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기자들 "1면톱 오타 징계, 국장 아닌 차장급이 최고 수위?"
19일자 1면톱 제목 '늘리리면' 오타... 당일 6명 징계
당직 데스크 감봉, 편집국장은 견책… 적절성 논란
"인력 확충도 시스템도 없는 상태서 군기잡기하나"
한국경제신문이 신문 1면 헤드라인 오타와 관련해 편집국장을 포함한 다수 관계자에게 19일 대규모 징계를 내렸다. 내부에선 ‘차장급’ 당직데스크가 최고수위 징계를 받은 것을 두고 불만과 우려가 나온다. 특히 편집인력 감소와 업무량 증가 등 시스템 문제를 외면한 채 회사가 구성원에게 책임을 돌린다는 비판이 크다.
한경은 19일자 신문 1면에 <“은행, 주담대 늘리리면 자본 더 쌓아라”>란 기사 제목을 실어 발행했다. ‘늘리려면’으로 적혔어야 할 헤드라인에 ‘늘리리면’이란 오타가 포함된 채 신문이 나갔다. 18일 오후 가판 발행 시 기사제목은 <은행 ‘주담대 자본규제’…집값 잡는다>였으나 판갈이 과정에서 오타가 포함된 제목으로 바뀌었고, 다음 날 오전 발견된 것으로 전해진다. 19일 오전 온라인과 PDF 버전 기사제목 수정이 이뤄져 현재는 오탈자가 없는 상태다.
이날 오후 7시쯤 한경은 경영지원실장 명의의 공지를 통해 관련자 6인에 대한 징계사실을 알렸다. 당직데스크이던 사회부 차장이 이날 징계 중 가장 높은 수위의 감봉 1개월 조치를 받았다. 편집국장·편집부장·편집국 정책부문 차장은 견책, 야간당직·해당기사 출고와 관련된 편집부 부장, 금융부장은 경고 수위였다. 이날 저녁회의에서 이심기 편집국장은 ‘기사 출고가 늦어 막판 급하게 조정하는 과정에서 제작사고가 발생하는 만큼 안정될 때까지 마감을 당기겠다’, ‘긴장감과 시스템의 문제라고 본다. 제 책임이 있다’, ‘앞으로 최종책임은 당직데스크, 편집조장 순으로 지지만 3판 바뀌는 제목과 기사는 세세한 것까지 제게 바로 연락하라’ 등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징계 공지 후 블라인드 앱 등을 통해 기자들의 불만과 우려가 쏟아졌다. ‘큰 실수이고 반성할 일이지만 줄줄이 6명이나 징계할 일인가’, ‘상식적으로 수장의 책임이 제일 큰데 차장급이 제일 센 징계를 받은 게 일반적이지 않다’, ‘얘기해주지 않는 이상 야간당직 데스크가 알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시스템도 제대로 안 갖춰진 상황에서 아래에만 책임을 지운다’, ‘편집기자, 교열기자 확충 등 인력보강 없이 군기잡기로 해결하려 한다. 경영진 책임은 없나’ 등 비판이 잇따랐다.
한경노동조합은 20일 노조위원장 겸 바른언론실천위원장(편집국 기자 자율 자정조직) 명의 공지를 통해 하루 전 인사위원회 배석 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알리고 활동위원 등 대상 의견 수렴에 나섰다. 노조는 “중징계 수위의 적절성 및 당직데스크·국장의 책임의 크기를 놓고 많은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전날 열린 인사위원회에서 노조는 ‘이번 사안은 책임자 몇 명의 실수가 아닌, 지면 제작 전반의 과정에서 발생한 일종의 시스템 오류로 봐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야간 편집 근무 인력 감소, 업무량 증가 등을 지적하면서 구성원 개인에 대한 희생양 만들기식 징계는 해결책이 아니라는 입장도 밝혔다”며 “하지만 노조 퇴장 후 인사위원들 간 논의 과정서 당직데스크의 책임을 가장 강하게 묻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고, 결국 예상치 못한 중징계 결정이 내려졌다”고 부연했다. 단체협약상 회사의 인사결정에 노조와 조합원은 10일 내 이의신청을 할 수 있는데 이에 앞선 절차임도 명시했다. 실제 전격적으로 이뤄진 이번 인사위원회 개최와 징계는 그 수위나 책임의 적절성 등과 더불어 통상 징계절차가 요구하는 수일 전 통보 등 단협을 위반했을 소지도 있는 상태다.
한경은 20일자 신문 2면 ‘바로잡습니다’를 통해 하루 전 1면 기사 “해당 제목에서 ‘늘리리면’은 ‘늘리려면’의 오기이며,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신문을 발행했다.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린다. 앞으로 더욱 철저히 제작 과정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한경 사측 관계자는 20일 본보와 통화에서 “1면 기사 제목에서 오타가 나오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고, 무엇보다 독자들한테 잘못을 저지른 만큼 인사위원회를 통해 재빨리 징계조치를 하고 사과를 하게 됐다”며 “기자들에 대해선 책임을 묻지 않았다. (가장 높은 징계를 받은 게) 차장이지만 회사는 당직 국장으로서 권한을 부여하고 있고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봐서 인사위에서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단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시스템의 문제로 보고 대형 오타가 나온 구조적 이유를 들여다볼 계획”이라며 “가능하다면 노조와 함께 관련 논의를 이어갈 생각”이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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