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광고 언론재단 독점체제 흔들리나… 지역신문·방송 갈등
지역방송계 "언론재단 지원, 신문 편중"… 방송광고 별도대행 요구
지역신문계 "정부광고 대행 이원화땐 지발기금 타격" 우려 목소리
새 정부 국정과제 설계를 앞두고 한국언론진흥재단(언론재단)이 대행하는 1조원대 정부광고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지역방송계가 언론재단이 신문 위주 지원에 치우쳐 있다며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의 방송광고 별도 대행을 요구하면서다. 반면 지역신문계는 정부광고 대행 체계가 이원화될 경우 언론재단 수익 감소로 이어져 지역신문발전기금(지발기금)에 타격을 줄 수 있다며 우려하는 상황이다. 양측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국정기획위원회조차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면서 지역 언론 생태계의 미래를 좌우할 이번 갈등의 해법 찾기가 주목된다.
◇이원화에 희망 건 지역방송
지역방송들의 위기감은 현재 최고조에 달해 있다. OTT 서비스의 확산, 디지털 광고 시장의 폭발적 성장 속에 수익구조가 붕괴되면서 대부분 지역방송들이 영업적자를 기록하고 있어서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방송사들이 해결책으로 찾은 것이 바로 정부광고다.
정부광고는 2018년 12월 정부광고법이 개정되며 언론재단이 도맡아 대행하고 있다. 국가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등 광고 업무를 총괄 대행하고, 그 대신 광고비의 10%를 수수료로 받은 후 그 수익의 40~50% 가량을 언론진흥사업비로 쓰는 구조다. 언론재단의 정부광고 집행 내역에 따르면 정부광고는 2019년 9418억원 수준이었으나 지난해 1조2615억원으로 꾸준히 증가했고, 언론재단의 광고대행사업 수탁사업수익도 같은 기간 819억원에서 1113억원으로 늘었다. 언론재단 영업수익에서 수탁사업수익이 차지하는 비율은 95% 가량이다.
다만 지역방송사들은 언론재단이 ‘신문재단’으로 불릴 만큼 인쇄매체 중심으로 운영되고, 그간 지역방송을 소외시켜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역민영방송노동조합협의회는 7월14일 성명에서 “연간 약 1.3조원 규모의 정부광고를 언론재단이 단일 대행기관으로 집행하고 있는 구조는 수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며 “특정 매체로의 광고비 편중, 불투명한 매체 선정 기준, 낮은 대행 만족도 등이 지속적으로 지적돼 왔다. 특히 인쇄매체 중심의 운영 구조는 방송 매체, 특히 지역방송에 대한 공적 지원을 사실상 방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 지난해 정부광고 집행 내역을 보면 한국기자협회 회원사 기준, 지역방송보다 지역신문 광고비가 더 많았다. 지역방송이 49개사로 지역신문(45개사)보다 많았는데, 정부광고비는 오히려 더 적은 결과가 나왔다. 49개 지역방송의 지난해 총 정부광고비는 816억원으로 45개 지역신문 광고비(1101억원)보다 285억원 적었다. 전체 정부광고비에서 방송(3333억원) 매체가 인쇄(2738억원) 매체를 앞선 점을 감안하면 방송광고 대부분이 중앙으로 쏠렸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지역방송사들은 △정부광고 30% 이상 의무 할당 △지역방송 대상 수수료 차등 인하 △정부광고 분리 대행 체계 도입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분리 대행 체계는 정부광고 대행 기능을 방송·통신 매체와 인쇄·옥외 매체로 이원화하는 것으로 전자는 코바코가, 후자는 언론재단이 담당케 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구상은 이미 새 정부 공약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제21대 대통령 선거 당시 정책공약집을 통해 ‘정부광고의 독점 대행 제도 개선’, ‘정부광고 중 방송광고부문 수수료 수익의 지역·중소방송사 지원 확대’를 약속했다. 민주당 방송·콘텐츠특별위원회도 6월26일 ‘정부광고 독점 해소를 위한 거버넌스 개편’, ‘지역·중소방송의 지자체 협찬 수수료 면제’ 등의 내용이 담긴 국정과제 제안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코바코는 정부광고 대행 사업 진출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코바코는 기자협회보 질의에 “3600여개 정부광고주의 광고 집행을 언론재단 70여명이 담당해 정부광고주에게 전문적 대행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행정 처리에 집중하고 있다”며 “분리 대행으로 인한 업무 비효율보다 상호 경쟁을 통한 서비스 품질 향상 및 광고 집행 효율성 개선의 편익이 훨씬 크다”고 밝혔다. 또 “언론재단은 신문 진흥의 설립 목적과 언론 관리라는 명목으로 인쇄매체 지원 사업에만 편중해 있다”며 “코바코는 방송·통신 부문 정부광고 수수료는 지역·중소방송에 지원해 수수료 활용의 합목적성을 제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분리 대행 체계와 관련해선 지역방송계 내부에서도 미묘한 온도 차가 감지된다. 코바코가 약속한 지역방송 지원액이 400억원 가량인데, 즉각적인 지원액이 얼마인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아서다. 일각에선 10년째 영업적자인 코바코의 숨통만 틔워줄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누가 관리하느냐’의 문제보다 ‘얼마나 빠르게 실질적 지원을 실행할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공영방송 지역MBC 노동조합연대회의는 7월17일 성명에서 “그간의 문제는 효능감이 떨어지는 지원 규모였다”며 “새 정부의 행정적 결정만으로도 기존 시스템을 확대 시행하거나, 본래 정책 취지를 살려 고사 직전인 지역방송을 지탱할 수 있는 대안이 존재한다.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 지연될 수밖에 없는 정책의 완성도보다 실행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금분리, 지역신문에 위기 감수하라는 것”
