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S 보도본부 사무실은 텅 비어 있었다. 100명도 거뜬히 일할 수 있는 공간엔 단 6명의 직원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지난해 6월, 서울시의회의 폐지조례안이 본격 시행되고 9월 서울시 출연기관 지정까지 해제된 TBS는 현재 극심한 폐국 위기에 몰려 있다. 서울시 예산이 끊기면서 협찬과 후원이라는 불안정한 수입에 의존한 지 벌써 1년, 그간 340명에 달하던 직원은 180명으로 반 토막 났고 기자 수도 20명에서 12명으로 크게 줄었다. 제작비가 사라지면서 24시간 돌아가던 교통방송 역시 음악방송으로 변해버렸다.
기자협회보는 13일 서울 마포구 TBS 사옥에서 김선환 전국언론노동조합 TBS지부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났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9월 송지연 지부장의 임기가 끝나고 노조가 비상대책위로 전환한 이후 공동 비상대책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지금까지 TBS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계속해오고 있다. 그는 “직원들이 너무 힘든 시간을 겪고 있다”며 “현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오세훈 서울시장에 있다. 오 시장이 폐국 위기에 있는 TBS를 원래 상태로 즉시 복원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래는 김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비상대책위원장은 어떻게 맡게 됐나.
“사실 송지연 지부장이 도와달라 요청해왔다. 회사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집행부를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송 지부장이 어려운 상황에서 힘들게 투쟁을 하고 있던 차 국정감사 직후 도와달라는 전화가 왔다. 흔쾌히 응했고 조합원 총회를 거쳐 비대위 체제로 전환한 이후 공동위원장 체제로 가고 있다.”
-TBS엔 언제 입사했나.
“2012년 3월에 입사했으니 햇수로 14년 정도 TBS에 있었다. 그때가 어떤 시점이냐면 박원순 서울시장이 보궐선거를 통해 당선된 이듬해였다. 당시 TBS가 보도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기치를 내걸었고 보도국장을 외부에서 선임하고 또 대표도 외부 공모로 선출된 시점이었다. 저는 그때 경력 공채로 입사했고, 당시 저를 포함해 기자는 10명 정도 채용된 걸로 기억한다. TBS에선 수도권팀, 정치팀, 경제팀, 사회팀 등 보도국 주요 팀은 다 거쳤다. 그런데 지금은 그 팀들이 지역뉴스팀 하나로 축소돼버렸다. 예전엔 출입처도 많았는데 이젠 서울시 아니면 대통령실, 국회 이 정도밖에 출입처가 없다.”
-11일이 TBS 개국 35주년이었다. 35년 역사의 TBS는 지금 어떤 상황인가.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직원들이 너무 힘든 시간을 겪고 있다. 교통, 기상을 포함해 다양한 방송을 하며 시민들의 사랑을 받던 35년 역사의 방송사였는데, 하루아침에 폐국 위기에 몰려버렸다. 직원들은 절반 가까이 퇴사했고, 340명 정도 되던 인원이 지금 180명 정도로 줄었다. 남은 직원들도 무급휴직 상태로 밖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고를 견디고 있다. 정규 방송은 지금 몇 개 하지도 못하고 라디오도 사실상 음악방송으로 전환된 참담한 상황이다.”
-지난해 6월 서울시 지원이 완전히 끊긴 지 1년이 다 돼 간다.
“지난해 6월부터 8월까지 직원들 급여가 대략 3분의1 정도 삭감이 됐다. 이후 9월부턴 한 푼도 못 받고 있다. 그러니까 벌써 10달 가까이 그런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이번 달부턴 회사가 퇴직금도 불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 것으로 안다. 지금 회사에 나오는 인력들은 사실상 무급으로 근무를 하고 있다. 방송은 돌려야 되니 최소한의 필수 인력만 나와 일하고 있다.”
-최근 서울지방노동위원회가 무급휴업안에 승인 불가 입장을 밝혔다.
