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파인더 너머] (207) 6·25가 앗아간 신혼사진, 75년 만에 찍다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박윤슬(문화일보), 이솔(한국경제신문), 고운호(조선일보), 박형기(동아일보), 이현덕(영남일보), 김정호(강원도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7일, 대구 팔공산 자생식물원. 연보라색 꽃들이 만개한 숲속 정원에서 흰 웨딩드레스와 검은 턱시도로 단장한 노부부가 나란히 앉았다. 신부는 하얀 부케를 들었고, 신랑은 단정한 나비넥타이에 흰 장미를 달았다. 마주 보며 웃는 두 얼굴 사이로, 긴 세월을 건너온 사연이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해. 신랑 이위영씨와 신부 박차교씨는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신혼의 단꿈은 징집 명령에 꺾였고, 얼굴도 익히지 못한 채 전선과 후방으로 갈라졌다. 여섯 해 동안 함께한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채 떨어져 지냈다.


그리고 이날, 그 빈자리가 아주 조금 메워졌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국립공원공단과 대구지방보훈청이 마련한 ‘국립공원 숲 결혼식’에서 두 사람은 신혼 시절 남기지 못했던 사진 한 장을 75년 만에 새로 남겼다. 긴 세월을 견디며 삶을 이어온 이들의 모습은 전쟁이 삶의 모든 것을 삼킬 수 없다는 사실을 조용히 증명해 냈다.


이 순간은 우리 사회가 기억해야 할 한 조각의 평화다. 미국은 참전용사의 구술 생애사를 보존하는 ‘Veterans History Project’를, 영국은 전국을 돌며 참전 경험을 나누는 ‘살아있는 기억’ 캠페인을, 캐나다는 용사의 초상과 이야기를 전시하는 ‘Faces of Freedom’ 프로젝트로 살아 있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올해 5월 말 기준 6·25전쟁 유공자 21만여명 가운데 생존자는 3만216명뿐이다. 삶으로 평화의 소중함을 증명해 온 참전용사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조용히 역사의 뒷면으로 사라지기 전에, 우리는 그 삶을 기록하고 마땅한 예우로 응답해야 한다.

이현덕 영남일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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