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이후 언론의 기계적 중립에 대해 현장 취재기자들의 자성 목소리가 나왔다. 민주주의를 흔들려 한 위기였던 만큼 언론이 비상계엄 세력을 더 적극적으로 검증하고, 정치권이나 수사기관의 발표에 의존하기보다 직접 취재로 정보의 빈칸을 메우는 노력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21일 ‘저널리즘클럽Q’와 고려대 크림슨저널리즘대학원이 ‘탄핵 국면과 계엄 사태 속 언론의 역할’ 세미나를 공동으로 열었다. 비상계엄 이후 현장을 취재한 법조, 국회, 국방, 사회부 출입기자들이 발제자로 나서 자신과 동료 기자들의 보도를 돌아봤다. 저널리즘클럽Q는 질적 보도를 공부하려는 젊은 기자 100여명이 자발적으로 모인 단체다.
구민기 동아일보 기자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 과정에서 언론의 기계적인 5대5 중립 보도 관행의 문제를 짚었다. 구 기자는 “지난해 12월에는 비판과 검증 보도가 많다가 어느 날부터 윤 전 대통령 측 변명이 보도되더니 탄핵 반대 여론이 높아지고 국민의힘 지지율도 높아졌다”며 “이런 행태가 절정이 됐던 것이 탄핵 심판 때였다”고 돌아봤다.
심판정에서 윤 전 대통령 측은 부정선거론을 비롯해 정치적으로 맹목적인 주장을 펴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재판에서 이기려 하기보다 지지자에게 호소하는 데 집중한 것이다. 구 기자는 “재판 당일에는 동아일보도 어쩔 수 없이 윤 전 대통령 측 주장을 전했지만 다음 날이나 적어도 다다음 날에는 주장을 검증해 10여 차례 팩트체크 보도를 내놨다”고 말했다.
사회적 관심을 받으면 안 되는 부정선거론을 검증하면 언론이 음모론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아닌지 중앙일보 기자의 질문도 나왔다. 중앙일보는 팩트체크TF를 만들어 부정선거론을 집중 조명했는데 그 과정에서 논쟁과 고민이 많았다는 것이다. 구 기자는 “검증 없이 기사에 반영해 주는 것이 오히려 기계적 균형에 따른 힘 실어주기라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국회를 출입한 한병찬 뉴스1 기자는 ‘정치인의 입만 바라보는 취재’를 문제로 제기했다. 한 기자는 검증이 안 된 발언도 그저 빨리 보도해야 하는 현실에 대해 “눈을 질끈 감고 ‘핵버튼’ 누르듯 송고했다”고 표현했다. 그는 “정치인의 반헌법적인 발언도 ‘의견’처럼 대우했다”며 “부족한 기사임을 아는 데스크도 똑같이 ‘눈을 질끈 감고 완료 버튼을 눌렀다’”고 말했다.
한 기자는 이런 따옴표 저널리즘 역시 기계적 균형의 한 형태로 지적했다. 사안의 본질보다 말싸움 중계에 치중하는 정치보도 관행이 계엄 국면에서까지 드러났다는 것이다. 한 기자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정보에 가중치를 부여해야 한다”며 “이것이 기계적 중립을 피하고 불편부당성에 도달하는 방법 같다”고 말했다.
김태훈 SBS 국방전문기자는 계엄군 당사자들을 직접 취재했다. 계엄 이틀 만인 12월5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계엄군을 국회에 보낸 이유를 물었고 계엄 해제를 막으려 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김 기자는 “질문 한끝의 차이는 크다”며 “놀랍게도 다른 기자들 아무도 김 전 장관에게 이걸 묻지 않았는데 이 보도로 정치와 수사의 방향이 정해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 기자는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도 직접 취재했다. 그럼에도 일방적 주장은 보도하지 않았다. 김 기자는 “모 방송은 포고령은 방첩사에서 안 썼다는 여 전 사령관 주장을 종일 보도했는데 그와 통화된 게 영광이라 느꼈나 싶었다”고 꼬집었다. 포고령 작성 부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방첩사로 크게 의심되는 상황이다.
경찰청을 출입하는 이재욱 MBC 기자는 수사기관의 발표에만 의존하지 않고 40여일 동안 조금씩 취재를 거친 끝에 ‘노상원 수첩’을 직접 획득해 보도했다. 경찰과 검찰, 공수처 세 곳을 돌며 취재한 이 기자는 “다른 기자들도 수첩에 관해 물어보냐고 물으면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수첩은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한 검찰은 노 전 사령관 공소장에도 수첩 내용을 적지 않았는데 자연히 법조 기자들도 자기 분야가 아니라고 여겨 관심에서 멀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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