 지역신문사에선 ‘윤전기 포기’나 관련 인력의 이·전직, 퇴직 사례가 나온다. 일견 대조적으로 보이는 두 행보는 윤전기를 매개로 신문인쇄 시장의 위기가 진행되는 양상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한 몸이다.

‘아예 없는, 너무 낡은’ 신문사 윤전기

기자협회보가 한국신문협회 회원사를 중심으로 8월 현재 윤전기 보유 현황과 수명을 조사한 결과 지난 5~6년 새 상당 주요 신문사가 윤전기를 없앤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신문협회 전체 54개 회원사(통신사 2개) 중 15곳만 윤전기를 보유하고 자사 신문을 찍고 있다. 2019년 4월 본보 조사에선 52개 회원사 중 22곳이 윤전기를 확보하고 있었다.


6년 새 서울신문이 창간 120주년이 된 지난해 7월 자체 인쇄를 중단하고 대쇄(중앙일보)로 전환하는 변화가 있었다. 전자신문(기존 1세트)은 매일경제에 인쇄를 맡기고 있고, 영남일보(2세트)는 지난해 인쇄공장을 매각한 한국경제에서 신문을 찍는 상태다. 광주일보는 지난해 말~올 초 사이 윤전기 운영을 포기했고, 대전일보는 2022년까지 가동하다 중단했다. 경남일보는 윤전기를 갖고 있지만 3~4년 전부터 자사 신문은 찍지 않고 외간 인쇄만 하고 있다. 앞서 한국일보와 국민일보가 각각 2015년, 2018년부터 중앙일보에 자사 신문인쇄를 맡긴 바 있다.


다양한 사정이 있겠지만 윤전기를 없앤 근원엔 경영적 판단이 있었다. 윤전기 노후에 따른 감가상각비 상승은 대표적 이유다. 실제 국내 신문사 윤전기 다수는 1990년대 초~2000년대 초반 설치됐는데 윤전기 수명을 통상 ‘30년’으로 볼 때 노후화는 상당히 진행된 상태다. 관리만 잘되면 연한을 넘겨서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지만 1997년 설치된 서울신문 4세트 윤전기 한 달 유지비가 6억원 수준이었다. 2009~2010년 이후 윤전기를 새로 도입한 신문사에서도 애초 중고기계를 들인 사례가 상당한 만큼 유지·관리, 부품수급 고민에서 자유롭지 않다.


서울 소재 신문사 윤전 부문 한 관계자는 “소모품인 부품도 가격이 상당해서 보수나 관리 자체가 쉽지 않다. 용지나 잉크값 등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에도 대응해야 한다. 20~30대 채용은 쉽지 않아서 부서 막내를 대략 40대 후반으로 보면 된다. 신문을 더는 잘 보지 않는다는 게 근원이라 다들 어렵지만 특히 지역신문은 정말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메이저 신문 인쇄 거점화 진행 중

2025년 윤전기 현황을 보면 서울 소재 대형 신문사는 과거와 비슷하거나 가동 윤전기 수를 늘렸다. 동아일보는 2019년 당시 서울 충정로(2세트)와 경남 밀양(2세트), 경기 안산(4세트) 등에 총 8세트 윤전기를 보유했으나 현재는 9세트를 운영 중이다. 서울 오금동 공장 문을 닫으며 남아 있던 기계를 안산 공장(5세트)으로 이설했다. 경남 밀양 공장은 2014년 호남 지역에 기반한 사랑방미디어그룹과 공동 출자로 설립(영남프린테크)해 영남권 물량을 찍고 있다.


중앙일보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12세트 윤전기를 서울 강남, 경기 안산, 대구, 부산에서 돌리고 있다. 2009년 전후 중앙일보는 1500억원을 들여 일본에서 베를리너판 윤전기 6대를 도입한 바 있다. 매일경제는 서울 충무로(4세트)와 대구 왜관 공장(2세트)을 계속 운영 중이다. 다만 서울 소재 신문사에서도 외간 수주 물량이나 운영 규모(2~12세트) 차이는 크다. 일례로 경향신문(2세트)은 본지와 계열사 스포츠신문을 찍고 있는데 특히 격일간지인 농민신문 인쇄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앞서 한겨레(2세트)에선 최우성 한겨레 사장이 ‘윤전기 없는 한겨레’를 사장 선거 당시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조선일보는 윤전기 수를 줄이되 재정비를 한 사례다. 6년 전 서울 정동(2세트), 경기 성남(2세트), 인천 부평(4세트)에 총 8세트를 갖고 있었으나 현재 6세트다. 2020년 8월 성남 공장 가동 중단 후 남은 윤전기 인쇄유니트를 해체해 2023년 3월 정동·부평공장 각 2세트씩을 업그레이드 했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12월 사보에서 두 공장 윤전기가 20년을 넘긴 여건에서 ‘윤전기 수명 연장’을 최대 화두로 언급, “2025년에도 향후 10년 이상 윤전기를 안정적으로 가동할 수 있도록 설비관리 작업에 전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몇몇 메이저 신문이 인쇄 거점화되는 양상은 분명 진행 중이다. 중앙일보의 인쇄·발송 담당 자회사 중앙일보M&P는 현재 국내에서 가장 많은 외간 물량을 찍고 있는데 지난해 4월 “강남공장에서만 인쇄하는 매체가 52개에 달할 정도”라고 사보에서 언급한 바 있다. 동아일보의 인쇄 자회사 사이트를 보면 동아엠텍은 30여개 매체 대쇄를 담당한다. 조선일보는 그간 외간 인쇄에 미진했으나 올해 아시아경제, 내일신문 등 석간 매체 대쇄를 시작하는 등 분위기가 바뀐 것으로 알려진다.

