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회의가 공개되는 상상

[언론 다시보기] 정진임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소장

몇 년이 지났는데도 또렷이 기억나는 회의가 하나 있다. 2019년에 있던 ‘은평구의회 의원 공무국외출장 심사위원회’ 회의다. 당시 회의장에 들어갔더니 회의 참석자 말고도 한 명이 더 있었다. 회의를 방청 온 시민이었다. 그동안의 공공기관 회의에서 녹음기를 켜두거나, 속기사가 배석해 기록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지켜보는 시민이 있는 회의는 처음이었다. 안건에 대해 논의하고 있으면 그 시민은 노트북으로 뭔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지켜보는 사람이 있으니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음 회의에도 또 방청을 오는 시민이 있을 거라는 예상에 두 번째 회의 땐 더 꼼꼼하게 회의 준비를 하고 가기도 했다. 지켜보는 것만큼 큰 압박도 없으니까.

김민석 국무총리가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공동취재

정부의 대표적 의사결정 단위인 각종 위원회의 회의록을 정보공개 청구하면 대부분 비공개를 한다. 회의록이 공개되면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압박감을 느껴서 발언을 꺼리게 되고, 그러면 회의 자체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가끔은 공개를 피하려고 회의록이 없다는 허위 답변을 하기도 한다. 아무나 불러서 회의 자리에 앉혀놓는 것도 아니고 나름의 전문성과 책임이 있는 자들로 회의체를 구성해 논의하고 결정하는 것일 텐데, 왜 이렇게 공개를 피하는 걸까. 혹시 결과는 다 정해놓고 회의는 요식행위로만 하는 걸까. 설마 요식행위조차 하지 않는 걸까. 궁금함과 의심 사이의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질문에 해답이 될 회의가 공개되질 않으니 궁금함도 의심도 더 커지기만 할 뿐이다.


그러다 얼마 전 아주 의미 있는 장면을 보게 됐다. 7월29일, 1시간20분가량의 국무회의 심층토의 내용이 KTV와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된 것이다. 그동안 국무회의는 속기록조차 공개된 적이 없다. 통상적으로 주재자의 모두발언만 사후적으로 공개되고 이후부터는 비공개가 관행이었다. 국무회의 지원기관인 행정안전부 역시 국무회의를 속기록으로 남기지 않았고, 회의가 열리고 한 달여가 지난 후에나 공개하는 회의록에는 논의 내용을 ‘이견없음’ 네 글자로만 기록할 뿐이었다. 국무회의는 대통령이 의장, 국무총리가 부의장을 맡아 진행하며 정부의 입법 사안과 예산 등을 다루는 최고 정책심의회다. 이만큼이나 상징적이고 중요한 회의 내용이 이번에 생중계된 것이다. 이 회의를 지켜본 시민들은 정부의 주요 정책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구체화되는지를 알 수 있게 됐다. 회의에 참석하는 각 부 국무위원에 대한 검증도 자연히 뒤따랐다. 국무회의에서 다룬 내용은 기사화도 많이 됐다.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니, 압박감을 느낀 국무위원들은 이제 더 큰 책임을 갖고 더 꼼꼼히 회의에 임하게 될 것이다.


국무회의가 생중계된 지금, 정부의 다른 회의들도 공개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 결정이 다 끝난 한참 뒤에나 회의록을 공개하던 것에 그치지 말고, 그마저도 비공개해서 소송까지 해야만 공개하던 것 말고, 정책 논의와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있는 지금을 공개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나중에 확인하는 것이 아닌 지금 참여하는 것이어야 한다. 시민들의 의지로 지킨 민주주의를 받아 안은 국민주권정부라면 지금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민주주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중 하나가 회의 공개다.


물론 모든 회의가 공개될 수는 없을 것이다. 외교안보 사안처럼 비공개로 보호해야 하는 정보들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 민생과 직결된 건은 가감 없는 공개가 필요하다.

정진임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소장.

최저임금이 곧 자신의 월급으로 결정되지만 그걸 결정하는 자리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던 노동자가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장에 방청할 수 있다면 위원들은 좀 더 책임 있게 발언하지 않을까. 빈곤층의 생사를 결정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당사자들이 확인할 수 있다면, 그래서 그들이 정책 결정 과정에 당사자의 목소리를 낼 근거들을 더 많이 만들어낼 수 있다면 복지사각지대를 좀 더 좁힐 수 있지 않을까. 지역의 개발사업을 결정하는 회의를 주민들도 알 수 있다면 지역의 환경과 주민의 건강은 파괴하고 기업의 배만 불리는 방식으로 결정되던 난개발 사업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국무회의 생중계는 시작일 뿐이다. 일회성 이벤트로 그쳐서도 안 된다. 진정한 국민주권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모든 정책 결정 과정에 국민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첫걸음이 바로 회의 공개다. 지켜보는 눈이 많을수록 책임감도 커진다. 그리고 그 책임감이 더 나은 정책, 더 나은 정부를 만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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