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 하드디스크 파기… 이진숙, 자체감사·감사원 청구 지시

[李, 증거인멸교사 등 혐의로 고발]
업체와 정식계약 없이 진행
경찰 신고로 작업은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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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위원회가 하드디스크 파기 작업을 용역업체와 정식 계약 없이 진행하는 등 적법하지 않은 절차로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6월27일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경찰 신고로 당일 파기 작업은 중단됐는데 이날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이진숙 방통위원장도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문제를 인정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이 위원장은 자체감사 실시와 감사원 감사 청구를 지시했다. 다만 이 위원장도 증거인멸교사, 공공기록물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돼 향후 파장이 예상된다.

방송통신위원회가 6월27일 하드디스크 등 파기 작업을 진행하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가 경찰과 함께 출동하자 중단했다. /최민희 의원실 제공

27일 최민희 의원실에 따르면 이날 오전 방통위는 PC 112대, 노트북 20대, 서버네트워크 장비 등 총 241대의 전산장비를 일괄 폐기할 예정이었다. 이 같은 제보를 받은 최 의원실 관계자는 신고 후 경찰과 함께 현장을 찾았고, 파쇄 작업은 중단됐다. 일부 노트북·모니터는 이미 업체 차량에 적재돼 있었고, 하드디스크는 구멍을 뚫는 천공방식으로 물리적 파쇄가 진행 중이었다고 전해진다.


방통위는 “내용연수가 경과한 장비의 계획된 폐기”라고 해명했지만 이날 오후 열린 국회 과방위 현안질의에선 파기 작업의 문제적 과정이 자세히 드러났다. 방통위는 파쇄 용역업체와 계약서도 쓰지 않았고, 폐기 비용을 무료로 하는 대신, 부품 수거 방식으로 작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기록물관리법에 따르면 방통위를 포함한 공공기관이 기록물을 폐기하려는 경우 기록물관리 전문요원의 심사와 기록물평가심의회의 심의를 거치는 등 법 규정에 맞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과방위 현안질의에서 최 의원의 관련 질의에 이 위원장은 “직전에 보고를 받았는데 절차가 잘못됐다”고 인정했다. 이어 “관례대로 3년에서 5년 치 모아 놓은 것을 (폐기)한 건데 과장 전결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담당자를) 꾸짖었다. 더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고 보고 드리겠다”고 말했다.


방통위 담당 실무자는 과방위에서 “월요일(23일) 과장 전결로 결재가 난 것으로 알고 있다. 내용 연수 5년이 지난 건 불용처리 한다. 2~3년 간 없었던 일”이라며 “행정데이터팀에서 업체 선정을 했고, (계약서를) 쓰지 않는 것으로 보고 받았다. (업체 대금은) 무료로 보고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김영관 방통위 기획조정관 겸 사무처장 직무대리도 “(폐기 작업) 시기가 적절하지 않았다”며 “담당 부서인 행정데이터팀이 자체적으로 판단한 것이라 들었다”고 말했다.


최 의원은 “국가 재산을 폐기하는 과정은 법적 절차에 따라야 하고, (공공기관의) 컴퓨터, 노트북, 모니터 등은 법적 절차에 따라 폐기하거나 이에 따른 대금이 들어오면 국가에 귀속시켜야 한다. 이 중에 하나도 지킨 게 없고, 계약서도 없다”고 질타했다. 이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알아보니 이렇게 안 한다고 한다”며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이 PC를 초기화한 것으로 정진석 전 비서실장이 직권남용과 증거인멸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이 건은 계속 파 보도록 하겠다”고 했다.


다음 날 국민신문고를 통해 이 위원장은 직무유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증거인멸교사 및 공공기록물법 위반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됐다. 고발인인 김경호 변호사는 고발장에 “이 위원장은 과장 전결이라며 부하 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꼬리자르기식 태도를 보였다”며 “‘위법적인 2인 체제’ 관련 문건 등 향후 수사 대상이 될 내용이 하드디스크에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를 인멸할 목적으로 파쇄를 지시하거나 묵인하여 부하직원이 실행하도록 교사했다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고 밝혔다.


방통위 대변인실은 법 위반 여부, 내부조사 실시 등의 질문에 대해 “자세한 경위를 밝히기 위해 위원장 지시로 자체감사 실시와 함께 감사원 감사를 청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방통위는 6월26일 국정기획위원회 사회2분과 업무보고에서 새 정부의 국정철학 기조에 기반에 구체적인 성과를 도출하겠다며 TBS 정상화 방안, YTN 사영화 문제, 펙트체크넷에 대한 처분 등 주요 현안에 대해 국회 등 사회 각계의 목소리를 반영해 개선 및 보완점을 적극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또 새 정부의 공약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한 세부과제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등을 보고하기도 했다. 다음 날 과방위 현안질의에서 방통위 조직개편 등이 담긴 해당 국정기획위 보고 내용에 동의하냐는 최 의원 질의에 이 위원장은 “법안이 통과되면 그때 말씀 드리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날 이 위원장은 앞서 최 의원이 발의한 방통위법 개정안에 대해 “사실상 이진숙 축출법”이라고도 했다. 방송 관련 업무를 방통위로 일원화하고 방통위원은 상임·비상임으로 구성해 9명으로 증원하는 내용으로, 해당 법안 부칙에 따라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진숙 위원장의 임기는 종료될 수 있다. 국무회의에서 내년 8월까지인 임기가 보장돼야 한다고 요구했던 이 위원장은 이 대통령이 방송개혁안 마련을 지시하자 대통령과 방통위원장의 임기를 동일하게 맞추는 것이 먼저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진다.


이 위원장은 이날 과방위 현안질의에서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방통위원장이 교체되는) 일이 있었고, 지금도 사실상 이진숙 축출법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소모적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런 차원에서 대통령 임기와 공공기관장 임기를 맞춰 주면 불상사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최 의원은 “제 경우 2006년에서 2008년까지 방송위원회 부위원장을 했다. 임기가 1년 반 남아 있었으나 방송통신위원회가 생기면서 기존 위원들의 임기가 자동 만료돼서 그만뒀다”며 “정부조직 개편이 이뤄질 거고 방통위 구조가 바뀔 수 있다. 과거 위원회가 해산되고 새로운 위원회가 구성되는 게 통상의 일인데 이 위원장 본인은 이런 법이 생겨도 자신의 임기는 예외로 보장해 달라는 건가”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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