한편 정부광고 분리 대행에 대해 지역신문계는 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지역신문의 숨통인 지발기금이 축소될 가능성이 있어서다. 현재 지발기금은 정부의 일반 예산 투입 없이 언론재단의 언론진흥기금 일부만을 재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만약 정부광고 대행 체계가 이원화되면 언론재단 수입이 급감하고 지발기금의 안정적 확보 역시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지발기금은 2005년 출범 당시 250억원에 달했지만 올해 3분의 1 수준인 85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지역신문계는 언론재단이 운영하는 각종 사업이 축소돼 혜택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에서도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한국지방신문협회는 7월13일 성명에서 “지역방송의 어려움을 모르는 바 아니나 언론재단 수수료 안에서 합리적 방안을 찾는 쪽으로 논의돼야지, 아예 방송만을 위해 따로 기금 운용을 분리하겠다는 것은 지역신문의 위기를 감수하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며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당하는 정책은 현실화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지방신문협의회도 7월1일 성명에서 “정부광고 대행 업무를 언론재단과 코바코로 분리하면 정부광고 관리·운영이 문화체육관광부와 방송통신위원회로 이원화돼 정부광고법의 제정 취지인 공익성과 효율성이 저해될 수 있다”며 “새 정부가 지역 언론 활성화 정책을 펴려면 마땅히 지역신문과 지역방송을 균등히 다뤄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광고 집행의 효율성 저하, 공정경쟁 저해 등은 정부광고 이원화의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다. 한국신문협회는 7월22일 의견서를 통해 “최근 광고주들은 광고 집행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신문, 방송, 잡지, 인터넷을 적절하게 혼용하는 미디어 믹스 전략을 선호하고 있다”며 “정부광고 수탁기관이 이원화될 경우 이러한 전략은 어렵게 되고, 정부광고주는 개별 의뢰라는 불편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또 “코바코는 미디어렙법 등에 따라 KBS와 MBC 등의 방송광고 판매 독점 권한을 가지는 공공기관”이라며 “만약 코바코가 정부광고 수탁기관이 될 경우 KBS와 MBC에 정부광고를 집행하도록 정부광고주를 유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언론재단도 코바코의 이해충돌 문제를 지적했다. 언론재단은 기자협회보 질의에 “특정 방송사의 광고판매를 대행하는 코바코가 정부 방송광고 구매를 대행할 경우, 판매와 구매의 쌍방이 같아지는 이해충돌 문제가 발생하고 방송광고 분야의 공정경쟁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며 “현행 정부광고 수탁체계는 ‘독점’이 아니라 정부광고의 효율성과 공익성 확보를 위한 ‘창구 일원화’”라고 규정했다. 또 그 근거로 2023년 6월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을 제시하며 “언론재단이라는 단일한 기관에 정부광고 업무를 위탁한 것은 공공성과 투명성, 효율성 도모 등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적합한 수단임을 헌재가 인정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국정기획위도 결론 못 내려… “국회서 논의”
재단은 지역방송을 달래기 위한 실질적 지원책도 모색하고 있다. 언론진흥기금 여유자금과 재단 정부광고회계를 활용해 지역 언론 지원액을 늘리는 방식이다. 언론재단이 지역방송에 제시한 지원금 규모는 150억원으로, 이는 언론재단의 연간 방송광고 수수료 수입 300억원의 절반 수준이다. 언론재단은 이미 일부 지역·중소방송사를 대상으로 공익광고도 집행하고 있다. 공익광고료는 매체별 직전년도 정부광고료의 3%로 산정된다. 사실상 정부광고 수수료 10% 중 3%가 지역·중소방송사에 환원되고 있는 것이다.
언론재단은 “지역방송은 현행 법률상 언론진흥기금 지원 대상이 아니므로 재단 정부광고회계를 통한 지원 확대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지역신문에 대해서도 언론진흥기금 여유자금을 활용한 지원 확대를 검토 중이다. 이와 관련해선 문체부 및 예산 당국과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역신문들은 근본적으로 지발기금을 언론진흥기금과 분리하고 정부가 일반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편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면서 정부광고 문제를 논의하던 국정기획위는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국정기획위 사회2분과 방송·통신 소위원장인 김현 민주당 의원은 기자협회보와의 통화에서 “정부광고 문제는 매듭짓지 못 했다”며 국정운영 계획안에 관련 내용이 담기지 않을 것이라 밝혔다. 김현 의원은 “국회 차원에서 좀 더 논의해야 할 것”이라며 “모든 안을 두고 검토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다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언론재단 소관 상임위인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와 코바코 소관 상임위인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간에도 입장 차가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중재 능력과 정부의 결단이 시험대에 오른 상황, 지역방송과 지역신문의 상생을 위한 해법 마련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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