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희림 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의 ‘민원 사주’ 의혹이 경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앞서 류 전 방심위원장은 2023년 9월 가족과 지인, 전 직장 동료 등을 시켜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녹취파일 인용보도를 심의해달라’는 민원을 내게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같은 해 12월 심의 민원을 사주했다는 공익신고가 이뤄지자, 류 전 위원장은 제보자 색출을 위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고 특별감찰을 지시했다. 이에 언론·시민단체들은 지난해 1월 류 전 위원장을 업무방해 및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고발했다. 이후 서울 양천경찰서가 수사를 맡았다.
구체적 증언과 공익신고까지 뒤따랐지만, 경찰은 7월28일 ‘사주된 민원이라 하더라도 해당 민원을 진정한 민원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서는 불송치 처분했다.
반면 이를 외부에 알린 공익신고자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 부당한 행위를 고발한 내부 직원에게 돌아온 것은 보호가 아니라 처벌이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직장 내 갈등이 아니다. 공적 기구의 수장이 방송 제재를 위해 외부 민원을 유도하고, 방송의 독립성을 침해했다는 심각한 의혹이다. 더구나 방송심의는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할 헌법적 가치인 ‘언론의 자유’와 직결된 영역이다. 그런 점에서 이 사건은 방송의 자율성을 훼손하고, 언론 통제의 우려를 현실화시킨 중대한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 수사가 충분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언론계와 시민사회의 공통된 지적이다. 당시 최소 40명이 오탈자까지 같은 민원 104건을 제출했는데, 경찰은 이를 조직적인 청부 민원이라고 판단하지 않았다. 1년 반 동안 강제 수사 한번 없이 내린 결론이다.
당시 방심위가 해당 민원 등을 근거로 심의에 착수해 MBC를 비롯한 4개 방송사에 부과한 총 1억4000만원의 과징금 처분은 법원 판결로 줄줄이 뒤집히고 있다. 그런데도 경찰은 민원을 사주한 행위가 ‘공정한 심의 및 표결, 관련 업무를 그르치게 함으로써 방심위의 업무를 방해’한 것이라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는 류 전 위원장의 비위 혐의를 인정한 국민권익위원회 조사 결론과도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 앞서 4월 권익위는 재조사 끝에 류 전 위원장이 “가족 등 사적 이해관계자의 민원 신청 사실을 인지”하고도 이해충돌 상황을 회피하지 않았다며 감사원에 사건을 이첩했다. 그런데도 경찰이 이대로 무혐의로 사건을 종결한다면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이 지적한 대로 “시민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할지 모른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이중적 법 적용이다. 권력자의 청부 민원은 보호받고, 공익신고자는 가해자로 전환되는 현 상황은 정의의 가치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 공익을 위해 행동한 이는 불이익을 받고, 권력을 위해 움직인 이는 책임을 피하는 구조는 결코 정상이라 할 수 없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이며, 이를 지키는 일은 모든 언론인의 책무다. 언론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침해하려는 시도는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지금이라도 철저한 수사를 통해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 공익신고자는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지, 수사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공익신고자 보호 원칙은 예외 없이 지켜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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