윤전기 640억원 투자한 한경… ‘대쇄 전쟁’ 신호탄?

이런 상황에서 한국경제신문은 2022년 독일 만톨란트-고스사와 신형 윤전기 2세트에 대한 계약을 체결하며 500억원을 지출했다. 2023년 말엔 135억원을 들여 영남일보 윤전공장을 인수하며 “자가 윤전을 포기하는 많은 신문사들의 수도권 및 지방 인쇄를 대행”하는 “이른바 ‘한국 신문산업의 대쇄 허브’가 될 것”(김정호 대표이사 2024년 신년사)이라 밝히기도 했다.


한경은 지난 4월 인천 부평 신공장에서 1호기 시운전을 겸한 기념식을 열고 신형 윤전기 1세트를 ‘풀’ 가동 중이다. 시범 운영 중인 2호기도 이달부터 본격 전면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대구공장(2세트)에 이어 새 부평공장(2세트) 운영도 안착되면, 국내 신문사 중 가장 오래된 서울 중림동 윤전기(2세트)는 곧장 철거하고 부품수급, 매각 등을 한다는 방침이다. 윤전기가 빠져나간 유휴공간은 활용방안을 두고 다각도로 검토 중이다.


윤전기 공장에만 600억원을 넘게 쓴 비용지출은 공격적 영업을 전제할 수밖에 없다. 대형신문의 경쟁이 심화되면 ‘물량 뺏기’는 물론 감정싸움이나 ‘대쇄 전쟁’이 격화될 수도 있다. 지난해 한겨레는 주간 약 70만부를 발행한다고 밝혀온 종교 관련 신문 대쇄를 놓치며 큰 타격을 받기도 했다. 한경 관계자는 “협의 중인 매체 수나 구체적인 매출 목표를 밝히긴 어렵지만 현재까진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며 “적잖은 돈을 투입한 만큼 대쇄 영업에도 적극 나서며 지면에 광고도 열심히 내고 있다. 경쟁매체가 있지만 더 좋은 품질로 더 빨리 찍을 수 있는 최신 윤전기의 성능, 좋은 조건으로 고객의 선택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윤전기 포기, 인력재배치 과제로

반면 지역신문에선 자체 운영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2019년과 비교해 이번 조사에서 자체 인쇄를 포기한 신문사 중 다수는 단연 지역신문사였다. 실제 8월 현재 지역신문 중 규모가 큰 축에 속하는 한국지방신문협회 회원사 9개사 중 강원일보, 경남신문, 매일신문, 부산일보, 제주일보 등 5곳만 윤전기를 보유하고 있다. 다만 이들 매체도 자체 인쇄엔 상당한 부담을 느끼며 조치 중이다.


예컨대 매일신문은 자회사 ‘매일프린팅’을 설립하고 윤전 관련 부서 전체 인력을 8월1일자로 모두 이직시켰다. 애초 대쇄를 맡기는 안까지 고민됐지만 ‘자회사화’로 가닥을 잡았다. 매일신문 소속으로 윤전업무를 하던 제작국 직원들은 반발했지만 2~3개월 지난한 논의 끝에 합의했다. 12인 중 2인은 퇴직했고, 나머지 10명이 적(籍)을 옮겼다.


황희진 전국언론노조 매일신문지부장은 “(같은 지역) 영남일보 사례를 지켜보며 대쇄냐 자회사냐 고민한 끝에 인쇄 주도권을 갖고 있는 건 필요하다고 본 편집국 의견이 반영됐다”며 “제작국 반발이 컸고 고용문제가 가장 걱정이었는데 결국 본사가 동일 처우를 약속하며 대부분 동의했다. 일단은 인위적 구조조정 없이 가게 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계) 2세트 중 1대는 고장 직전이다. 돌리다 멈추면 부품용으로 쓴다는 판단이다. 회사에서 ‘대쇄’부터 1~2만부를 찍는 ‘작은 윤전기 도입’까지 여러 고민을 했는데 상황을 보며 대응할 것으로 안다”고 부연했다.


