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 이후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임기 보장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며 전 정부에서 임명된 방통위원장의 임기 지속 여부를 두고 관심이 모아진다. 윤석열 정부 하에서 방통위 2인 체제 의결 강행, 정치적 중립성 침해 문제 등으로 언론계·정치권의 자진사퇴 요구를 받아온 이 위원장은 내년 8월까지 임기가 남아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위원회를 출범시킨 정부의 조직 개편 기조와 맞물려 방통위법 개정안 통과 등으로 방통위 개편이 이뤄질 경우 이 위원장의 임기는 자동으로 종료될 가능성이 크다.
이 위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첫 국무회의에 이어 10일 국무회의에도 참석했다. 윤석열 정부 당시 전 정부에서 임명돼 임기가 남아있던 한상혁 전 방통위원장이 국무회의 참석 명단에서 제외됐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10일 비공개로 전환된 국무회의에서 이 위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공기관장들을 내쫓아선 안 된다”며 임기 보장을 요구한 사실이 TV조선 보도를 통해 전해졌다. 또 이 위원장은 ‘여당이 방통위법을 개정해 자신을 끌어내리려 하고 있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으로 전해진다. 4월25일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방송 관련 업무를 방통위로 일원화하고 방통위원은 상임·비상임으로 구성해 9명으로 증원하는 내용의 방통위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해당 법안 부칙에 따라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진숙 위원장의 임기는 종료될 수 있다.
이진숙 체제 방통위가 2인 의결 위법성 논란에도 공영방송 이사·사장 선임 의결을 강행해 극심한 혼란을 겪었던 방송사 구성원들은 이 같은 이 위원장의 발언을 두고 “임기 보장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 “자신이 마치 억울한 사람처럼 프레임을 짜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장을 지냈던 이호찬 언론노조 위원장은 “법적으로 임기를 보장받는 건 방통위원장으로서 합당한 역할을 했고, 그 자격이 됐을 때의 이야기다. 이 위원장은 새 정부 출범 후 1순위로 당장 물러나야 될 사람”이라며 “KBS·MBC를 장악하려고 취임 당일 이사진 임명을 밀어붙였다가 법원에서 제동이 걸린 사람이고, 법인카드 불법 사용으로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성관 언론노조 EBS지부장도 “2인 체제 의결에 제동을 건 법원 결정이 있었지만, 계엄 이후에도 혼란을 틈타 의결을 강행했는데, 이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고 물러나는 게 맞다”며 “방통위 구조에 대한 문제점, 방통위 개편의 필요성은 계속 얘기가 돼 왔는데, 정부조직 개편에 따라 거취가 변경되는 점에 대해 마치 본인이 억울하게 쫓겨난다는 식의 프레임을 짜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실상 자진사퇴 의사가 없음을 밝힌 이 위원장에겐 불리한 형국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7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제기된 대전MBC 사장 시절 법인카드 사적 유용 의혹에 대해 대전 유성경찰서는 지난 1월에 이어 6월 초 세 번째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이 위원장에 대한 경찰 소환 조사가 이뤄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 위원장이 “공무원으로서의 정치적 중립의무를 위반”했다며 지난해 11월 민주당 주도로 통과된 감사요구안에 대한 감사원 결과도 남아있다. 또 김태규 부위원장의 사의 표명으로 현재 방통위는 사실상 ‘1인 체제’가 되어 심의·의결을 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정부여당은 정부조직 개편의 일환으로 법 개정을 통해 방통위 개편, 이 위원장 거취 문제를 다룰 것으로 보인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간사인 김현 민주당 의원은 13일 JTBC 방송에 출연해 한상혁 전 위원장 사례를 언급하며 “당시 기소됐다는 이유만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이) 해임을 시켰다. (이 위원장은) 공직자로서 부당한 행위에 연루됐기 때문에 해임 사유는 되지만, 저희는 윤석열 정부처럼은 하지 않을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국정기획위원회가 (활동을) 16일부터 시작하면 정부 조직 개편안에 방통위 문제를 다룰 예정이고 법 개정을 통해 위원장의 임기는 자동적으로 정리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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