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호 감사원 감사위원(전 사무총장)이 한겨레 기자 개인을 상대로 3000만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한겨레는 유 감사위원이 감사원 내부에 파벌을 만들고 조직의 공정성을 저해했다고 연속해 보도했다. 권력으로부터 부당한 청탁을 받은 정황도 전했는데, 유 감사위원은 이 부분을 집어 허위라고 주장했다. 한겨레는 괴롭히기 소송을 그만두라며 반발했다.
유 감사위원은 5월30일 한겨레 기자가 허위 보도로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고 정신적 고통을 줬다며 3300만원을 배상하라고 청구했다. 유 감사위원이 문제 삼은 기사는 5월8일 보도된 <대통령실 청탁창구 된 감사원…비위는 눈감고 감사관 해임>이다. 기사에서 한겨레는 “대통령실과 집권 여당이 감사원 인사권을 무기로 민원”을 넣으면 유 감사위원이 내부에 압력을 행사했다고 보도했다.
유 감사위원은 감사를 축소해 달라는 따위의 청탁을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한겨레는 유 감사위원이 뚜렷한 이유 없이 직원들에게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구체적인 사례를 보도했다. 옛 대통령 별장인 청남대를 관리하는 충청북도에 대한 감사를 두고 유 감사위원이 담당자에게 불문 처리하라고 하지 않았느냐며 윽박질렀고, 여러 사람이 이 대화를 직접 들었다는 것이다.
감사를 봐달라는 청탁이 실제로 있었는지 일부 단정적 표현도 있지만 유 감사위원이 의혹 전체를 완전히 부인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유 감사위원에게 소송을 당한 기자는 충청북도 감사 건에 대해 최소 1년여 전부터 제보받았고, 서로 다른 취재원 여섯 명이 똑같이 증언했다고 설명했다. 이 기자는 대통령실을 통한 청탁 의혹을 내부에 제기했다가 유 감사위원이 트집 잡듯 이유를 붙여 해임된 감사관도 취재했다.
문제가 된 기사는 한겨레가 5월8일부터 22일까지 보도한 ‘윤석열 정부 3년, 감사원의 민낯’ 기획 중 가장 먼저 나온 기사다. 유 감사위원은 기사 9건 중 이 첫 번째 보도만 문제 삼았고 기획보도 전반에서 반복해 지적한 사조직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반박하지 못했다. 한겨레는 유병호 사단인 이른바 ‘타이거파’가 승진과 유학 기회를 독차지하고 내부 통제를 위한 먼지털기식 감찰과 징계를 일삼았다고 보도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3년까지 감사원에서 단 1건이었던 직원 해임이 지난해에만 4건이었다. 직위해제는 매해 평균 1.1건이었는데 유 감사위원이 사무총장이던 2023년에는 3건, 이듬해에는 5건이었다. 내부 비판이 올라 오던 내부망의 익명 게시판은 실명으로 바뀌었다. 이 게시판에는 한겨레 보도를 인용하며 유 감사위원을 비롯한 지휘부 사퇴를 요구하는 과장급 직원의 실명 비판이 올라오기도 했다.
한겨레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유병호의 정권 보위는 언론과 국회에서 끊임없이 문제가 됐다”며 “공론장에서 폭넓게 논의되어야 할 문제를 소송으로 접근했다”고 규탄했다. 또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위축하고 다른 언론의 권력 감시 보도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상당하다”며 기자 개인에 대한 괴롭히기와 전략적 봉쇄소송이라고 주장했다. 한겨레는 기자 보호를 위해 언론사 차원에서 법적 대응에 나섰다.
한국기자협회는 한겨레 보도가 그동안 언론 감시의 사각지대였던 감사원의 내부 문제를 파헤친 공로를 인정하고 19일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신문부문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심사 과정 중 유 감사위원이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해 한겨레에 정정보도도 청구했지만 기자협회는 시상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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