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소통 늘리는 대통령, 기자 공격 더하는 지지자
[정치인, 공격 동원 신호 주지 말아야]
기자단 "김민석 美입국 되나" 질문
알고보니 총리실서 먼저 요청한 것
기자 신상털고 외모 비하 인신공격
브리핑룸 카메라 설치하며 더 과열
"기자들 질문도 질적으로 달라져야"
이재명 정부 초기부터 기자들에 대한 공격이 잇따르고 있다. 대통령실이 브리핑룸에서 질문하는 기자를 비추겠다는 방침과 맞물려 일부 기자는 벌써 신상이 노출되고 외모 비하 등 불필요한 공격을 받고 있다. 의도치 않았더라도 정치인이 지지자들에게 공격을 동원하는 신호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요구와 함께 기자들의 질문도 질적으로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와 기자간담회에서 뉴스1 기자는 질문 내용 때문에 지지자들에게 온라인에서 심각한 인신공격을 겪었다. 당시 이 기자는 김 후보자에게 “1985년 미국 문화원 점거 사건과 관련해 미국 입국이 불가능하다, 반미주의자라는 소문이 있다”며 “사실 관계 확인과 한미관계에 대한 입장을 부탁드린다”고 질문했다.
김 후보자는 질문을 받고 10초 가까이 말을 잇지 못하다가 허탈하다는 듯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누가 진짜 이런 질문을 했다면 저를 조금 더 조사했으면 좋겠다”며 미국에서 유학했고 미국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고 설명했다. 수준 낮고 부적절한 질문이라는 듯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김 후보자는 이어 당연히 반미주의자도 아니라고 강조했다.
질의응답이 중계된 뒤 지지자들은 기자가 자질이 없다며 외모와 인격을 비하하기 시작했다. 김 후보자는 이튿날 페이스북에서 “저로서는 시중에 제기된 이슈 중 해명이 필요한 질문에 설명할 기회가 생겨 오히려 고마웠다”며 “질문이 마음에 안 들었다고 기자를 타박하는 분이 계신다면 멈춰 주시라”고 했다. 공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문제가 된 질문은 총리실이 후보자에게 물어봐 달라고 기자단에 요청한 것이었다. 총리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기자간담회를 자청하고 원하는 질문까지 제공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해당 기자는 이준석 전 개혁신당 대선 후보 취재를 잠깐 맡은 이력이 오해를 불러 보수적인 인터넷 공간에서 활동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까지 받았다.
대통령실이 브리핑룸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질문하는 기자들을 비추겠다고 하면서 공격 분위기는 더 과열되고 있다. 16일 인터넷으로 중계된 강유정 대변인 브리핑에는 “기자들 코를 납작하게 해 달라”거나 “국민을 믿고 계속하라”, “승리하라”는 등 댓글이 달렸다. 김 후보자도 대통령실을 따라 총리실에 기자들의 질문 모습을 비추는 카메라를 설치할 뜻을 내비쳤다.
11일 우원식 국회의장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는 얼굴이 드러난 두 기자에게 지지자들이 상반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MBC 기자가 이준석 의원 징계를 어떻게 할 계획이냐고 묻자 우 의장은 말하고 싶었던 부분이라며 화색을 보였다. 지지자들은 우 의장의 답답한 마음을 헤아린 질문이었다며 기자다웠다고 추켜세워 화제가 됐다.
반면 동아일보 기자가 개헌으로 대통령 연임 제한을 풀면 이재명 대통령이 적용될 수 있다고 보느냐고 묻자 우 의장은 불필요한 질문이라는 듯 “개정 과정에서 논의가 있을 수 있다”는 정도로만 답했다. 관련 영상들엔 “질문 의도가 뭐냐”는 등 해당 기자를 비난하는 댓글 수천 개가 달렸다.
이처럼 정치인이 질문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기자를 향한 지지자들의 태도도 달라지고 있다. 김창숙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은 “김민석 후보자의 반응이 지지자들의 공격을 동원하는 ‘좌표찍기’ 의도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질문받은 사람도 의견을 낼 수 있고 질문에 불편한 점이 있다면 다시 물어볼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인과 기자가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고 관계가 일방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김 후보자는 16일 출근길에도 국민의힘이 제기한 이른바 ‘허위 차용증’ 의혹에 관해 질문을 받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다 말고 돌아 나와 질문한 기자를 찾으며 “확인되지 않은 용어를 쓰는 것을 주의하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질문한 기자가 화면에 잡히지 않아 신원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온라인에서는 지지자들이 기자 집단을 거세게 공격했다.
김 연구위원은 “의도했든 아니든 정치인의 행위가 좌표찍기로 연결될 수 있다면 정치인이 언론을 대하는 방식 또한 조심할 필요가 있다”며 동시에 시민에 점점 노출돼야 하는 기자의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질문하게 된 경위나 출처가 어떻든 ‘싸움 붙이기’ 식의 보도로 정치권 공방을 중계하는 것이 아니라, 타당한 의혹 제기인지 언론이 적극 검증할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기자회견장에서 기자들이 단편적인 의혹 제기로 끝날 질문을 하거나 개별 언론사가 궁금한 질문을 하나씩 나열하고 마는 식이 아니라, 집단으로서 언론이 나아질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결과적으로 시민이 좋은 질문이라고 인정하고 그들이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얻을 수 있도록 기자 개개인을 넘어 언론 집단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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