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몰라' 재밌는 학명…개복치 대창구이의 맛

[역사와 스토리가 있는 영남 음식] ⑧개복치

사람들은 말한다. “영남에 맛있는 요리가 있어?” 때론 이런 말도 덧붙인다. “거긴 한국에서 제일 먹을 게 없는 도시들이야.” 과연 그럴까? 호남에서 4년, 서울에서 18년, 나머지 시간을 영남에서 살고 있는 필자로선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뭔가 말하고 싶은 열망에 몸이 들썩거린다. <역사와 스토리가 있는 영남 음식>은 그런 이유에서 발원한 졸고다. [편집자 주]


지나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물어댔으면 저런 궁여지책을 찾아냈을까?


‘이 물고기의 이름은 개복치입니다’.
경상북도 포항 죽도시장을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붉은 글씨의 푯말이다.


1톤 트럭에 겨우 1~2마리만을 실을 수 있는 거대한 회색빛 물고기가 모로 누운 것도 장관이지만, 막부시대 사무라이가 사용한 일본도보다 더 큰 칼로 개복치를 해체하는 모습은 어디서도 쉽게 보기 힘든 흥미로운 구경거리다.
장터를 찾은 관광객들이 궁금해하고, 신기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물고기가 맞나..? 싶겠지만 맞다. 이 녀석의 이름이 개복치다. /픽사베이

자, 그럼 개복치는 어떤 물고기일까? 나는 생물학자가 아니므로 백과사전의 설명을 짤막하게 요약한다. 아래와 같다.

‘학명은 몰라몰라(Mola mola). 길이는 2~4m, 무게가 평균 1톤에 이르는 물고기다. 최대 2000kg까지 나가는 경우도 있다. 몸은 타원형으로 옆으로 납작하다. 눈, 입, 아가미구멍이 작다. 움직임이 거의 없으며, 피부는 두껍고 무두질한 가죽 형태다. 온대성 어류로 바다 중층에서 활동하지만, 맑고 파도가 없는 날엔 수면 위로 등지느러미를 보이며 헤엄치기도 한다. 무리를 짓지 않는 것도 특성이다. 주된 먹이는 해파리 따위. 몸길이가 60cm 이상이 되면 수컷은 주둥이가 튀어나오고, 암컷은 수직형이 된다. 수명은 약 20년. 살은 희고 연하며 맛은 담백하다.’

우선 ‘몰라몰라’란 학명이 재밌다. 라틴어로는 맷돌을 의미한단다.


매일매일 “저 물고기 이름이 뭐예요?” “우와 크다. 저건 무슨 생선인가요?”라고 묻는 구경꾼들에게 시달리는 개복치 해체 전문가가 들려주고 싶은 대답도 실상은 “몰라몰라~ 나도 몰라~”가 아닐지. 같은 말을 하루에 10번, 100번 반복한다는 건 고역이 분명하니까.

세상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개복치 대창구이의 맛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지구 위에서 개복치를 먹는 나라는 한국, 일본, 대만 정도가 거의 전부다. 유럽은 아예 ‘식용금지’ 딱지를 붙였다. 먹기 위해 사고파는 건 불법이라고 한다.


개복치는 여러 가지 요리로 만들어질 수 있는 식재료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껍질을 삶아 흐물흐물해진 걸 굳혀 만든 ‘묵’ 형태의 개복치 요리만을 먹어봤을 터. 그걸 먹어본 이들 중 열에 아홉은 입을 모아 말한다.


“도토리묵처럼 씁쓸하지만 깊은 맛이 나는 것도 아니고, 메밀묵처럼 혀에 감기는 감칠맛도 없네. 쇠젓가락으로 잘 잡히지도 않는, 아무 맛도 안 나는 이걸 왜 먹지?”


나도 그랬다. 청년 시절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개복치 묵’을 처음 먹었을 땐 “이게 뭐지? 보드카도 아닌 게 무향무취군.” 이런 혼잣말을 한 후 초장을 듬뿍 묻혀 소주와 함께 어거지로 삼켰던 기억이 있다. 맛이 없었다는 이야기.


그런데, 반전이 찾아왔다. 2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에야.


2015년 서울에서 포항으로 집을 옮겼다. 포항은 다양한 형태로 개복치를 조리하는 도시다. ‘개복치 묵’은 상갓집과 결혼 피로연장에 곧잘 등장하는 인기 메뉴. 자꾸 먹다 보니 밋밋한 그것이 혀끝으로 미세하게 전달하는 ‘독특한 맛’을 시나브로 알게 됐다.


그리고 하나 더.


우거(寓居) 지척에 늙은 어머니와 덩치 큰 50대 아들이 운영하는 식당이 하나 있다. 거기선 ‘개복치 대창구이’와 ‘개복치 수육’을 판다. 개복치를 상식(常食)하다시피 하는 포항에서도 아는 사람이 드문 음식점이다.


나는 음식 먹는 것에 터부가 없다. 그래서다. 소, 돼지, 양, 닭은 물론 개의 내장도 먹어봤다. 그럼에도 ‘개복치 내장’의 식감과 향은 필설로는 형용하기 힘든 ‘특별함’이 담겨 있다. 요즘 애들이 하는 말로 “안 먹어봤으면 말을 하지마세요”다.


그게 살인지, 껍질 아래 피하지방인지, 내장의 일부인지는 알 수 없으나 ‘개복치 수육’ 또한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려운 ‘신묘한’ 맛이다.

육고기 같은 개복치 수육의 자태. 얼마나 신묘한 맛인지, 몰라~몰라.​​

이렇게 쓰고 나면 “그걸 파는 식당이 어디요?”라고 묻는 이들이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쉬운 대로 사진은 보여줄 수 있으나 포항 개복치 요리점 옥호를 알려주진 않겠다. 왜냐? 앞으로도 나만 다니고 싶으니까. 북적거리는 식당 앞에서 줄을 서기엔 내가 너무 늙었으니. 아, 이렇게 대답하면 되겠다.


“몰라~몰라.”


앞서도 말했지만, 몰라몰라는 개복치의 학명이다.


[필자 소개] 홍성식
<역사와 스토리가 있는 영남 음식> 연재를 이어갈 홍성식은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중·고교 시절. 영어 단어와 수학 공식을 외우라는 교사의 권유를 거부하고, 김지하와 이성부의 시를 읽으며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를 보러 극장에 드나들었다. 그 기질이 지금도 여전해 아직도 스스로를 ‘보편에 저항하는 인간’으로 착각하며 산다. 노동일보와 오마이뉴스를 거쳐 현재는 경북매일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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