“지금 회사에 돈이 전혀 없어 월급을 지급할 수 없고, 그래서 노동청 허가를 받아 11월부터 무급휴직을 시행해온 상황이다. 그런데 이번 달엔 직원들 동의가 명시적으로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지노위에서 무급휴업안이 불허됐다. 우선은 다 나와야 하는 상황이 됐는데, 출근을 하더라도 돈을 지급할 여력이 없고 나오더라도 제작비가 없으니 할 일도 그렇게 많지 않은 상황이라 다들 연차를 쓰고 있는 중이다. 또 밖에서 비정규직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분들의 경우 당장 그만두고 나올 수도 없을 것 같다. 현재는 대부분 연차를 활용해 대처하고 있고 일부 직원은 주당 15시간 정도 근무하는 시간선택제 방식을 택하거나 아주 일부는 출근해 일하고 있다.”
-직원들 생활고가 심한 상황인 건가.
“개개인의 상황을 다 알진 못하지만 월급을 한 푼도 못 받고 있는 상황이니 사실상 빚으로 생활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일부는 아르바이트를 해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지만 그것도 한때 겸직 금지 조항 때문에 아주 제한적으로 허용이 됐다.”
-제작비가 없는 상황에서 현재 방송은 어떻게 하고 있나.
“라디오 생방송은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최일구 선배가 진행하는 '허리케인 라디오', 또 오후 4시부터 5시까지 강지연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머니특별시'와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송정애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서울 플러스' 세 개 프로그램밖에 없다. 그 5시간 외에는 오직 음악방송만 하고 있다. 다만 교통정보는 매시 58분에 사내 정보센터와 서울시경, 도로공사 포스트 등에서 오전 6시30분부터 저녁 8시까지 나가고 있다. 보도본부에서 만들던 종합뉴스는 정오 '5분 뉴스' 한 번으로 줄었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던 TBS TV는 '문 안닫을 결심'이라고 직원들이 출연하는 방송 하나만 남고, 나머지는 재방송을 틀고 있다.”
-예전에 TBS에 시사 프로그램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전임 대표가 오고 TBS 혁신안이라는 걸 발표하면서 저희 시사 프로그램 콘텐츠를 다 감춰버렸다. ‘김어준의 뉴스공장’도 ‘신장식의 신장개업’도 다 비공개로 전환됐다. 서울시의회의 압력도 있었을 테고 지원금을 받아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겠지만 기존 시사 보도 프로그램을 모두 비공개로 전환시키고 '출연제한심사위원회'를 구성해 진행자들을 선별하는 제도는 말도 안 되는 조치였다. 저희 지부가 두 달 전쯤 '5가지 방송 정상화 조치'를 선언했다. 그 선언 내용에 담겨 있는 것이 TBS 혁신안 전면 폐기, 시사·보도 기능 복원, 정치검열 ‘블랙리스트 제도’ 철폐 등이다. 또 진행자였던 김어준씨에 대한 전임 집행부의 손해배상 소송을 철회하라는 내용도 담았다. 왜냐하면 방송 진행자에게 책임을 묻는 건 참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방송과 편성은 제작진들의 책임인데 어떻게 진행자에게 그 책임을 묻겠다는 건지, 참 부끄럽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2022년 서울시의회가 조례를 폐지한 원인으로 지목됐고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도 의회에서 관련 내용을 증언하기도 했다.
