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와 KBS가 최근 체결한 인공지능(AI) 분야 포괄적 업무제휴를 두고 언론계에서 우려가 나오고 있다. AI 학습용 뉴스 데이터를 두고 언론사 공동 대응이 이어져 온 상황에서 부정적 선례가 됐다는 비판이 주요하다. 국내 첫 ‘언론사-AI 기업’ 간 저작권 소송과 맞물려 있는 이번 협약의 성격, 나아가 테크기업 출신 인사가 새 정부 AI 정책 키를 잡은 외부 환경까지 고려할 때 언론계로선 결코 좋지 않은 시그널이다.
7월24일 네이버와 KBS는 AI 분야 포괄적 업무제휴 양해각서 체결식을 진행했다. 양사는 기술, 콘텐츠, 서비스를 아우른 협업 틀을 밝히며 “국가 AI 경쟁력 강화”, “AI 기술의 주도권과 공공성 확보”, “K-컬처 콘텐츠의 세계적 확산” 등 목표를 제시했다. 국내 대표 지상파 방송사와 빅테크 기업의 AI 협약은 그 자체로 이슈지만 언론계엔 악재로 다가온 측면이 크다. 한국신문협회 등 언론단체가 AI 학습 데이터 저작권 문제를 두고 공동대응을 해오던 차 AI 기업이 개별 협상으로 이 대오를 깨려 했고, 공영방송사가 여기 응했기 때문이다.
언론사 AI 분야 한 관계자는 “기술기업으로부터 무엇을 받을 수 있는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데이터만 넘겨주는 건 현재 뉴스 가치의 과소평가인 동시에 미래 수익기반도 같이 팔아넘기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결국 포털 초창기 신문·방송사들이 각개격파 당하며 뉴스를 넘긴 잘못된 결정을 되풀이하는 셈인데 여파가 더 클 수 있다는 우려가 든다”고 했다. 이어 “민간회사가 아닌 공영방송이 언론 전반에 영향을 줄 사안에 앞장선 게 특히 안 좋은 시그널”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협약에 앞서 네이버는 4월 머니투데이 계열사를 보유한 지주사 브릴리언트코리아와 업무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언론사와 AI 기업이 뉴스 데이터와 기술을 주고받는 협업 형태를 두고 당시에도 네이버의 각개격파 노선에 대해 비판이 나왔다. 네이버는 KBS와 협약소식을 전한 보도자료에서 “네이버는 AI 기술 솔루션을 제공하고, KBS는 다양한 학습용 콘텐츠를 제공”하는 형태의 협업방식을 전했다.
특히 이번 협약은 국내 언론이 AI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저작권 관련 첫 소송과 직결된다. 올해 1월 지상파 3사는 자사 뉴스가 무단 사용됐다며 네이버를 상대로 손해배상 및 학습금지 등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했는데 KBS는 소송 원고 중 하나였다. 3사 법무팀, 지식재산권부 등을 주축으로 한 한국방송협회 AI TF는 당시 소송이 단순 권리보호 차원이 아니라 “우리나라 전반 저널리즘의 독립성과 신뢰성을 지키고 신기술인 생성형 AI의 법적, 윤리적 기준을 세우기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 했는데 KBS의 행보는 충돌 또는 독단 여지가 있다.
한국방송협회 관계자는 “KBS 발표 후 의견을 조회했는데 소송 진행은 흔들림없이 갈 것”이라며 “9월에 1차 변론기일이 잡힌 상태”라고 했다. KBS 관련 입장에 대해 SBS 관계자는 “AI 기업과 방송사가 협력할 것이 있으면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할 필요가 있다. 다만 학습데이터(뉴스콘텐츠)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전제되는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소송도 3사가 공동으로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MBC 관계자는 “소송엔 영향이 없을 듯보인다. (KBS 관련 입장은) 현 시점에서 언급이 적절치 않은 것 같다”고 했다.
협약은 KBS 내부에서도 전격적으로 다가온 일이었다. 네이버와 체결식 하루 전인 7월23일 박장범 사장은 이사회에서 갑작스레 협약소식을 밝혔고, 네이버에서도 당황했다는 전언이다. KBS 구성원들은 ‘자산을 싼값에 넘기는 협약’, ‘사장의 임기 보전, 성과를 위한 정책’이란 목소리까지 내는 상황이다. 선언적 의미의 체결식은 있었지만 KBS는 아직 구체적 내용에 대해선 답을 찾지 못했다. 소송 지속여부 등을 묻는 질문에 KBS 관계자는 “소송과 관련해 정리된 방침이 없다. (협업방식, 내용 등에 대해선) 선례가 없었던 일인 만큼 고심 중”이라고 했다.
네이버는 ‘개별 협약’ 기조를 노골화하고 실행 중이지만 이 플랫폼이 엄연히 존재하는 언론계 집단 대응을 우회하고 있는 지점은 공론화되지 못했다. 일례로 4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현안질의에 출석한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저작권 관련 질문에 기술과 뉴스 제공이 오가는 “협약을 맺는 방식”을 언급, ‘개별 협약’ 방침을 밝혔지만 추가 질의로 이어지지 못했다. 언론과 합의를 전제로 한 방식이 문제없는 듯 이해된 탓이다. 네이버를 비롯한 테크기업 출신이 새 정부 요직에 다수 기용된 현실도 언론계 호재로 보긴 어렵다.
신문사 디지털 부문 한 관계자는 “20년 전 언론사들이 포털과 전재료 계약을 안 했다면 지금 어떻게 됐을까. 먼 미래보다 당장의 인센티브를 좇는 게 개별 협약 이유일 텐데 5~10년 후, 살아남아있다면 똑같이 후회할 듯하다. 그동안 우리가 뭘 배웠는지 모르겠다. 발행인들이 각성하지 않고선 답이 없다고 본다”고 했다.
최승영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