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이 브리핑룸에 출입기자가 질의하는 모습을 비추는 카메라 4대를 설치하기로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제안했다고 한다. 강유정 대변인은 그 배경으로 ‘국민의 알 권리’와 ‘브리핑의 투명성’을 들었다. 미국 백악관이나 UN의 브리핑룸 운영 사례를 참고했다고도 했다. 그런데 의문이다. 정녕 카메라 추가 설치가 다른 무엇보다 더 앞서야 할 과제인가.
대통령실 브리핑룸에는 다른 출입처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관행이 있다. 국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대통령실의 브리핑은 많은 국민이 촉각을 곤두세우며 방송·유튜브 생중계로 지켜본다. 하지만 대부분 브리핑에서 공개하는 건 대통령실 관계자의 일방적인 발표뿐이다. 브리핑 이상으로 많은 정보를 캘 수 있는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은 공개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 내용을 보도할 때도 질문에 답하는 대변인을 ‘대변인’이라고 칭하지 못한다. 소통을 원활하게 한다는 취지로 익명인 ‘관계자’로 표기한다는 규칙을 대통령실과 기자단이 공유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통령실이 카메라 추가 설치 후 생중계를 시행한다고 밝혔으므로 향후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은 공개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 알 권리가 신장되고 투명성이 확보된다면 이 같은 맥락에서지, 질문하는 기자의 모습을 카메라로 비추는 것과는 별 상관이 없다. 질의응답 공개는 대통령실과 기자단이 합의해 브리핑 운영 규칙을 바꾸는 것만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대통령실이 ‘카메라 추가 설치’에 방점을 찍은 것에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안 그래도 온라인 공간에선 이미 기자 개인을 향한 공격이 기승을 부린다. 10일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기자간담회 이후에는 과거 주한 미문화원 점거 농성 등 반미 활동 이력에 관해 질문했던 기자가 신상털기에 시달려야 했다. 한 방송사 영상기자는 대선 당일 이 대통령 사저 앞에서 취재하다가 김혜경 여사를 ‘일부러 꼬집고 밀쳤다’라는 근거 없는 음해와 인신공격을 받았다. 유력 정치인이 SNS에 기자 실명이 노출되도록 기사 화면을 캡처해 사실상 ‘좌표’를 찍는 건 이미 적잖은 기자들이 경험한 일이다. 실정이 이러하니 카메라 추가 설치로 기자 얼굴을 노출했을 때 일어날 일을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대통령실이 참고했다는 백악관의 브리핑 문화는 우리와 사뭇 다르다. 백악관은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대변인의 브리핑을 매일 생중계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기성 언론을 적대시한다지만, 여전히 백악관 브리핑에서는 공직자와 기자가 당면 현안을 놓고 날 선 논쟁을 벌이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도어스테핑 형태로 기자들의 질문을 받을 때뿐만 아니라, 외국 정상과 만난 뒤 그 결과를 브리핑하는 자리에서도 정상회담과 관계없는 질문들이 쏟아진다. 기자가 무슨 질문이든 할 수 있는 건 이런 문화가 뒷받침됐을 때다.
대통령실이 정녕 백악관식 브리핑을 지향한다면 원칙을 지금보다 더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어떤 사안이든 가리지 않고 모든 브리핑을 질의응답까지 완전히 공개할 것인가? 외교·안보 등 민감한 정보를 다루는 사안에 대해서는 어떻게 투명성을 높일 것인가? 모든 국정 분야에 전문적일 수 없는 대변인 대신 다른 참모들이 브리핑에 직접 나서도록 할 것인가? 이재명 정부가 국민의 알 권리와 투명성을 높이고 싶다면 카메라 추가 설치보다 이런 질문들을 더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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