“유례없는 언론 탄압이라고 본다. 서울시 의원들이 주장하는 일부 진행자와 방송의 문제점은 조례 폐지를 의결했을 땐 이미 해소된 상태였다. 그런데도 그 외 편향된 프로그램이 다수 있다고 주장하고, 이제는 한 술 더 떠 남아 있는 180명 직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한다.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얘기다. 결국 TBS를 공중 분해시키고 말겠다는 뜻인가. 특히 가장 큰 책임은 오세훈 시장에 있다. 오 시장은 자기가 하지 않았다, 서울시의회가 조례 폐지를 통과시켰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절차적인 과정을 거쳤다고 하지만 의지만 있다면 왜 부당한 조치를 고치지 못했겠나. 게다가 최근 서울시의회에서 오 시장이 김어준씨의 ‘나 다시 돌아올거야’ 발언이 지원 폐지 조례에 불을 지폈다고 했는데, 어처구니가 없다. 방송사가 한 개인의 얘기에 따라 움직이지도 않고 설사 어떤 문제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건 제도적인 심의절차를 거쳐서 해결하면 된다. 오 시장의 발언은 언론탄압을 했다는 일종의 자백이다. 1년이 지났다. 그런데도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아무도 나서지 않고 있다. 만약 TBS를 원래 상태로 즉시 복원시키는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강력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TBS 문제는 쉽사리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지방권력이 바뀌지 않아서 그렇다. 수도권 공영방송, 시민의 방송을 표방하고 있는 TBS는 사실상 정치적인 오판에 의해 지금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일단 원 상태 그대로 방송을 회복시키는 것이 지금 서울시와 서울시의회가 시급히 해야 될 조치다. 특히 현 사태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오세훈 시장이 적극 나서야 한다. 오 시장은 TBS를 다시 복원하는 데 1년 6개월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의지만 있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원래 상태로 복원할 수 있다. 내년 지방선거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다.”
-최종 문턱을 넘진 못했지만 지난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TBS eFM에 25억원을 편성한 적이 있다.
“결국 추경안 심사 때 문턱을 넘진 못했다. 하지만 그 내용에 대해선 공감하는 측면이 있다. 현 정부에서 바로 시행할 수 있는 안이라 본다. 과방위원들을 비롯해 여러 분들께서 논의를 해 주셨으면 좋겠다.”
-민영화는 생각하지 않고 있나.
“오세훈 시장이 TBS 인수설을 얘기하는데 사실 저희 회사는 방송법상 민영화가 불가한 회사다. 정관도 개정되지 않았고 정관 개정을 요청해도 전임 정부 방송통신위원회가 반려한 사안이다. 방송과 법을 잘 이해하지도 못하는 사람이 민영화 얘기를 한 거다. 저희들은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TBS가 지역 공영방송으로 가는 게 맞다고 본다. 민간 기업으로 전환된다면 자본권력의 부당한 요구가 분명히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게다가 애초 방송법상 민영화가 안 된다. 재원 자체가 서울시로 돼 있다. 그럼에도 앞으로 재원 구조는 좀 더 다양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민 참여 등 다양한 방식의 공적 재원 운영을 고민해봤으면 한다.”
-정치권력이 예산을 무기로 공영방송을 압박하는 사례는 TBS가 끝은 아닐 것 같다.
“그래서 더 이 상황을 여기서 멈출 수 없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정치권력이 바뀌는 순간 또다시 이런 사태가 재현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알 권리 충족을 위해 열심히 싸우는 모든 기자들, 언론 종사자들을 위해서라도 저희들이 이 싸움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게 쉽지 않다.”
-위원장님은 언제까지 싸울 생각인가.
“TBS에서 너무나 열심히 일했던, 기자로서 남다른 자부심을 가졌던 동료들이 있다. 그 동료들이 ‘어떻게든 지키라’는 말을 하고 떠났다. 그 말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그는 이 대목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동료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어떻게든 하나가 돼야 한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하나가 돼서 우리가 하고자 했던 방송을 끝내는 해냈으면 한다. 많은 분들이 너무나 큰 고통을 겪고 있지만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곧 좋은 세상이 열릴 것으로 굳게 믿는다.”
-새 정부, 또 시민사회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희들의 생존권도 중요한 문제지만 언론은 민주주의를 굴러가게 하는 수레바퀴와도 같다고 생각한다. 현 정부는 언론을 지원하면서도 간섭하지 않는 그런 기조를 유지했으면 한다. 또 시민사회가 지금까지 많이 도와주고 격려해주고 위로해줘서 너무나 큰 힘이 되고 있다. 꼭 TBS가 일어서서 좋은 방송으로 보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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