부산일보는 지난해 6월 윤전 인력을 다른 직종으로 전환시키기도 했다. 앞서 자회사 ‘부일인쇄’에서 자회사와 본사 인력이 함께 윤전기 3세트를 돌려왔지만 물량감소로 2세트만 운영하게 됐고 이에 본사 인력을 불러들였다. 면담 끝에 7인이 넘어왔고 현재 4인이 미디어경영직 등으로 전환돼 일을 하는 상태다. 언론노조 부산일보지부 관계자는 “이전에도 윤전국 출신으로 타 직군에서 일해온 선배들이 있어 큰 갈등이 있진 않았다. 하지만 신문사에 제대로 된 재교육 프로그램이 있을 리 만무하고, 평생 하던 일을 두고 다시 적응해야하는 어려움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윤전기 ‘셧다운’은 필연적으로 관련 인력 재배치 문제와 맞물린다. 앞서 윤전기를 없앤 국민일보의 국민일보P&B 39명 고용승계, 서울신문의 제작·유통인력 37명에 대한 업무전환, 모회사 호반그룹 계열사 또는 중앙일보 채용 등 사례처럼 언론계에서 그간 윤전부에 대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은 없었지만 향후 갈등 소지를 배제할 순 없다.

프린트 시장의 앞날… “정책적 대응 필요”

대형신문사 간 ‘대쇄 전쟁’이 격화되면 상당 기간 염가 경쟁이 지속될 수 있다. 이는 외간 유치를 충분히 못했거나 윤전기 유지 자체에 어려움을 겪어온 중소신문사의 ‘대쇄 결정’ 시점을 당기고 소수 대형신문사 위주 대쇄 시장이 확고히 자리잡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장의 성장을 예상하긴 쉽지 않다. 이미 신문인쇄 시장은 제한됐거나 줄어드는 물량을 두고 뺏고 뺏기는 ‘제로섬 게임’ 구도여서다.


최근 경남부산 신문인쇄 시장은 미래의 축소판일 수 있다. 2018년 국제신문 당시 경영진, 사주는 조선일보의 영남지역 대쇄물량을 전부 처리하겠다며 ‘미래를 위해선 다른 투자를 해야 한다’는 내부 요구를 묵살하고 윤전공장을 지었고, 현 기업회생 절차를 야기한 위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동안 조선일보는 부산일보와 국제신문을 오가며 대쇄를 맡겼는데 공장건립 후에도 물량을 나누며 부산 대표 두 신문사 모두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이다.


중소신문이 경영적 판단으로 대쇄를 맡기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지만 인쇄 주도권이 종속되는 문제에 고민도 필요하다. 2022년 언론노조 국민일보지부는 중앙일보M&P의 신문 인쇄비 인상에 ‘갑질’이라며 비판 성명을 냈다. 2018년부터 대쇄를 맡기고 베를리너판 전환도 했는데 갑자기 인쇄비를 인상했고, 판형 독점으로 유사한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중앙은 계약기간 약속된 인쇄량을 유지하지 않고 30% 줄여 인상이 불가피했고 국민일보 사측도 수긍했다고 반박했다.


큰 흐름에서 지역신문사의 신문발행은 날로 어려운 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 비상계엄·탄핵 국면 당시 화제가 된 신문사의 ‘호외 발행’도 앞으로는 기대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지역 목소리 위축, 언론 다양성 감소 등 이유로 ‘공동인쇄’, ‘거점 윤전소 설립’ 같은 지원책도 언급되지만 이 역시 쉽진 않다. 한국신문협회 기술협의회의 2024년 TFT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신문윤전 업체는 41곳이었고 지역별로 서울·경기 17개, 경남·경북 14개, 호남 6개 등이었다. 이들, 살아남은 업체는 이미 ‘거점화’한 곳으로 이익이 충돌할 수 있다.


신문인쇄 사정을 잘 아는 지역신문 한 기자는 “프린트 시장이 없어지는 부분은 답이 없다. 다만 시장논리에 맡기면 윤전 인력은 버려지게 된다. 6~7년 전 조선업을 지원했듯 이들에 대한 이·전직 프로그램 등 정책적 지원이 정의로운 전환 측면에서 필요하다”면서 “정부의 신문 구독지원 사업 등은 노령층, 소외계층 등을 대상으로 이뤄져 공공성을 인정하고 있는데 그 근원은 너무 만성적이라 문제로 인식도 못 되는 게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승영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